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뇌가 그리는 지도, 내가 그리는 세상 - AMORE STORIES
#권구상 님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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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뇌가 그리는 지도, 내가 그리는 세상

칼럼니스트권구상 님
아모레퍼시픽 고객감성Lab


# 뇌과학의 최첨단과 그 너머

 작년 초 현행 뇌과학 연구 방법론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뇌과학 및 인공지능 등의 학계에 적지 않은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Could a Neuroscientist Understand a Microprocessor?'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참고: http://journals.plos.org/ploscompbiol/article?id=10.1371/journal.pcbi.1005268)에서 주장하기를 현대 뇌과학에서 적용되는 방법론으로는 이미 40여 년 전에 나온 8비트 방식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게임기의 작동 원리조차도 파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즉, 게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인간의 뇌를 이해하겠다는 시도에 날카로운 지적을 한 것이죠. 환원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이며 부위별 기능을 중시하는 대다수 뇌과학 연구의 방법론에 대한 조심스럽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논문 저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뇌과학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성과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신기해하며 있는 그대로 믿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근본적인 성찰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걸 깨우쳐 준 의미 있는 소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에 대해 소개 드렸던 칼럼들 중 이번 마지막 6화에서는 '이런 것까지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뇌 영상 기술이 선사하는 화려한 첨단 사례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들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이번 화의 커버 사진이 전체 칼럼의 내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데요. 저명한 과학 잡지인 Nature와 Science의 커버 사진입니다. 먼저 왼쪽의 Nature(2016년 4월 출시)는 여러 단어를 들을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을 조사하여 만든 뇌 사전(brain dictionary) 연구를 커버 사진으로 채택했습니다. 또한 오른쪽의 Science(2017년 10월 출시)는 뇌를 연구하는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연구 조사법을 제시하는 논문들을 묶은 특별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신경과학을 향한 도전'이라는 제목과 함께 강렬한 눈빛으로 저편을 응시하는 인간과 뇌 속 신경네트워크를 표현한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위 내용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 최첨단 뇌 영상 기술

 우리 뇌의 신경세포들이 나타내는 정보의 내용이나 패턴들을 '신경 표상' 또는 '부호'라고 얘기합니다. 특정 자극을 볼 때 해당 정보가 처리되어 신경 부호로 처리되는 과정을 신경 부호화(Neural encoding)라고 하고, 반대로 신경세포의 활성을 측정하여 이 패턴이 어떤 정보를 나타내는지 알아내는 과정을 신경 해독(Neural decoding)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나 고양이를 봤을 때, 시각 세포들이 해당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활성화 되는 패턴인 신경 부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아래 그림에서처럼 시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된 패턴만 보고도 '고양이를 보았다 혹은 강아지를 보았다'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경 해독 기술은 뇌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학습 등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 빨간색이 진할수록 신경세포가 더 강하게 활성화되었다는 뜻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뇌 영상 기술(fMRI)을 통해 방향이나 위치, 물체의 카테고리 정도의 제한된 정보를 해독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미지나 영상, 심지어 꿈의 내용을 해독하려는 시도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0/6128/21). 2011년 한 괴짜 과학자(Jack Gallant, UC Berkeley)가 fMRI 장치로 영화 영상을 보는 참가자들의 뇌 활동을 측정하여 어떤 영상을 보았는지 재현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의 뇌가 영상을 보는 동안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기 위해 사전에 YouTube에서 1,800만 초에 해당하는 영상을 무작위로 가져와서 이것을 보는 동안의 뇌의 활성을 촬영해 둔 데이터베이스를 미리 만들어 두었다고 합니다. 실험을 통해 뇌의 활성만으로 재구성한 영상을 실제로 그들이 본 영상과 비교하면 사물의 윤곽 등 미묘하게 비슷한 점들이 보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nsjDnYxJ0bo). 아직은 색이나 해상도 등에서 차이가 크지만 소위 말하는 '마음을 읽는 기술'에서 거의 처음으로 시도된 사례이고 이후로도 관련 기술들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 않은 미래에 비교적 정확한 영상을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마음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창문을 열었다"는 그 과학자의 말에서 섬뜩함이 느껴지면서도 미래에는 뇌 영상 기술로 어떤 수준까지 구현이 가능할지 기대도 됩니다.
  • (위) 원래 영상 (아래) 신경해독 기술로 재현한 영상. 비슷하다고 느껴지시나요?

