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티에고에서 이형호 님이 전하는 이야기! - AMORE STORIES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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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에고에서 이형호 님이 전하는 이야기!

[글로벌 레이더] 아모레퍼시픽그룹 '혜초'들의 현지 생활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산티아고에서 보물찾기 - Que te vaya bien!

2014년,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한지 10년 째, 꿈에 그리던 남미를 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혜초 프로젝트'를 통해서 입니다.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남아메리카의 한 켠에 길게 태평양과 접하고 있는 칠레로 혜초 여정을 떠나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펼쳐진 길지도, 짧지도 않은 4개월 동안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 지진을 만나다

칠레에 가기 전에, 칠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세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와인이 유명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남극 세종기지를 가려면 칠레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지진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칠레는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어서 자주 지진이 일어나는 국가 중 하나 입니다. 그래서 혜초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기 전에 칠레의 지진 발생 기록을 살펴본 결과 4~5년에 한 번씩 6점대 이상의 큰 지진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였고, 올해 이미 6점대의 큰 지진이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더 이상 큰 지진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칠레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확률은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열흘쯤 지났을 때입니다. 당시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의자의 떨림을 느꼈습니다. 순간 '아, 지진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짧은 호텔 생활을 마치고, 한 아파트 14층에 방을 얻어 본격적인 현지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집을 얻을 때에도 지진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8월 23일 토요일 저녁, 집에 앉아서 자료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창 밖을 보니 동네가 모두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순간 건물에 떨림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P파와 S파가 떠올랐습니다. 'P파는 종파, S파는 횡파로 오기 때문에 S파의 피해가 더 크다. 때문에 P파가 발생하면 S파가 오기 전에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건물이 크게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저는 23층짜리 건물 중 14층에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나? 정전인데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야 하는구나. 건물이 무너지는 속도보다 빨리 내려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탈출을 포기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다행히 지진도 잦아들었습니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밀려 왔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전기가 다시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지진 관측이 나오는 것을 살펴 보니, 6.8도의 강진이었습니다. 자연이 저의 교만함을 무참히 짓밟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산티아고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강진이었지만 건물 하나, 인명피해 하나 없었습니다. 이번 지진은 저 같은 지진 초심자를 놀리는 인사였나 봅니다. 지금은 저도 가벼운 지진에는 자다가 잠시 깼다가 다시 자는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14층 집에서 바라본 산티아고 저녁 풍경

2. 테러를 만나다

칠레는 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인근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도둑, 강도 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피해자는 여행객들과 같은 외국인들이어서 사실보다 소문이 더 크게 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때문에 도둑 조심하라는 소리는 들어도 테러 조심하라는 소리는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칠레에서는 테러도 조심해야 합니다.

칠레 정부 발표로는 2005년 이후 200여 건의 폭탄 테러가 있었으며, 붙잡힌 범인 대부분은 무정부주의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무정부주의자 역시 학교에서만 배우던 단어인데, 막상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올해 8월 시내 중심가 경찰서 앞에서 밤에 폭탄이 터졌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간의 기록을 다시 보면 대부분의 폭탄 테러가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하기 보단 정보 기관에 대한 시위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올 9월 제가 사는 집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지하철역의 쓰레기통에서 폭탄이 터지는 테러가 발생하였으며, 이 때문에 지나가던 행인 14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 지하철역은 Escuela military(사관학교)가 있는 역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번 테러의 범인은 일주일 만에 검거되어 사건은 해결되었으나, 테러가 갈수록 대범해 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는 충분했습니다.

테러 다음날, 산티아고 지하철 역사 내 쓰레기통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서울의 지하철이 테러 위협을 받고, 모든 쓰레기통을 없앴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같은 결과이지만, 체감하는 공포는 많이 달랐습니다. 역시 서울이 좋습니다.

도둑, 강도에서부터 테러까지 칠레 생활은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나날이 되었습니다.

(좌) 테러 전 벽에 걸려 있는 쓰레기통 (우) 테러 다음 날 사라진 쓰레기통 자리의 자국

3. 자연을 만나다

우리나라에서 한여름을 지내면서 칠레로 떠나왔습니다. 도착하니 여기는 한겨울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해가 나는 갑갑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낮에는 그래도 따듯한데, 밤에는 찬공기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칠레는 집들이 대부분 난방도 잘되지 않습니다.(저희 집만 그런 게 아닙니다. 확인해 봤습니다.) 남쪽에서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집에 있는 게 좋습니다. 맑은 날이라도 남풍이 불어오면 냉동고에서나 느낄 수 있는 한기를 머금은 습기 가득한 남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얼음을 맨살에 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여기에 따듯한 남쪽 나라는 없습니다.

