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Supreme, 패션계의 뉴 럭셔리 혁신 - AMORE STORIES
#안현진 님
2018.01.23
54 LIKE
1,452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c%a0%9c6%ed%99%94-supreme-%ed%8c%a8%ec%85%98%ea%b3%84%ec%9d%98-%eb%89%b4-%eb%9f%ad%ec%85%94%eb%a6%ac

제6화. Supreme, 패션계의 뉴 럭셔리 혁신

칼럼니스트안현진 님
아모레퍼시픽 프리미엄전략팀


#1. 대중에게 잊히고 싶지 않은 오혁

 요즘 개인적으로 챙겨 보는 몇 안 되는 방송 중에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태양, CL, 오혁의 뮤지션으로서의 삶과 무대 밖 일상을 공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인데요. 그중 언더그라운드 감성의 혁오 밴드가 해외 공연 일정을 소화하던 중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리더 오혁과 기타리스트 현제와의 의견 충돌을 보면서 저는 내심 세 번 놀랐습니다.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中 오혁과 현제의 대화 (출처 : 네이버TV)

기타리스트 현제 : 나는 앨범 만들고 싶어. 공연도 좋지만 맘 같아선 반년 정도 온전히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리더 오혁 : 아직은 쉴 때가 아니야. 어쩔 수 없어. 한국 시장이 너무 빠르잖아. 3주만 지나면 헌 앨범 취급받는데, 6개월을 한다는 게 좀… 요즘 트렌드에도 안 맞잖아. 우리가 소비하는 패턴에도. 요즘은 다 빠르게 치워버리잖아. 모르겠다. 진짜 막 정점을 찍고 나면 모르겠는데.

기타리스트 현제 : 정점이라는 게 어느 순간 갑자기 오는 게 아니잖아. 좀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고 집중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거지.

리더 오혁 : 나는 포커스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 우리가 6개월 동안 사라지면, 대부분은 관심을 안 가져.

기타리스트 현제 : 잊히는 것에 두려움을 갖다가, 음악적으로 더 큰 것을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

-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中 오혁과 현제의 대화 편집
 첫 번째로 놀란 건 과묵하기만 한 줄 알았던 오혁이 자기주장을 유창하게 하는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유행에 무심할 것 같은 인디 밴드가 대중의 반응을 의식하며 잊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으며, 세 번째는 데뷔 3년 차 뮤지션이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성장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음반 시장에서 자신들의 콘텐츠가 어떻게 유통/소비되고 그 끝이 얼마나 짧은지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유행의 사이클이 짧아지는 현상은 제작 기간도 길고 투자비도 큰 스크린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에는 무려 200억이나 투자한 대작 <군함도>가 개봉 2주 차에 교차 상영으로 스크린에서 밀려나 손익분기점 도달에 실패한 사건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군함도>의 정윤철 감독은 영화 개봉 일주일 만에 <택시운전사>로 교체하며 가차 없이 <군함도>를 내린 극장의 결정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죠. 투자비가 클수록 반드시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며, 시장 수요에 따라 상영이 조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급 플랫폼의 결정권이 제작사보다 강해지면서 흥행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사실이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한국 영화 대표 감독과 배우 및 스태프들의 피땀 어린 결과물이 이처럼 허망하게 1주 천하로 끝난다는 건 분명 비이성적이고 소모적인 집단 광기이다. 그 중심엔 바로 통제 불능의 슈퍼 울트라 갑 극장들이 있다. 그들은 매번 새 영화가 나오면 욕을 먹든 말든 엄청난 스크린을 잡아 무리하게 관객몰이를 해대며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는 힘빨이 딸리면 곧바로 야멸차게 내던진 후 새로운 신상으로 우르르 갈아탄다.

