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물보다 기름이 싸다는 속설의 팩트 체크 - AMORE STORIES
#김무현 님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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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물보다 기름이 싸다는 속설의 팩트 체크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우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칼럼니스트아모레퍼시픽그룹 중동법인 김무현 님

 살람 알레이쿰.('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이라는 뜻의 아랍어 인사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 구단을 인수하면서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공언하며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던 만수르의 나라 UAE에서, 그를 이렇게 부유하게 만들어 준 원천인 오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중동이 곧 오일이라는 흔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저유가 시대 중동의 미래까지 살짝 짚어봅니다.

산유국의 위엄 - 휘발유 리터당 300원

 최근 포털 검색을 해보니 증권시장 기준 한국의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490원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UAE는 현재 휘발유가 리터당 약 600원입니다. 한국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지요. 그런데 이마저도 싸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제가 사우디에서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리터당 휘발유 가격을 조사해보면, 가장 저렴한 국가는 1위가 베네수엘라, 2위가 사우디입니다.
[가솔린 리터당 US 달러 가격]
베네수엘라 사우디 알제리 쿠웨이트 이집트 바레인 카타르 미국 일본 한국
0.01 0.24 0.32 0.35 0.37 0.42 0.43 0.75 1.18 1.29
 베네수엘라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수준'에서는 사실상 사우디가 가장 저렴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는 현재 리터당 300원 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2014년부터 시작된 저유가로 국가 사정이 어렵게 되자 엄청나게 인상된 가격으로, 인상 전에는 리터당 130원이었습니다. 당시 마트에서 1.5리터 생수 한 병이 432원이었으니, 말 그대로 기름이 물보다 싼 국가였지요. 그때는 중형 승용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워도 만원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득 주유를 하면 주유소에서 물이나 휴지를 주는 곳도 있었으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살던 한국인으로서는 이렇게 싸게 주유하며 사은품까지 받기가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중동 국가들은 모두 오일 덕에 떵떵거리고 잘 산다?

 사우디, UAE, 쿠웨이트와 같은 국가들의 GDP가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오일 수입 덕분에 국민들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카타르는 인구 2백만의 작은 국가임에도 자기 영토에서 생산되는 기름 수입으로 경기장을 짓겠다는 계획으로 월드컵까지 유치했으니 오일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위 지도는 중동에서 오일을 생산하는 국가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 이란, UAE, 이라크 같은 국가들이 보이고 노란색 퍼센트로 되어 있는 숫자가 전세계 생산량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인데, 사우디와 이란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에서 언급되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는 국가들은 경제 수준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전이 없거나 적은 매장량에 불과한 국가들인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와 같은 중동 국가들은 상당히 불리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한여름 40도를 넘나드는 더운 기후에서 살고 같이 아랍어를 구사하고 동일한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유전을 보유하고 있느냐 않느냐에 따라서 국민들의 삶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일이 제일 많이 나는 국가는?

 중동에서도 오일이 나는 국가가 있고 찔끔 나오기도 하는 등의 차이가 크다고 했는데, 그럼 세계에서 오일 생산이 가장 많은 국가는 어디일까요? 자연스럽게 사우디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놀랍게도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오일 생산 국가는 바로 미국입니다.
 2013년까지는 사우디>러시아>미국 순이었지만, 2014년부터 미국이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이 순위는 2016년까지도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일 생산량하면 탑 랭킹을 중동 국가들이 싹쓸이할 것 같지만, 미국을 비롯한 비중동 국가들의 저력은 우리의 편견을 보기 좋게 뒤집어 주고 있습니다. 오일 생산량 상위 10개 국가 중에서 중동 국가들은 사우디, UAE, 이란, 이라크 4곳 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엄청난 양의 오일이 난다고 하면 유전이 있는 알래스카에서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셰일 오일(shale oil)을 추출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미국의 오일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한때 미국은 리만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로 급격한 경제 침체를 겪었는데요. 셰일 오일 기술의 발달은 자국 내에서 오일 생산량을 증가시켰고 원유 수입의 재정 적자를 개선하면서 경제 반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국 내 오일 생산량 증가로 오일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해외로 나가있던 제조업 생산 기지가 미국 내로 돌아오는 동기가 되었고, 결국 제조업이 부활하며 미국 경제의 화려한 부활도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에 기름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는 데서 오일의 힘을 가늠해볼 수 있기 보다는, '미국의 오일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공룡과 같이 거대한 경제가 되살아 났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여전한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오일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선두에 셰일 오일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유가의 기조에서 중동은 어디로 갈 것인가

 현재 중동은 저유가로 인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유전 꼭지를 열어서 콸콸 쏟아지는 오일을 그대로 내다 팔기만 하면 엄청난 현금이 돌아왔었지만, 저유가로 인해 같은 양을 내다 팔아도 돌아오는 현금은 절반으로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고유가 시절의 수입 기준으로 지출이 맞춰져 있던 경제가 순식간에 마이너스 적자로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유가 하락의 배경은 미국이 수출하는 셰일 오일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 원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유탄을 맞고 생산 활동이 위축되면서 원유 수입을 줄였습니다. 이는 다시 원유 수출 국가에 타격을 주었고, 산유국발 경기 위축이 또다시 글로벌 경기 침체를 불러오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동이라는 권역에서 산유국들의 오일 산업이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에, 저유가로 인한 중동 전체의 경제 위기가 잘 극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기름 없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막의 나라라는 우려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중동은 여전히 그간의 저력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이슬람 자본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고유가 시절의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그들은 버는 족족 써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는 이슬람 자본(capital fund)이라는 이름으로 실체화되어 세계 곳곳에 투자되었습니다. 채권이나 부동산 구매 등이 대표적인 이슬람 자본의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저유가로 인해 새로 들어오는 돈은 적을지언정, 그 동안 쌓아둔 돈은 향후에도 강력한 글로벌 경제의 캐스팅 보드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이슬람 자본이 대량으로 자산을 팔아 치울 경우, 자산 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수도 있습니다.

 둘째, 에너지 고갈을 대비해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입니다. 지구에 매장된 화석 연료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다면, 그때는 일찌감치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투자한 유럽의 국가들이 헤게모니를 가져갈 것 같지만, 사우디나 UAE와 같은 국가들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 역시 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의 투자가 '오일을 사용하는 편이 더 저렴한' 단계에서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천연 자원에 의존한 경제가 막을 내리는 때가 오더라도 자멸하지 않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시장 자체가 구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슬림 인구와 중동∙아프리카 인구는 세계 어느 종교∙지역 인구보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저출산 트렌드에 역행하면서 여전히 다산의 축복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구 증가가 가져올 구매력의 증가는 성장 잠재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전히 공공, 리테일 분야에서 개발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저유가의 흐름에 적응하면서 경제의 체질 변신에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미개척의 분야가 개간되면서 끊임없는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는 여전히 오일의 힘으로 굴러간다.

 결국 언젠가는 지구의 화석 연료는 고갈되겠지만 그때까지 여전히 지구의 엔진은 오일로 달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오일을 가진 자는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요. 그렇다면 그 거대한 힘의 흐름을 잘 관찰하고 우리의 사업을 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난 칼럼이었지만 다음에는 발걸음도 가벼운 칼럼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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