저희 집 뒤에는 산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3000미터가 조금 넘는 산입니다. 산티아고 도시에는 눈이 오지 않아도 이 산은 겨우 내내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주말에 썰매를 타거나 피크닉을 즐기러 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도 있어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북반구의 스키어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올라가면 머리가 아픕니다. 고산병이랍니다. 술 마신 후 술이 깰 때 느껴지는 찜찜한 통증입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입니다.

산티아고 사람들은 겨울이 우기라 습하다고 합니다. 일년 중 비가 오는 때는 겨울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겨울도 저에게는 매우 건조합니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으면 바로 피부가 갈라질 때가 있습니다. 이 건조한 우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7월의 눈 덮인 안데스

4. 사람을 만나다

제가 남미를 좋아하게 된 것은 소싯적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입사 이력서의 특기란에도 탱고라고 적었었습니다. 면접보시던 어느 분이 이건 뭐냐고 물어 보시길래, 글로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벌써 십 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춤추러 다녀 본 몇몇 국가와는 다르게 이곳은 실버 세대들이 잘 놉니다. 연금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남미 특유의 쾌활함이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유지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분들은 탱고뿐만 아니라 살사면 살사, 스윙이면 스윙 등 다양한 방면의 춤을 잘 춥니다. 멋있고 세련되게 춘다기 보다는 파트너와 즐겁게 잘 춥니다. 막 쓰러질 것 같이 걸어 다니면서도 음악이 나오면 훨훨 날아다닙니다.

제가 탱고를 추러 밀롱가(탱고 추는 장소)에 가면, 대부분 어르신들이 부부동반으로 옵니다. 제가 여자분에게 춤을 신청하려면 옆에 부군에게 허락도 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젊은 동양 남자애 하나가(제가 젊지는 않으나 여기 분들은 구분을 못합니다. 28세 정도로 저를 보더군요.) 탱고를 추러 온 것을 보고는 희한해 하더니 지금은 많이 귀여워해줍니다. 안 되는 스페인어도 들어주고, 가벼운 회화로 대화를 끌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보답으로 또 한 춤 신청합니다.

탱고를 즐기시는 어르신들

한동안 어른신들과 지내다 산티아고의 젊은이들이 궁금해 졌습니다. 이 궁금증은 산티아고 내 한류를 조사하던 중에 풀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가씨들이 좋아하는 K-POP 스타들을 따라 팀을 만들고, 그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사가 이해되지 않아도 춤이 좋다는 그녀들은 한국인인 저에게도 호감을 보이며 친절히 대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취재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마땅히 연습할 장소가 없어서 상점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무척 흐뭇하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젊어서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연습하는 산티아고의 K-POP 스타들

5. 그럼, 보물은?

이번 컬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목을 '보물찾기'로 적어놓고 과연 무엇이 보물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칠레를 구성하는데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그것이 테러일지라도 말입니다.

* 제목에 적힌 'Que te vaya bien'의 뜻은 '잘 지내, 잘 될 거야'라는 의미입니다.



[에필로그]

어느 날 거리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티아고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애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저를 부르는 것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 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손짓을 합니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찍었다는 OK사인을 보내니 고맙다고 하면서 갑니다. 사실 제가 더 고마운데 말입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예쁜 커플


# 산티아고 시민이 되는 9가지 방법

1) 엘리베이터나 상점 등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습관적으로 'Hola'를 말하고, 헤어질 때는 'Chao'라고 말한다.
2) 조금 친해지면 안아주면서 뺨을 맞대고 볼에 뽀뽀하듯 '쪽' 소리를 내준다. 실제 뺨에 뽀뽀해도...
3) 음식점에선 웨이터는 정말 오지 않는다. 기다림은 칠레인의 미덕이다.
4) 공원, 지하철, 노상 벤치 등에서 나이불문하고 애정행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5) 점심은 1시부터, 저녁은 8시부터.
6) 반주로 pisco sour를 마신다.
7) 음식은 짜게 먹는다.
8) 지진에 놀라지 않는다.
9) 말은 일단 빠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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