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 (해외 편) - AMORE STORIES
#백수빈 님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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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 (해외 편)

  •  출처 : 직접 촬영


 이번 화에서는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가장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주제라 매우 설레네요. 지속가능한 삶을 제안하는 가게들은 어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어떤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다 보니 해외와 국내 두 편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럼 먼저 해외 가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죠.


1. NYC Package free shop

  • 출처 : 직접 촬영

 벌써 꽤 예전 일이 되어 버렸지만, 대학생 시절 초대를 받아 시카고 현지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던 일화가 있습니다. 매일 직접 만든 샐러드를 도시락통에 싸 오는 등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함께 요리할 때 사용했던 식기는 모두 일회용품이었습니다. 설거지통은 텅 비어있고, 쓰레기통은 가득 차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재활용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허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죠.

 그랬던 미국에 대한 제 인식을 달리하게 만들어준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뉴욕에 위치한 패키지 프리 샵(Package Free Shop) 입니다. 이름 그대로 패키지를 무용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편집숍입니다.

 ‘쓰레기가 없는 생활 방식, Zero Waste Life Style’을 추구하는 그 매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건을 구매할 때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을 제거하길 원하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샀던 제품은 일회용 비닐봉지나 지퍼백을 대체할 실리콘 백이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제거한 포장재는 새 제품을 포장하는 데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자원의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포장재를 제거했습니다. 어차피 여행객이었기에 짐의 부피를 줄이는 것도 필요했지만, 그보다 의미 있는 재활용을 실천하는 서비스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종이 포장재는 간단히 또 흠짐없이 제거 되었고, 다시 새로운 실리콘 백을 포장하기 위해 수거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바로 재활용이 이뤄지는 것을 보니 평소 종이류를 모아 버릴 때보다 더 큰 희열을 느끼게 한 이 서비스는 제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더불어 이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양한 제품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것이 많지만, 이곳에서 처음 그 제품들을 접했을 때는 신선함이 꽤 컸습니다.
  • 왼쪽 상단부터 자체 상품, 실리콘 빨대, 화장 솜, 라이프타임 개런티 면도기, 생분해되는 반창고, 심으면 꽃이 피는 카드, 시판 콘돔 가운데 가장 생분해성이 뛰어난 콘돔, 병에 담긴 생분해성 바디 글리터 (직접 촬영)

 화장 솜이나 재활용이 어려운 반창고와 같은 물품이 지속가능한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이 가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웹사이트에서 제품마다 ‘생애 마감(End of Life)’이 어떻게 되는지를 소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해당 편집숍이 얼마나 주의 깊게 제품을 선택해 판매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온 ·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운영하는 패키지 프리 샵은 미국 전역으로 제품을 배송할 때, 자체 박스를 새로 제작하지 않고, 이미 사용됐던 택배 박스 가운데 상태가 좋은 것을 선별해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물건을 판매하는 전체 프로세스에 걸쳐서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진 매장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편집숍이다 보니 제품 간 디자인의 통일성은 없지만,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제품에 활용하는 폰트나 천의 질감, 위트 있는 문구는 지속가능한 삶이 ‘힙’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드러냅니다.


2. Berlin Original Unverpackt

  • 출처 : 직접 촬영

 두 번째는 베를린의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입니다. 이곳은 베를린 최초로 포장재 없이 식료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사실 식재료를 포장재 없이 담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어릴 적 시장에 가면, 무게를 달아 원하는 만큼의 식자재를 사서 장바구니 담아 집에 돌아오던 기억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말이지요. 지금처럼 규격화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수요 예측에 아주 편리합니다. 하지만 가구당 인구수가 줄어들고 고객 니즈가 세분된 요즘 시장에서, 만약 재고 보관상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필요한 것을 필요한 양만큼만 구매할 수 있는 식료품점이 고객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올해 기준 매달 5,000여 명의 손님이 이 작은 가게를 꾸준히 찾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 출처 : 직접 촬영

 이 가게에서는 과일이나, 야채류의 신선식품도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방문했을 때는 견과류나 곡물, 차, 향신료, 파스타 면, 발사믹 오일 등 일정 기간 적재가 가능해 동네 인근 주민들이 필요한 양만큼만 팔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만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크림이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다회용 용기, 과일을 담을 수 있는 천 가방 등도 구매할 수 있었지요.

