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1960년대 초기 화장품 광고 속의 여성들은 정적이고 단아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광고 속의 여성들은 모두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등장하며, 카피는 '우아한 멋, 고상한 지성미' 등과 같은 표현으로 고상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포즈로 일관된 여성 모델들의 자세는 여성의 수동성과 의존성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수동적이고 얌전한 모습의 여성이 광고 속에 주로 표현되었지만, 1940년대에 들어서며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상이 강조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러스트 모델의 모습은 앞선 광고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카피는 여성성과 관련하여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게 일합시다"와 같은 카피를 사용하여 여성을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존재, 강인하고 씩씩한 존재로서 그려냈습니다. 수동성이나 의존성보다는 독립성, 적극성, 강인함 등이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후에도 미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여성, 수동적이고 단아한 여성의 모습은 광고에 지속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여성상의 구체적인 구현 방식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주로 서구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통해 여성스러움을 나타내고 고급스러운 의상, 장신구, 소품, 배경 등을 통해 상류계층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서구적'인 것은 그 당시 새로움, 세련됨을 의미하였고 특히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고 확인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광고에는 서구적인 모습을 한 수동적이면서도 단아한 여성 모델들이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짧은 머리를 하거나 바지를 입는 등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여성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합니다.
젊은 세대를 주요 소비자층으로 겨냥하여 짧은 머리와 바지 차림의 여성 모델들의 모습은 이전 모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다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이 표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1990년대에 보다 뚜렷하게 광고 속의 여성들은 활동적인 모습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합니다. 야구모자, 헐렁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모델, 숏커트와 바지 차림으로 당구대 위에 올라간 모델 등을 통해 '보이시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화장품 광고의 전형적인 온화한 미소 대신 얼굴 한쪽을 찡그리거나 놀란 표정을 짓는 등 발랄하면서도 도전적인 모습의 여성이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세대의 새로운 표상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94년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레쎄의 지면 광고 속 카피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여성 운동, 여성 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으며, 여권운동가와 같은 단어를 카피에서 무겁지 않게 녹여내면서 전통적인 여성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냈습니다.
2000년대 이후 광고에서 '커리어 우먼'과 '남성적' 여성에 대한 강조는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더 이상 선택 또는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닌 생계 활동이 된 것과 관련성이 깊습니다.
이후 광고들은 여성의 직업 대신 섹슈얼한 여성, 자연스럽고 순수한 여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여성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담아냅니다. 광고에 섹시함과 순수함이라는 모습이 구현되는데, '베이비 페이스(baby face)'에 몸매는 글래머라는 뜻의 '베이글녀'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1970년대 후반, 여성들의 구체적인 직업이 화장품 광고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전까지는 여성들이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하는 존재,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주부로 묘사되는데요.
생계 부양자 남성들에게는 강하고 경쟁적일 것, 핵가족의 주인인 여성들에게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성들에게 휴식과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사랑스러움, 모성, 배려가 요구되었습니다.광고에서 여성들은 주로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연계되어 표현됩니다.
홈드레스를 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모델, 핑크색드레스를 입고 모델 뒷배경에는 핑크색 커튼과 창문이 보입니다.핑크색을 사용하여 근대적 가정의 안주인의 역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광고 속에 기용하여 사랑을 추구하는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이 시기의 광고는 여성을 가정주부로 전제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정적이고 의존적이며 보조적 존재로서 표현됩니다.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로 여성들은 확대된 공적 영역으로 꾸준히 진출하게 됩니다. 1980년 화장품 브랜드 부로아의 광고를 보면, 여성 모델이 촬영용 카메라 옆에서 OK사인을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광고는 남성의 직업이었던 감독이라는 영역에 진출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전의 여성상과는 확연하게 일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며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여성인 것에서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이후에 그려지는 여성의 직업은 더욱 일관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광고 속의 여성들의 직업은 전문직이나 주로 금녀의 영역으로 간주하였던 직종이 대다수를 이루었습니다.
1988년 지지 레이디의 "앞서가는 여자, 앞서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광고 시리즈는 사무실에서 남성들과 회의하는 전문직 여성의 모습을 그리는데요. 사무실을 배경으로 더욱 현실적인 여성들의 일 공간과 그 속에서의 상호작용을 그려내고, 여성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담아 주인공 모델이 단순 사무직이 아닌 유능하고 전문적인 관리자임을 암시합니다.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의 모습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은 맞으나, 그 당시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화장품 광고가 당시 여성들의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투영하기보다는 여성들이 욕망하는 이상화된 삶을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90년대 초반에 출시된 마몽드의 광고 시리즈는 강인하고 활동적인 모습의 여성을 집중적으로 표현합니다. 형사, 경호원, 스파이, 응급구조사 등 비전형적인 여성의 직업을 소재로 광고를 제작하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여성 모델이 "세상은 지금 나를 필요로 한다"라는 카피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후 나오는 체력 단련 등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부드러움, 연약함, 의존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존의 여성성을 거부하고 남성적인 모습을 지닌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을 통한 자기 성취가 중요한 가치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이 당시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부여 받았던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과 여성성에 비판적 시선을 갖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 광고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인하고 활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이중적인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은 일터에서는 여성적이기보다는 중성적이거나 남성적일 것을 요구 받았고, 가정에 들어가면 아이를 보살피고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통적인 여성성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가 되며 공적 영역에서 자아실현을 적극적으로 그려냈던 경향성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여성의 일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현실이 되면서 화장품 광고에서 드러나듯 일하는 여성 대신 파티를 즐기는 여성이나 카페나 자연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성의 모습이 빈번히 등장하게 됩니다.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광고에서 여성의 신체가 여성성을 구성하는 중심으로 등장합니다. 여성의 몸이 여성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자 여성 파워의 근원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 여성의 노출 수위는 더 과감해지는데, 근본적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집착을 여성 내부의 욕망으로 규정하는 데에 특징이 있습니다. 완벽한 몸은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아닌 여성 스스로 '꿈꾸는 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