전통적으로 유럽의 생산 기지였던 폴란드가 최근 유럽의 신흥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3개월 남짓 생활하면서 느낀 점도 도시 곳곳의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80~90년대 건설 붐처럼 바르샤바 도시 내 여러 지역에서 고층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폴란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에 힘입어 폴란드 물가도 안정적이며, 매달 역대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며 가계 재정 역시 개선되고 있습니다. 최근 폴란드 노동시장의 임금 인상은 정부의 최저 금리 기조 유지와 맞물려 소비를 부축이고 있으며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내수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유럽' 하면 먼저 '높은 물가'가 떠오릅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폴란드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다른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비해 의식주 물가는 더욱 저렴합니다. 그래도 현지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체감하는 바가 다르겠지요. 현지인에게는 상대성보다 절대성이 우선적인 잣대가 되니까요. 현지인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그들은 대체로 자국의 물가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평균 소득을 듣는 순간 이해가 갔습니다. 폴란드의 평균 임금은 4,500PLN(125만 원)으로 우리나라 평균 임금의 45.3% 수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폴란드 사람들의 합리적 소비 습관이 평균 임금과 체감 물가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살펴보면 구조가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랜드, 제품, 가격, 디자인, 품질, 서비스 등 여러 구매 요소 중 폴란드인은 딱 두 가지, '가격'과 'Made in Poland'를 중시합니다. 고급 브랜드를 우선으로 찾거나 제품의 기능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나 구매 후 요인을 우선 고려하는 요즘 사람들의 구매 패턴과는 다소 상반되는 단순한 소비 성향을 보입니다. 폴란드의 경기 호조에 힘입어 잘 알려진 현지 브랜드와 협업해 진출한다면 폴란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캐칭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르샤바에 불어닥친 건설 붐
브랜드 세일 및 프로모션
2. 소비의 주체는 여성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여성은 남성과 비교할 때 사회에서 평등한 지위를 얻기가 어려웠고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에 통제됨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도 차이가 생겨 여성은 주로 가사와 허드렛일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 시절 폴란드 남성은 대체로 폴란드 여성보다 많은 여가를 즐겼고, 남성의 평균 소득도 여성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시절 소비의 주체는 남성이었으며 남성이 가정을 이끌어갔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폴란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1989년 이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폴란드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더 높아지면서 성 역할에서 긴장된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많은 폴란드 여성들은 실제로 남성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이 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으며 일자리에 대한 불평등에 저항하며 사회 전반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폴란드 여성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가사에 대한 책임을 남성에게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가족의 경제권이 여성에게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폴란드 대부분의 부부가 대체적으로 맞벌이를 하지만 가정의 경제권, 즉 소비의 주체는 아내입니다.
이러한 폴란드 소비 주체인 여성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세계 제일의 컴플레이너'라는 점입니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 공산주의의 억압, 지리적 환경에 따른 기후 등 이러한 복합성이 세계 제일의 컴플레이너라는 수식어를 따라붙게 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여성은 이 단어에 대해 불쾌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고객 조사를 하면서 만난 폴란드 여성들은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좋고 싫음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드러내 컴플레이너라는 점이 더욱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상품이나 서비스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거침없이 의견을 밝힌다고 하니 자사 진출 시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폴란드 여성에게 가족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이므로 시장에 진입할 때 이 점을 고려한다면 폴란드 여성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선보이기를 좋아하는 폴란드 여성의 특성으로 인해 타 동유럽 여성보다 코스메틱과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이나 TV 광고 등의 정보보다 자신들이 속한 그룹(친구, 직장 등)에서 공유하는 정보를 신뢰합니다. 폴란드 여성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그들이 졸업해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며 받는 임금은 생각보다 낮아 월평균 90만 원가량입니다. 이는 남성보다 낮은 수준으로 이들이 소비에서 왜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폴란드 여성들
3. Generation Z의 주목
폴란드는 지금 밀레니얼 세대보다 Z 세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노령화 문제를 우려하는데, 2020년 이후에는 경제 활동 인구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적을 것으로 예상하며 이러한 문제에 대비해 밀레니얼 다음 세대인 Z 세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Z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50% 정도 더 적지만 이 세대가 교육, 경제 및 마케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Z 세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정확하고 실용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Z 세대가 경제 위기 의식 속에서 자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이 낮고 보안에 더 집중하며 적절한 행동 기반과 학습을 인터넷에서 찾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 태어난 Z 세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인터넷 시대의 주축이었던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생, 대략 18~36세)에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 온리(Only)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24시간 디지털 생활이 익숙한 Z 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출생, 대략 13~21세)의 트래픽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 둘을 뭉뚱그려 디지털 세대라고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철저하게 나누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폴란드의 Z 세대의 소비 습관을 살펴보면 브랜드와 회사에 대한 충성도보다 사야 할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사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보다 '자신의 소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욱 고민하며 자신이 사용한 제품의 사용 후기를 남기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등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토리가 있고, 진정성과 가치가 있는 브랜드를 선호해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는 Z 세대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인터넷에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스토리 있는 제품을 찾을 수 있으며 제품 구입으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어떤 소비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에 Z 세대에게 어쩌면 백화점과 쇼핑몰은 더 이상 쇼핑 장소가 아닐 수 있습니다. 분명 다른 사회의 젊은 세대의 소비 습성과는 양상이 다르지요.