 창업자인 밀레나 글린보프스키와 리나 슐츠는 2012년부터 ‘플라스틱 없는 매장’을 만들기 위한 오랜 연구 끝에 2014년 오리기날 운페어팍트를 오픈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포장재 없는 가게’라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1,522명으로부터 10만8,915유로라는 거액의 지지를 받아 창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독일 전역에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100여 곳의 포장재 없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점은 꽤나 고무적입니다. 매장 운영 목적이 이윤 창출보다는 ‘문화의 정착’을 위하다 보니, 매장 직원들은 물건을 구매하려는 손님들에게 이곳에서 판매하는 포장 용기를 권하기보다는 집에서 직접 가져온 용기에 물건을 담아가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매장 내 포장 용기가 반, 식료품이 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게에서 이런 소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제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젤리 가게에서 원하는 양만큼의 사탕을 담아서 무게를 재고 가격을 지불하는 것처럼 곡물을 구매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봤습니다. 후두두 떨어지는 해바라기 씨의 소리가 경쾌하더군요.

직접 촬영



3. Berlin Naked Lush

  • 출처 : 직접 촬영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곳은 네이키드 러쉬 매장입니다. 2018년 베를린과 밀라노를 시작으로 영국에서는 맨체스터에서 처음 오픈한 러쉬의 네이키드 매장은 앞으로 점포를 늘리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이키드 매장은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만으로 재고를 운영하는 목표를 가진 곳입니다. 기존 일반 러쉬 매장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고체 샴푸 바와 샤워용 비누는 물론, 러쉬에서 개발하는 다양한 패키지 프리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러쉬의 지속가능한 실험을 매장 내 제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러쉬의 샴푸 바를 이용해 머리를 감은 횟수를 합하면 약 616,880번에 달한다고 합니다(2019년 초 기준 누적 집계). 플라스틱병에 든 액체 샴푸에 익숙한 고객들의 사용 행태가 러쉬가 유도한 대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지표이지요. 또한 러쉬에서 제공하는 네이키드 제품을 보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네이키드 매장에서는 정기적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워크숍에서는 액체류로 된 목욕용품, 화장실에서 습기에 닿아 녹을 수 있는 고체형 비누를 포장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객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몇 가지 더 소개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보통 화장품의 포장재에는 제품명, 브랜드명, 기능, 사용법, 유의사항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요. 포장재가 없는 제품은 사용이나 보관 방식뿐만 아니라 제품 정보를 어떻게 노출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감성 피부 고객 등 제품에 대한 상세 설명이 필요한 사람은 ‘러쉬 랩(Lush Labs)’이라는 앱의 스마트 렌즈 기반 서비스를 이용해서 제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해당 제품을 렌즈로 인식시키면 제품 정보 페이지로 연동되는 방식이지요. 그 외에도 바코드와 제품 정보를 담은 스티커를 제작해, 고객이 원할 시 가져온 용기에 붙여줍니다. 고객들이 용기를 가져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러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지류 포장재에 스티커를 부착하기도 합니다.
  • 출처 : 좌) Forbes / 우) apkpure
    하단 : 직접 촬영

 유사한 방식으로 QR이나 바코드를 이용해 제품 정보를 노출하는 방식은 올리브영이나 백화점 등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판매하는 곳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품 정보를 충실하게 보여주기보다는, 고객 스스로 제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공간에서는 스마트 가격표 등에 QR 코드를 삽입해서 제품 정보를 노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포장재를 대체한 것은 화장품 분야에선 러쉬가 처음이죠.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자연을 최소한으로 가공했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렇듯이 적절한 기술력을 활용해서 서비스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올해 열심히 발품 팔아 실제로 둘러보았던 ‘알맹이만 파는 해외 매장’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와 유사한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장들이 국내에서도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매장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가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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