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틀을 깨는 동화적 상상력,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 AMORE STORIES
#박샛별 님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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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틀을 깨는 동화적 상상력,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칼럼니스트박샛별 님
아모레퍼시픽 뷰티플랫폼팀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분들이라면 안토니 가우디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르셀로나 도시를 가우디와 FC바르셀로나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관광산업의 대부분은 가우디가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성가족 성당은 여전히 건축중입니다.

  • 성가족 성당 내부도 가우디답게 독특합니다.

  가우디는 1852년 태어난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자연의 곡선과 빛을 최대한 활용하며 독특한 건축 양식을 선보였던 예술가입니다. 주요 활동 무대가 바르셀로나 근교였던 덕에 바르셀로나 시내를 거닐면 구엘 공원, 카사 비센스, 카사 밀라(라 페드레라),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그가 남긴 유명한 건축 유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인 가우디의 작품 중 동화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o)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그라시아 거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이 건물이 바로 카사 바트요입니다.


용을 물리친 산 조르디 전설에서 착안한 외관

 카사 바트요는 직물업을 했던 부유한 사업가 조셉 바트요의 의뢰로 1904년부터 2년에 걸쳐 지어진 곳입니다. 스페인어로 '카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바트요의 집'이 되지요.

 가우디는 카사 바트요 외관을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산 조르디의 전설에서 착안해 구성했다고 합니다. 산 조르디의 전설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을 잡아먹고 전염병을 퍼뜨리는 용이 있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용의 분노가 멈춘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을 제물로 뽑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공주였습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공주를 제물로 보내면서 공주를 구해오는 사람에게 그녀와 결혼시켜주겠다고 선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하려고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산 조르디는 용을 긴 칼로 찔러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왔습니다.
  • 불을 뿜는 전설 속 용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등에 칼을 찔린 용이 흘린 피에서는 붉은 장미가 피어났다고 합니다. 전설인 만큼 사람들에게 디테일은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구전될 수 있겠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4월 23일을 산 조르디의 날로 기념하고 용의 피에서 피어난 붉은 장미에서 착안해 남자가 여자에게 붉은 장미를 선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은 남자가 꽃을 주면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바르셀로나식 밸런타인데이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책을 주는 이유는 이날이 원래 스페인에서 책의 날이었고, 1995년부터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 된 데다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운명한 날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 산 조르디의 날이 되면 카사 바트요는 이렇게 붉은 장미로 뒤덮입니다.

 이런 전설을 대체 어떻게 건축에 반영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가우디는 건물 외관에 전설 속 요소들을 섬세하게 배치했습니다. 카사 바트요 건물 꼭대기는 용의 몸을 형상화한 듯한 곡선으로 되어 있고, 용의 비늘처럼 색색의 타일이 반짝이며 박혀 있습니다. 마치 건물 위에서 무지갯빛 비늘을 가진 용이 포효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용의 등허리를 찌른 긴 검도 옥상 위에 기둥으로 만들어 세워놓았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가우디답게 검에는 십자가 형태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조각해 놓았습니다.
  • 용의 척추와 비늘, 기사의 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카사 바트요 옥상에서부터 아래로 서서히 시선을 내려보면 건물 층 사이를 세로로 이어주는 가느다란 기둥들이 눈에 띕니다. 일반적인 기둥이라기엔 너무 정교하고 사람의 팔다리 뼈 같기도 한 이 기둥은, 용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멀리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카사 바트요 안에 들어서서 자세히 보니 진짜 사람 뼈 관절 같아 보여서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 저 건물 바깥에 보이는 기둥은 용에 희생된 사람들의 뼈를 상징합니다.

 카사 바트요는 그라시아 거리를 지나치다 보면 저절로 시선이 갈 정도로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겉모습이 이렇게나 멋지지만 사실 그 화려한 외관도 카사 바트요의 매력을 절반밖에 보여주지 못합니다. 나머지 절반의 매력은 바로 집 내부에 있습니다.

바닷속에 있는 듯 환상적인 내부

 바트요는 가우디에게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은 집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가우디가 선택한 카사 바트요의 인테리어 테마는 '바다'였습니다. 카사 바트요를 찾는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한국어가 지원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고, 덕분에 더 쉽게 그의 의도를 이해하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입구에 들어서면 나오는 계단 손잡이도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휘어 있는데 용의 꼬리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 버섯 모양 난로도 정말 귀엽습니다.

  • 큰 창과 문, 천장, 기둥 모두 곡선미가 돋보입니다.

