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방문판매, 여성에게 희망을… - AMORE STORIES
#창업자 이야기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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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방문판매, 여성에게 희망을…

창업자
이야기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 담긴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요약해 소개합니다.


제7화. 방문판매, 여성에게 희망을…



1962년 3월, 장업계의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가 여러 문제에 봉착하자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은 '태평양화장품판매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장업계는 물론 제조회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유통전문회사라는 상징성을 지녔지만,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전통적인 유통 구조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제2의 유통방안을 다시 모색하던 서성환 님에게 방문판매 제도가 떠올랐습니다.

방문판매의 핵심이라면 제품, 조직, 인력이 중요한데, 다행히 제품력에 한해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를 개발하고, 상금을 내걸어 전 사원을 대상으로 브랜드 이름을 공모했습니다. 100여 편의 응모작 중에서 하나가 채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화장품의 대명사처럼 여성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아모레(Amore)였습니다.

다음으로는 판매망 구축이 필요했습니다. 서성환 님은 전국을 행정구역에 따라 바둑판처럼 나누어 구역을 정하고 특약점을 설치해갔습니다. 이렇게 조직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판매망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갔습니다. 1980년에는 특약점과 영업소를 합친 숫자가 664군데, 활동하던 판매원만 해도 1만6천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은 판매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제품과 조직이 갖추어져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우수한 판매원 확보가 성과를 좌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성환 님은 전쟁미망인들에게 주목했습니다. 당시 전쟁미망인만 해도 37만 명에 달했고, 전쟁 중에 상처를 입은 상이군경들까지 포함하면 여성 가장이 그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여성으로서 한 가정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할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과 회사 모두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모레 아줌마'라고 불리던 그분들이 "저예요. 아모레 왔어요." 하면 우리 어머니들은 언제든 기분 좋게 대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서성환 님은 방문판매의 안착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내 최초로 미용 사원 제도를 시행해 소비자들에게 갖가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했고, 방문판매원의 교육을 위해 사내보 '아모레 뉴스'를 발간하였으며, 광고를 통한 이미지 제고 등 아모레 알리기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서성환 님은 방문판매를 시작한 후 3년 동안 집에서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언제나 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방문판매 제도는 태평양의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고,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산파였습니다. 많은 운영 기법의 개발과 창조적 노력으로 방문판매제도가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본질에서는 진정 사람을 아끼고 구성원 모두를 주역으로 존중해 주는 기업 마인드,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성환 님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003년 서성환 님이 세상을 떠나고, 유족들은 기금을 조성하여 저소득 한 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방문판매라는 제도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이 더 큰 희망을 품도록 손을 내밀었던 서성환 님의 따뜻한 마음이 지금은 희망가게를 통해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 본 칼럼은 창업자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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