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길 고양이와 똥, 그리고 하이테크놀로지 - AMORE STORIES
#이종욱 님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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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길 고양이와 똥, 그리고 하이테크놀로지

Columnist
4기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우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주택적 삶과 노동의 진화

제5화. 길 고양이와 똥, 그리고 하이테크놀로지

칼럼니스트
아모레퍼시픽 e커머스3팀 이종욱 님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좀 먼 삶이지만, 집밖에 있는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말끔히 정리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안정감에서 오는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것 일텐데요. 제법 고르게 잘 깎인 잔디, 잡초 하나 보이지 않는 말끔한 화단, 그리고 건강하게 정렬되어 있는 텃밭의 배추, 부추들을 보고 있으면, 더없이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가지런히 이발하거나, 손발톱을 예쁘게 정돈했을 때와도 유사한, 하지만 부피감은 좀더 큰 그런 감정이랄까.

# 대체 고양이들은…

그런데, 이런 질서 정연함 속에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길고양이입니다. 사람에게 엉겨 붙기 잘하는 강아지를 선호하는 개인적 취향을 떠나, 이 친구들은 참으로 저에게 어려운 존재입니다.

우선, 그 눈빛이... 뭐랄까, '왜 니가 여기 있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랄 지, 인간을 겁내지 않고 적당히 늘어져 있는 자세는 저를 그냥 덩치 큰 늙은 고양이로 만들어버리거든요.

사뿐한 걸음과 광속의 뜀박질 역시, 저에겐 적잖이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느닷없는 갑툭튀 등장은 안그래도 목청 좋은 둘째 딸의 고성을 유발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어둑한 밤에 집으로 들어갈 때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암시를 주문 하기도 합니다. "여기 이즈음에 걔들이 분명 있을 거야, 그럼 너무 놀라지 말고, 점잖게 한마디 해줘, '꺼져!!'"라고요.
  • 길 고양이와 그네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똥

그 중 최악인 것은, 숭고한 노동의 마침표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 녀석들의 신선한(?) 똥입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바빠서 잔디를 다듬어 놓지 않으면 얼씬도 않다가, 주말에 맘잡고 정성스레 잔디를 깎고 나면, 꼭 그 위에 배설을 한단 사실입니다. 생육이 왕성해지는 봄, 여름이 되면, 3-4일에 한번은 어김 없습니다.

그럼 저는 시큼한 녀석들의 그걸 걷어내기 위해 금쪽같은 잔디들의 밑을 짧게 잘라 버립니다. 머리로 치면 반삭 정도 되는 길이인데요. 극단의 슬픔과 분노가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팝니다. '어떻게 정리한 잔딘데..'

배설 후, 비가 좀 심하게 내리거나, 애초에 먹어선 안될 것들을 먹어서 나온 액상의 제형들이 잔디위로 인수분해 되어 버리는 날에는 아주 환장할 지경이죠.

그래서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누군가 식초냄새를 고양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 평소엔 쓰지도 않는 대용량 식초를 사다가 아침 저녁으로 정성 들여 잔디에 뿌려봤습니다. 시큰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게 뭐, 고양이 똥보다는 낫겠다 싶었죠. 잠잘 시간이 줄어드는 건 신경도 안 썼어요.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가 나프탈렌이며, 레몬이며, 그네들이 싫어한다는 건 인터넷을 다 뒤져서 검색되는 족족 사다가 뿌려보고 반응을 살폈습니다.

물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도 들었고요. 역시 노동은 기술의 혁신을 통해 진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 기술의 발견과 인간 해방

그러던 중 구글링을 통해 최적의 솔루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저보다 먼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서양사람들의 친절하고 상세한 컨텐츠 덕분이었는데요.