 이 과학자는 최근 또 한 번의 색다른 연구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바로 이번 칼럼의 커버 사진 중에 하나인 연구인데요, 언어의 개념을 뇌가 어디에 저장하고 인출하는지 보여주는 소위 '뇌 사전(또는 어휘 지도)'를 뇌 표면에 그리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노인과 바다>, <모비딕> 등의 소설을 읽어 주면서 동시에 fMRI로 참가자들의 뇌 활성을 촬영하였습니다. 특정 단어를 들을 때 어떤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는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제시될 때 특정 영역이 일정한 패턴으로 활성화된다면 그 영역에 해당 단어가 저장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이 연구를 통해 100여 개 부위에 단어들의 의미 체계가 넓게 분포되어 있음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종류에 속하는 단어들의 경우 인접한 뇌 영역에서 처리되는 경향도 보였다고 하네요(https://www.youtube.com/watch?v=k61nJkx5aDQ&feature=youtu.be). 조만간 촉각이나 후각 자극의 뇌 지도 연구가 완성되는 날도 기대해 봅니다!
  • 뇌 표면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단어들.

 한편에서는 이러한 최첨단의 기술들을 인용하며 마음을 읽는 기술이 가능해졌다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결과들은 제한된 참가자들의 뇌 활성만을 촬영한 것으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별로 차이도 크기 때문에 보편화된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아직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술의 속도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꽤나 정교하게 뇌의 활성을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뇌의 프라이버시라는 사회적 이슈들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비 환자의 뇌 활성을 측정하여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도에 적용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한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 패러다임의 전환

 기능에 따라 뇌의 영역들을 나누고 각각을 정의하는 방식으로 뇌를 연구하는 현재의 방식들은 이미 50년에서 100년 전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며 오늘날의 연구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을 향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커버를 장식한 Science 특별호는 지금까지 뇌를 연구하던 접근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하는 논문들을 소개했습니다.

 그 동안 뇌를 연구하기 위해 신경과학자들은 접근이 쉬운 하등생물들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복잡한 생물들로 연구를 확장해 왔는데요. 이제는 유전학 등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특정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가장 적절한 동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에 특정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모델 시스템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뇌의 자극이 생성되는 과정을 보고 싶을 때는 오징어, 시냅스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현상을 보고 싶을 때는 개구리, 학습과 기억에 대해서는 군소를 연구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이 논문의 제목이 'The emperor's new wardrobe' 인데요, 저자는 "황제가 일정에 맞는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듯, 신경과학 분야도 그에 맞는 옷장부터 마련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논문에서는 빅데이터 기반의 프로젝트들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들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세계 주요국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뇌 연구에 앞다투어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들여다 보면 뇌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 추진력에 새삼 놀라게 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큰 규모의 연구들에 펀딩이 몰리고(이른바 Mega-science dominance)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축적되고 있는 현상 속에서 정작 연구의 본질이나 개념이 흐트러질 수 있음을 저자는 경계합니다. 규모는 작더라도 보다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가설을 검증하려는 시도들이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우리 뇌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뇌과학 '빅데이터' 프로젝트 리스트

호주 : The Brain Dialogue : www.cibf.edu.au/Australian-brain-alliance

유럽 : The "Blue Brain" Project : https://bluebrain.epfl.ch/
The "BrainScales" Project : https://brainscales.kip.uni-heidelberg.de/public/
The Human Brain Project : www.humanbrainproject.eu/
INCF(International Neuroinformatics Coordinating Facility) : www.incf.org/

미국 : The Human Connectome Project : www.humanconnectomeproject.org/
www.neuroscienceblueprint.nih.gov/connectome/
BRAIN Initiative Alliance : www.braininitiative.org/
The Allen Institute : http://observatory.brain-map.org/visualcoding/overview
www.brain-map.org/

이스라엘 : Brain Technologies : http://israelbrain.org/

일본 : Brain Mapping by Integrated Neurotechnologies for Disease Studies (Brain/MINDS) :
(Riken BSI) : www.bminds.brain.riken.jp/

중국 : Brain Project: Basic neuroscience, brain diseases and brain-inspired computing in progress
https://academic.oup.com/nsr/article/4/2/258/3052681

(출처 : "Big data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neuroscience: A safe roadmap for understanding the brain?." Science 358.6362 (2017): 470-477.)

# 마치며

 지난 한 해 칼럼을 통해 소개해 드렸던 뉴로마케팅이라는 분야는 뇌과학이 학문의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의 일상생활로 진입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과학을 학문적인 관점에서도 공부해보고, 산업적인 관점에서 응용도 해보면서 제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 바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인데요. 뇌과학처럼 생소하고 화려해 보이는 분야일수록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뷰티 업계에 뇌과학 기법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한 해 동안 제 칼럼에 관심을 가져 주신 사우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2018년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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