- 정윤철 감독의 <군함도를 잽싸게 탈출한 극장들 택시를 잡아타다> 中 일부

#2. 유행을 연장하는 방법

 대박과 열풍은 가뭄이고, 유행 사이클은 짧아졌습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이렇게 빠른 소비 트렌드는 근본적으로 시장 내 주도권이 생산자→유통자, 공급자→소비자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유통/소비 방식 변화에 민감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뿐만 아니라 식품, 패션, 뷰티 등 산업 전반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각 업계는 이러한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주기를 짧게 끊어 소소한 중박 여러 번을 노리거나, 롱테일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으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공들여 준비한 콘텐츠도 3주면 생명을 다해버리는 음반 시장에서도 유행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한 방법들이 고안되어왔습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10곡이 넘는 정규 앨범 발매 대신 1~2곡 정도의 작은 싱글을 여러 번 출시해 묻힐 뻔한 비(非) 타이틀 곡들을 살리거나, 시리즈 개념을 도입해 대중들을 꾸준히 기다리게 하고 있습니다. 매월 초 2곡씩 신곡을 발표하며 총 11곡을 M/A/D/E/MADE 5개의 시리즈 앨범으로 출시한 빅뱅도, 매월 1곡씩만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도 그러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콘텐츠 자체를 질적으로 끌어올렸다기보다는, 콘텐츠의 유통/소비 방식을 이해하고 적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웰메이드 제품 제작에 모든 것을 베팅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게 유행을 연장시키는 브랜드 중 하나인 Supreme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3. 스트리트 패션계의 샤넬, Supreme


설립 • 다운타운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중심으로 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뉴욕, 1994년)
운영 현황 • 규모 : 약 1조 원($1.1B) 가치 평가(재무지표 비공개), 직원 50여 명 근무
• 점포 : 직영 로드숍 11개점(미국/유럽/일본) + 온라인 직영몰 운영
- 사모펀드 The Carlyle Group 지분 50% 매각 → 중국/한국 등 아시아 사업 확장 계획 有
특이 사항 • Drop 방식 유통으로 희소성과 새로움 부여
-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마다 리미티드 신상품 릴리스(5~15 SKU/week)
- 직영 플랫폼에 독점 유통
•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브랜드 화제성 지속
- 브랜드 협업 : Louis Vuitton, Comme des Garçons, Levi's, Vans 등
- 아티스트 협업 : Damien Hirst, Takashi Murakami, Richard Prince 등
• 충성 고객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 발달
- Weekly Drop과 컬래버레이션 상품 정보 공유하는 'Supreme Community'
- 희소성 있는 제품들을 재판매하는 Secondary Market 발달(ex. Grailed, eBay 등)
 스트리트 패션계의 샤넬이라 불리는 이 브랜드는 사실은 스케이트보드용 티셔츠를 판매하는 가게로 시작했습니다. 보드를 중심으로 힙합, 스트리트 문화 전반으로 취급 품목을 점차 다양화하기 시작하다가 요새는 벽돌, 젓가락, 삽, 사케 병과 잔, 썰매 등 일상생활 속 물건들에도 Supreme 로고를 찍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유용성과 기능성과는 거리가 먼 이 상품들이 매번 몇 초 만에 품절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죠. 특히 Gen-Z와 밀레니얼 세대가 Supreme에 열광하는 소비 심리는 알고 보면 화제성과 선망성, 희소성에 길들여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Supreme에서 출시한 특이한 제품들 (출처 : 조선일보)

  • 2017년 Supreme X Louis Vuitton 컬래버레이션 (출처 : Supreme)