직접 뭔가를 만들기는 귀찮고 해서, 간단한 설치만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들짐승 퇴치기'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양한 상품평과 구체적인 상세 페이지를 학습한 뒤,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을 통해 24달러에 직구했습니다. 제가 속한 디지털 Div.에서 그토록 주창하던… e커머스 비즈니스의 콘텐츠를 통한 구매의 실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무려 디지털 콘텐츠와 커머스의 유기적 연계라는…)
  • 생태적으로 안전하게 고양이를 쫓을 수 있는 솔루션에 대한 컨텐츠와 상품

정확히 10일만에, 제품이 집으로 도착했습니다. 물건이 도착한 날 저녁, 저와 제 아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거면, 녀석들의 분뇨를 멈출 수 있겠다 생각했죠.

짐승을 쫓기 위한 주파수 음역은 총 다섯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엔 고양이만 쫓을 수 있는 주파수 3번을 택하려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재앙(?)을 막기 위해 모든 짐승용 5번으로 셋팅을 했습니다. 5번은 플래시가 터지는 기능까지 장착되어 있는데요. 프로모션으로 치자면, 블랙 프라이데이 혹은 클리어런스 수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파이널 테스트를 위해 간밤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였습니다. 키가 가장 작은 둘째를 마당에 투입시키곤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주문했죠.
영문도 모른 채 녀석은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 다녔고, 역시나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사정없이 터졌습니다. '이거다' 싶었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더 이상 아침 저녁으로 식초를 뿌리지 않아도 된 것이죠. 일하나 줄어든 셈인데,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 인간은 과연 자연을 넘을 수 있을까.

며칠간은 잔디가 멀쩡했습니다. 과거엔 출근할 때마다 잔디위로 거뭇거뭇한 것이 보이면 십중팔구는 녀석들의 똥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검게 변한 낙엽일 때가 더 많았고요. 출근하는 뒷통수를 향해 뿜어져 나오는 기기의 플래시와 초음파 소리가 이젠 아이들의 인사소리처럼 익숙해 져갔죠..
하지만 오래지 않아(물론 잔디는 생각보다는 오래도록 깔끔함을 유지했습니다만) 잔디 가장자리 부근에 수줍게 놓여있는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대체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낮 동안 사건을 목격한 아내의 증언을 참고로 결국, 최종 추론을 하게 되었는데요. 잔디 앞쪽으로 설치되어 있는 불편한 이 물건 때문에, 길 고양이들은 며칠간은 움찔거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무언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번쩍하는 불빛이 반가울 리 없었겠죠. 그리고는 동선을 약간 수정하기로 합니다. 늘 대문으로 넘나들던 녀석들이 집 뒤쪽 울타리를 통해 집으로 잠입을 한 것이죠. 평소 같으면, 대문과 가까운 잔디에서 볼일을 봤는데, 이젠 반대편으로 접근하여, 볼일을 본 것입니다. 영민한 놈들이, 일종의 사각지대를 찾아낸 것이죠. ㅜ
  • 들짐승 퇴치기 플래시 터지기 전/후

주택에서 살게 되면, 자연스레 주변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게 될 줄 알았습니다. 마치 어학연수를 가면 도착 다음날부터 영어가 술술 나올 줄 알았던 것과도 같은 착각이죠. :) 주택살이가 어느덧 3년차인데도, 길가다 이웃들과 마주치면 여전히 쭈뼛거리고 있는 저를 보면, 역시나 그런 건 누군가 심어놓은 막연한 환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기적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저희 집을 방문해주는 길고양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요즘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 발언이 주저되긴 하지만)

하지만 제 입장에서의 태도 변화는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길고양이가 집으로 놀러 오면 소리 질러 쫓기 보단, 이왕이면 다른 곳에서 볼일보라 잔소리는 할 수 있겠죠. 이웃들 역시 마주칠 때 인사는 못 해도, 그냥 웃어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날이 오거나, 이웃들이 먼저 한마디 말을 걸어올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막연하지만 극단적인 태도의 변화는 저의 무병장수에도 도움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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