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이야기를 담은 옷 - AMORE STORIES
#조현희 님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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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야기를 담은 옷



Prologue

 Jambo!

 추운 겨울이 훌쩍 다가왔습니다. 옷장에서 패딩과 목도리를 꺼내 입기 시작하면서, 한 번쯤은 따뜻한 나라에 가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기도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우간다에서 살아서 그런지, 여전히 추위가 두렵고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한국의 겨울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따뜻한 나라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는지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커다란 아프리카 대륙에는 정말 많은 부족이 있는 만큼 언어도 2,000개에 달하며 전통 문화나 옷의 종류도 각양각색입니다. 서구의 영향으로 들어온 양장복이나 청바지, 실크와 달리 아프리카 고유의 재료로 만들어진 옷은 매우 화려하고 다채롭습니다. 패션의 중심 파리의 여러 런웨이에서도 아프리카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옷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전통 의상 세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Bogolanfini

 서부 아프리카 말리의 Bambara 부족이 쓰는 언어로 Bogolanfini는 진흙 옷이라는 뜻인데요. 'Bogo'는 흙 또는 진흙을, 'lan'은 ~으로를, 'fini'는 옷을 각각 의미합니다. 즉 Bogolanfini는 흔히 발효된 진흙으로 염색한 전통 천과 의상을 아우르는 말로, 말리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Bogolanfini를 만들 때, 전통적으로 말리 부족의 남자는 천을 짜고 여자는 염색을 담당합니다. 베틀로 짠 천은 아프리카 자작나무 잎으로 만든 염료인 n'gallama로 노랗게 염색합니다. 이 노란 천을 햇볕에 잘 말린 후, 강가에서 채집해 일 년 간 발효시킨 진흙을 이용해 무늬를 그립니다. 말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무늬를 다 새기면, Bogolanfini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천이 완성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되는 진흙은 높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n'gallama 나뭇잎의 타닌산과 진흙의 산화철이 반응하여 타닌산철(iron tannate)을 생성하며, 이 성분으로 천을 검정색으로 염색할 수 있습니다. 나뭇잎 염료를 씻어낸 천에 발효된 진흙을 사용하여 여백을 추가로 염색하거나 무늬를 더욱 뚜렷하게 하기 위한 덧칠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합니다. 직선, 곡선, 점 등을 사용해 일상 생활 속의 물건과 행동을 묘사하는 다양한 추상적인 문양을 그려 넣는데요. 각 문양의 의미와 그림을 그리는 비법은 대대로 어머니가 딸에게 전수합니다. 말리 여성은 이 문양을 통해 부족의 역사와 속담, 개인의 이야기 등을 담아내며, 수작업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기 때문에 지구상 동일한 Bogolanfini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을 직접 짜는 것부터 여러 번의 염색 과정을 거쳐 Bogolanfini를 완성하기까지는 2~3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나긴 작업과 말리 사람들의 정성이 가득 담겨야 진정한 Bogolanfini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이 전통 의상은 말리 부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말리 사람들은 특히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때에 Bogolanfini를 입습니다. 특히 이 옷은 결혼, 출산, 성인식 등에서 악운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중요한 물건이자, 사냥터에서 사냥꾼들을 지켜주는 위장복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말리 사람들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나타내는 Bogolanfini를 입기도 합니다.

 디자이너 Chris Seydou는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사라져가는 Bogolanfini를 1971년 파리에 소개했는데요. 그는 입생로랑과 파코 로반 옷에 Bogolanfini를 적용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에는 더 많은 예술가들이 찾는 전통 의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옷과 인테리어 디자인으로도 높은 인기를 끌게 된 Bogolanfini는 미셀 오바마, 비욘세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무늬가 되었습니다.


Olubugo (Bark Cloth)

