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스탄불 도시혜초 박종훈입니다. 어느덧 파견 후 3개월이 지나 낯설고 서먹했던 터키에서의 일상들이 하나 둘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진짜 터키, 진짜 이스탄불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에 삶이 있다'(Sokakta hayat var)는 터키 현인(賢人)의 조언을 따라, 주말이면 이스탄불 사람들의 삶을 보러 여기 저기의 작은 거리들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차이 한잔을 마시며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삶이 보이고, 다양한 삶들이 흩어지고 모이길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이스탄불의 문화에,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바쁘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시장이 보입니다. 혹자는 "이스탄불은 볼수록 참 어려운 시장이야"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삶과 문화에 대한 관찰 없이 '시장'만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저도 처음 한달 동안은 막연히 상점에 들르고, 화장품 시장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부지런히 다니다 보니 두 달 만에 주요 상권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들은 거의 다 가보게 되었죠. 그런데 오히려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시장의 플레이어들이(고객, 뷰티전문점 종사자, 리테일 전문가 등)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은 경우가 정말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탄불에서는 무조건 부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드세요. 그래야 팔립니다."
"여긴 매스가 90%인 시장이니까 최대한 싸게, 팩 같은 거 위주로 파세요."
"사람들이 화장품 사용법을 잘 몰라요. 카운셀링할 수 있는 방판채널이나 OBS가 유리하죠."
"신규 브랜드는 무조건 뷰티전문점을 통해 런칭해야해요. OBS로 하면 아무도 관심 없을걸요?"
"한국이요? 이스탄불은 유럽/미국 지향의 도시에요. 아시아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는…… 글쎄요."
"일본과 한국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모이면 한두 명씩은 한류팬인 경우도 많구요."
정보의 혼란을 경험하며 다른 무엇보다 가설/검증의 기준이 되는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일이 정말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로컬에 대한 이해로부터,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안목 없이는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의 첫 3개월은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사람들을 만나 주요 질문(Key Question)을 던지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하지만, 8월부터는 저만의 관점을 가지고 도시화/전문직 여성 증가에 따른 매스브랜드 분화 및 매스티지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터키 여성이 선호하는 스킨케어 브랜드의 퍼스널리티 분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 터키시장에서 주목할만한 브랜드가 있어서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유럽 및 성숙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프랑스 자연주의 매스 브랜드인 YVES ROCHER입니다. 최근에는 성숙시장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인해 부진한 성장률('14년 기준 4%)을 보이고는 있지만, 2012년 터키에서 가장 큰 메이크업 브랜드인 Flormar를 인수하며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터키 시장에서 YVES ROCHER를 주목하는 이유는 Flormar와의 시너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매스-매스티지 가격대의 유일한 자연주의 OBS이기 때문입니다. OBS만을 생각하면 키엘/록시땅/클리니크/바디샵 등도 존재하지만 가격대가 높거나(록시땅/클리니크) 사람이 없거나(키엘) 제한적인 상권에만 입점했다거나(대부분), 헤어/바디 제품에 편중되어 팔린다거나(바디샵/록시땅) 등의 한계가 있는 반면, YVES ROCHER는 대부분의 주요상권에 위치해있으며 전 연령층에서 그리고 비교적 다양한 유형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터키에서 매스티지 스킨케어 OBS의 가능성을 엿보기에는 가장 좋은 관찰 대상입니다.
VIALAND 쇼핑몰 내 YVES ROCHER 매장 전경 및 카운셀링 모습
특히 이스탄불의 젊은 직장인 여성들은 '자연주의' 컨셉에 열광합니다. '아름다움' 혹은 '화장품'에 대한 인터뷰를 하다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자연스러운(Doğal)'입니다. 자연주의만큼 모호한 브랜드 컨셉도 없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실제로 YVES ROCHER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성숙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 + 자연주의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입니다.) 아직까지는 매스시장의 분화가 시장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분석에도 동의하지만 적어도 터키에서는 '구매할만한 가격대의' '유기농/자연주의' 브랜드라고 했을 때 YVES ROCHER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직장여성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차별화를 위한 소비'가 점점 더 확대되고 그 결과 매스->매스티지로의 가격이동, 그냥 매스->자연주의 매스로의 컨셉이동, 색조 위주->스킨케어 위주로의 유형이동 등 차별화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들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YVES ROCHER는 하나의 종합적인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품/서비스를 통해 터키의 뷰티트렌드를 선도하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한 공간에서 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뷰티전문점과는 달리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할 수 있는 OBS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가격에 따른 제품추천 및 크로스&업셀링 위주의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뷰티전문점에 비하면 카운셀링에 대한 만족감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뷰티 전문점에서는 좋은 브랜드=비싼 브랜드의 카운셀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직장여성과의 인터뷰에서 약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전문적인 공간경험과 카운셀링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터키에서도 카운셀링이 차별화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 추천하는' 터키사람들의 문화를 고려한다면 카운셀링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YVES ROCHER가 인수한 Flormar의 경우 가격은 매스이지만 매스티지의 공간경험을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카운셀링 기반의 OBS입니다. 메이크업 제품의 특성상 스킨케어나 헤어/바디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카운셀링이 중요한 것도 있겠지만 Flormar를 방문할 때마다 '가격'을 보고 놀란 후 친절한 카운셀링에 한번 더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압도적인 SKU와 프레스티지를 지향하는 카운셀링이 Flormar의 성공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Trump Tower 내 Flormar 매장 전경 및 인기 립글로즈 색상
제품과 관련해서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YVES ROCHER를 방문한 날 멤버십 카드를 만들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분이 들어와서 뷰티파트너에게 쪽지를 보여주더군요. 그러더니 뷰티파트너가 굉장히 급하게 샴푸와 박스 하나를 집더니 봉지에 담았습니다. 제가 터키에 온 이후 이렇게 신속한 대응을 처음 본 터라 "뭘까?"하고 굉장히 궁금했었는데요. 남자분이 계산하고 간 다음에 뷰티파트너에게 제품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다름아닌 'Hair Loss Therapy' 제품이었습니다. 남자분이 세일기간에 제품을 구매하러 왔는데, 아무래도 'Hair Loss' 관련 제품이고 터키에서는 남자가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그리고 뷰티파트너가 고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신속한 구매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터키 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탈모인데요. 기-승-전-탈모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잘생기고 패션 감각도 있는 남자들이 탈모 때문에 스타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터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이 원인이다", "유전이다", "비올 때 우산을 안 써서 그렇다" 등등 다양한 가설(?)을 내세우는데요. 그 원인이 무엇이든 YVES ROCHER에서 자연주의/유기농의 장점을 살려 로컬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nti-Hair Loss 프로그램 69.90TL (4주분), Anti-Hair Loss 샴푸 25.90TL (200ml)
YVES ROCHER는 성숙시장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터키를 필두로 신흥시장으로의 진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터키 화장품 시장 전체적으로는 럭셔리/매스를 막론하고 L'Oréal 그룹 브랜드들의 성장세가 눈부시고, 그 가운데 스킨케어 OBS 브랜드의 성공을 논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지만, 터키에서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 만으로도 YVES ROCHER(&Flormar)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로컬의 삶으로부터 시장의 가능성을 찾는 혜초로서 아모레퍼시픽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겠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늘 감사 드립니다!
혹 YVES ROCHER Anti-Hair Loss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싶으시면 댓글이나 메일로 알려주세요! 11월말에 살포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앞으로 총 18인의 글로벌 도시 전문가 '혜초'들의 이야기가 계속 소개됩니다 2016년 도시 혜초는 9월부터 게시판을 통해 2주간 모집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