 젊은이들이 Supreme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베트멍의 DHL 티셔츠, 발렌시아가의 IKEA 쇼핑백처럼 어딘가 반항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제품 콘셉트가 지금 이 시대의 쿨한 감성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베이직 패션 아이템에 충실하면서도 이런 독특한 제품을 꾸준히 곁들여 출시함으로써 핫이슈의 중심이 되고자 했죠. 또 거물급 브랜드나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협업하면서 끊임없이 화제를 일으켰고, 힙합 뮤지션들과 셀럽들이 애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들에게 선망성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Supreme은 젊은 충성 고객들을 끊임없이 수혈할 수 있었고, 이제 단순히 옷을 만드는 제조 업체가 아닌, 다른 브랜드들이 협업하고 싶어 안달하는 힙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랭킹 브랜드 2016년
팔로어 수
2017년
팔로어 수
증감
1 Chanel 15.5m 25.1m +9.6m
2 Gucci 11.1m 19.2m +8.1m
3 Louis Vuitton 13.1m 20.1m +7m
4 Dior 11.9m 17.8m +5.9m
5 Victoria Beckham 12.1m 17.8m +5.7m
6 Supreme 3.2m 8m +4.8m
7 Dolce & Gabbana 10.6m 15.1m +4.5m
8 Prada 9.7m 14m +4.3m
9 Calvin Klein 6.8m 10.7m +3.9m
10 Versace 7.1m 10.6m +3.5m

<표> 2017년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신규 팔로어를 획득한 디자이너 브랜드 랭킹 (출처 : 인스타그램)


#4. Supreme is the New Luxury

 Supreme의 독특한 제품들이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사실 고객들은 제품이라기보다는 브랜드를 소비한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Supreme 로고가 없으면, 가치가 현격하게 떨어지는 물건들이 많기 때문이죠. 요즘같이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낮고, 각종 가성비 제품과 차별화된 품질로 무장한 1~2가지 제품으로만 승부하는 브랜드 트렌드가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Supreme이 브랜드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바로 패스트패션의 빠른 회전성과 럭셔리 브랜드의 희소성을 결합한 유통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 2017년 마지막 Weekly Drop List (출처 : Supreme Community)

  • 2017년 마지막 Weekly Drop의 SKU별 온라인 품절 시간 (출처 : Supreme Community)

 일반적으로 패션 브랜드들이 춘하/추동으로 크게 2 시즌제로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Supreme은 일주일 주기로 신상품을 출시합니다. 미국 시간 기준,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마다 신상품을 릴리스하는데, 이를 Drop이라고 부릅니다. 한 번에 5~15 SKU 정도의 소품종을 시장 수요에 못 미치는 재고량으로 공급하고, 11곳의 직영 매장과 온라인 직영몰을 통해서만 리미티드 신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희소성의 가치가 증폭되고, 매주 신상품으로 교체되다 보니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됩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위클리 신제품 출시 방식에 중독되어 충성 고객이 되고, 굶주린 충성 고객들을 겨냥한 리셀러들이 등장하면서 Supreme은 언제나 품절을 자랑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게 됩니다.
  • Figure 9. 소비자가 vs. 리세일가 비교
    (출처 : The Supreme Retirement Plan : How to Become a Millionaire by Flipping Streetwear)

 흥미로운 것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높은 가격으로 희소성을 조절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데 반해, Supreme의 경우에는 공급량을 제한해 희소성을 추구하면서도 고가 포지셔닝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Supreme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저가 전략을 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Supreme은 쿨한 이미지와 문화를 토대로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먹고 사는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의 트래픽을 기반으로 플랫폼처럼 가치를 키우는 게 우선이고, 다른 브랜드들이 그 플랫폼에 참여하고 싶게끔 만들어 생명력을 지속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Supreme은 기존과는 다른 New Luxury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마지막 칼럼을 마치며…

 Supreme의 사례를 마지막으로 1년간 연재한 'Insighting room' 코너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글솜씨가 서툰지라 많이 공부하고 여러 번 퇴고하면서 내용이 알찬 글로 찾아뵙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상 이슈들을 소비만 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제 생각을 직접 정리해서 콘텐츠로 생산하는 연습을 하게 되어 즐거웠고, 생각보다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관련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저에게도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칼럼에 관심 보여주시고 '좋아요'와 '댓글'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좋아해

    54
  • 추천해

    0
  • 칭찬해

    0
  • 응원해

    0
  • 후속기사 강추

    0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