또한 밀레니얼 세대가 방송 속 셀럽을 동경하고 그들의 패션, 언어, 모습 등에 영향을 받는다면, Z 세대는 모바일 속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이들은 방송 셀럽보다 모바일 속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제품에 더 주목해 폴란드 기업들은 이러한 인플루언서를 잘 활용하려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Z 세대는 과거 세대에 비해 브랜드의 유명도를 따지기보다 개성을 중시합니다.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등을 검색하며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품을 찾는데 이러한 성향이 브랜드 충성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카테고리별로 제품마다 다른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 이러한 점을 폴란드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브랜드의 충성 고객을 키우기는 어렵지만 제품의 충성 고객을 키우기는 적합한 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Z 세대의 특징은 자국에 대한 애정도도 높으나 열린 태도로 글로벌 문화를 수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국제적인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전 세계의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며 동서양 문화와 만납니다. 이러한 Z 세대의 문화 수용도가 폴란드의 한류를 이끄는 주체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폴란드 Z 세대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
4. 화장품 구매 고객의 소비 특징
2017년 폴란드 화장품 시장의 가치는 5.8조로 유럽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시장의 기대 성장률도 다른 유럽 국가와 대비해서 가장 높습니다. 동유럽권으로 시장을 나누어보면 폴란드의 화장품 시장 규모가 가장 크며,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의 연대 측정가들은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게 추정했습니다. 이는 세계적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으로 폴란드가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에서 화장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자연주의 원료, 가심비, 메이드 인 폴란드입니다.
유기농, 천연, 에코, 웰빙, 로하스 등 한때 우리나라의 소비 트렌드를 이끌었던 흐름들이 이곳 폴란드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생활 속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쇼핑몰이나 거리를 지나다 보면 로가닉과 관련한 음료 및 식품, 제약, 생활용품, 화장품 등에 대한 광고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최근 경제 성장과 더불어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로가닉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폴란드의 에스테틱 시장이 성장한 데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유로모니터도 로가닉 화장품 시장이 폴란드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화학 화장품 사용의 부정적 영향을 의식한 폴란드 고객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건강과 미용에 안전한 자연주의 품질의 제품을 찾습니다. 덕분에 로가닉 콘셉트의 화장품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폴란드 자국 자연주의 화장품인 지아자는 현지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블로그나 화장품 관련 SNS에서 다양한 로가닉 제품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성분을 비롯해 실제 고객들의 사용 후기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폴란드인이 화장품을 구매할 때 로가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앞서 체감 물가에서 소개했듯이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가격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부 현지 업체의 값싼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가격이 낮은 브랜드나 제품이 폴란드 에서 쉽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과 가격, 서비스까지 모든 요소를 고려한 가심비가 화장품 구매의 중요한 요소로 판단됩니다.
또한 폴란드 고객은 자국에서 생산하고 자국에 기여하는 글로벌 회사를 선호합니다. 실제로 세계 브랜드들이 폴란드에 생산 공정이 있으며, 폴란드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Made in Poland'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지 브랜드와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칼럼을 마치며
폴란드는 서유럽과 동유럽 시장 간 지리적,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바르샤바가 유럽의 허브 도시로서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다양한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에 기업들로서는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2014년 폴란드가 EU 회원국이 됨에 따라 EU 시장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폴란드 고객을 사로잡는다면 유럽 고객에게도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많은 이들이 유럽 시장 내에서 폴란드의 시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자사의 유럽 진출 시에도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하기에 이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폴란드는 건설 붐을 비롯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상권이 급변할지 현지인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브랜드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경우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지만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 생활하면서 만난 폴란드인의 성향은 긍정적 기회 요인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급변하는 폴란드 시장을 자사의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며 조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