 Bark Cloth는 12세기부터 우간다 남부의 Baganda 왕족 중 Ngonge 부족의 공예가들이 왕족과 시민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천 중 하나인 Bark cloth 제작 기술은 이미 천 직조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2008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에 등재됐습니다.
 공예가들은 고무나무의 일종인 Mutuba (Ficus natalensis) 나무 중 8년 이상 된 것들을 골라 속 껍질을 얇게 걷어냅니다. 분리된 속껍질을 다양한 형태의 목재 방망이로 오랫동안 두들겨 적갈색의 천으로 만듭니다. 옛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bark cloth를 토가(toga)처럼 걸치거나 허리에 띠처럼 둘러 입었습니다. 특히 왕족들은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하얀색 또는 검정색으로 염색된 bark cloth를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Baganda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대관식, 장례식 등 특별한 행사 때는 꼭 bark cloth를 입으며, 옷 외에도 커튼, 침대 커버 등 인테리어용 천으로도 널리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천은 Baganda 사람들에게 특히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Baganda 조상들이 사는 땅으로 영혼을 데려다 준다고 믿기 때문에 가족이 죽었을 때 고인의 몸에 bark cloth 일곱 겹을 둘러싸기도 합니다.
 영국의 식민 시절 우간다 문화와 전통을 모두 금지하고 없애려고 한 정책 때문에 bark cloth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오히려 bark cloth 는 오히려 영국에 대한 반항의 표식이 되기도 했습니다. Baganda 왕이 영국으로 납치됐을 때, 수많은 우간다 국민들이 왕에 대한 충성심과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기 위해 이 bark cloth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우간다 국민들의 역사적 아픔과 오랜 전통이 담긴 bark cloth는 재생 가능한 자원인 나무를 손상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지속 가능한 천인 bark cloth를 만들기 위해 Mutuba 나무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천을 만들 때 사용되는 속껍질을 얇게 걷어낸 후, 나무가 다시 아물어 자랄 수 있도록 송진을 바르고 그 위에 바나나 나뭇잎으로 덮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나무가 수분을 유지하면서 벌레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며, 1~5년이 지난 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자라게 됩니다.

 다른 천들과 다르게 염색, 고무화, 탈색 또는 굳히는 것이 불가능한 bark cloth는 현대 옷에는 많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지만,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의 재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고 식물로 만든 소재라는 장점 덕분에 전세계 많은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bark cloth의 행보는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Adinkra and kente

 가나와 코트 디부아르에 살던 Ashanti 제국의 사람들에겐 adinkra라는 인쇄 형태의 천과 엮어서 만드는 직물이 주 의류용 재료였습니다. Gyaman 왕국의 왕의 이름에서 따온 adinkra는 아딩크라 왕이 입던 옷에 찍혀 있던 문양을 본 따 천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adinkra aduru 잉크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Ahsanti 제국으로 넘어와 더 널리 퍼지게 된 이 천은 더 의미 있는 심볼과 자신들만의 사상을 담은 문양을 만들어내어 속담과 역사적으로 특별한 일을 기록하는 데 활용하였습니다. 현재에는 천과 천에 인쇄된 심볼들을 모두 의미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adinkra는 가나에서 결혼식이나 성인식 등 특별한 행사 때 착용하는 옷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단단한 조롱박을 조각하여 만든 도장과 식물성 검정 잉크로 adinkra 심볼을 세 개 이상 천에 찍어내면 adinkra 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arewell'이라는 의미도 뜻하는 adinkra는 빨간색, 갈색, 남색 천으로 만들어 상복으로도 활용되고, 화려한 천 또는 잉크로 만든 adinkra는 특별히 축하해야 할 행사 때 활용되었습니다. 50여 심볼로 시작되었던 adinkra는 현재 모던한 삶의 물건들인 휴대폰, 자동차를 의미하는 심볼에서 정치 파의 심볼까지 포함하여 500여 개가 넘도록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의류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의미 있게 많이 사용되는 adinkra는 미국 흑인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약 400여 년 전 Bonwire 마을의 Krugu와 Ameyaw 형제는 사냥을 나갔다가 거미줄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거미에게 영감을 얻어 raffia 나무(팜 나무 종류)를 사용하여 흑백의 첫 번째 kente 천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형제들이 만든 천을 보고 매우 흡족해 한 Ashanti 왕은 더 다양항 색상으로 천을 만들어 오도록 하였고, 마을의 방직공들은 나무의 껍질과 씨앗으로 만든 다양한 염료로 실을 물들여 화려한 전통 kente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자연 유래 염료는 빨강, 초록, 노랑색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 kente는 하얀색과 검정색을 더불어 5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더 다양한 염료로 실을 염색할 수 있게 되었고, 색상마다 의미를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정색 - 아프리카, 빨간색 - 조상의 피, 노란색 - 금, 초록색 – 숲)
 베틀로 한 줄, 한 줄 엮어내는 Kente 옷은 색으로만 다양한 일화를 담아낸 것이 아니라, 패턴으로도 의미심장한 내용들을 전달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색상으로 만들어진 kente는 이전엔 왕족에게만 허용된 옷이었지만, 요즘은 가나의 일반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이 많이 애용하는 패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섯 번째 칼럼을 마무리 지으며

 이전 칼럼에서 아프리카 대륙만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 후, 조금 더 대중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서구 사회보단 조금 더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옷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옷이란 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 책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무늬와 색깔 뒤에 숨겨진 이 많은 이야기 속에 조상들의 가르침을 매일 되뇌며 더 현명하게 살아가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언젠가 아프리카를 여행하시게 되면 기념품으로 뜻깊은 내용이 담긴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하나 구매 하시는 건 어떨까요? 자연이 준 재료로 만든 의상에 나만을 위한 이야기가 담긴 옷 한 벌이면 아프리카에 대한 추억이 오래오래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akuna Mat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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