 카사 바트요 안에 발을 들이면 직선과 어둠이 없는 세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곡선과 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채광을 최대한 활용한 건축을 선호했던 가우디였기에, 카사 바트요의 창은 그라시아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큼지막하게 설계되었습니다.
  • 가우디는 이런 섬세한 디테일을 곳곳에 숨겨놓았습니다.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건물 안이 'ㅁ' 자 모양으로 뻥 뚫린 듯한 파티오가 있습니다. 카사 바트요는 빌라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건물로 지어졌기에, 파티오 양식을 활용해 효율적인 채광과 환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파티오 가운데 빈 공간으로 자연광이 비치는데, 바다를 테마로 한 만큼 파티오 벽의 타일들은 모두 푸른색으로 구성되어있고, 채도와 명도에 따라 그러데이션된 모든 종류의 푸른빛을 나열해놓은 것 같습니다. 빛이 가장 강하게 닿는 고층부는 진한 푸른빛으로, 빛이 가장 약하게 미치는 저층부는 연한 하늘빛으로 칠해서 어느 층도 더 어둡거나 지나치게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 아래로 갈수록 연해지는 파티오의 푸른빛 벽이 보이시나요?

  • 문의 형태나 손잡이 표식 모두 동화 속 마법의 집 같습니다.

  • 유리 난간 높이로 시선을 낮춰 바라보면 정말 바닷속에 있는 듯합니다.

 또한 계단의 난간도 불투명한 유리 재질로 만들어 어른보다 키가 작은 어린이가 서서 보면 눈앞에 일렁이는 푸른 물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난간을 만나면 쭈그리고 앉아 가우디가 만든 건물 속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 관광객들이 다 그렇게 앉아서 난간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직원들이 보기엔 조금 웃길 수 있겠지만,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 보였습니다.
  • 천장에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듯합니다.

 천장도 편평하지 않고 마치 나뭇잎에 동그란 물방울들이 맺혀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동굴처럼 아치형으로 만들어놓는 곳도 있습니다. 공장에서 규격에 맞게 정확하게 찍어냈다기보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서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입니다. 용과 기사의 전설을 딴 외부를 보면 내부도 웅장하고 엄숙할 것 같았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보니 따뜻하고 아기자기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우디 건축은 이처럼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무게를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한 설계나 거주자들을 위한 채광, 환기, 배수 시스템까지 따져보면 예술과 건축 공학이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 이 복도는 용의 흉곽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카사 바트요 탐험 후반부에는 발코니에서 한 팀씩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직원이 "Photo?" 하기에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따라가니 문을 열어주면서 조그만 발코니로 들어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사진을 찍는다기에 저도 최대한 예쁜 척해봤습니다. 잠시나마 아름다운 그라시아 거리를 가장 좋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며 느낀 기쁨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 이런 식으로 발코니에서 단독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카사 바트요에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 찍어도 사진에 다른 사람들이 같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유료이기는 하지만 내 일행의 모습만 아름다운 발코니를 배경으로 찍을 수 있는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발코니는 '공주의 발코니'로 불리는 로맨틱한 곳으로, 이곳 젊은이들의 프러포즈 인기 장소로도 꼽히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카사 바트요가 잘 나와서 바르셀로나를 기념할 만한 기념품들 중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 오디오 가이드로 실제로 이용되었을 모습을 증강현실로 볼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옥상을 향하면 비로소 전설 속 용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옥상에서 보면 용의 전체 모습보다는 비늘이 더욱 눈에 띕니다. 알록달록한 타일을 잘게 쪼개어 붙인 모습이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우디는 모자이크처럼 여러 색의 타일을 잘게 쪼개 붙이는 트렌카디스 공법을 애용했는데, 그가 만든 또 다른 걸작인 구엘 공원에 있는 슈퍼스타 도마뱀도 같은 공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나운 용이라면 새카맣거나 무섭게 만들 법도 한데, 가우디는 건물 내부를 돌아보며 동화 속에 빠진 사람들의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 같습니다.
  • 구엘 공원의 도마뱀입니다, 카사 바트요의 용과 표현이 비슷해 보입니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니 가우디의 생은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에우세비오 구엘 같은 후원자를 만나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냉혹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을 짓던 시기에 저녁 기도를 드리고 오던 중에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남루한 그의 옷차림을 보고 사람들이 그를 노숙자로 생각해 택시들도 승차를 거부하는 바람에 병원 이송이 늦어졌고, 가우디는 결국 그 사고로 74세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 성가족 성당 박물관에 있는 가우디 상.

 굴곡 있는 삶을 살았지만 항상 자연에 대한 동경과 찬사, 경직된 기존 건축 규범에 반기를 드는 배짱, 네 살짜리 아이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품고 있던 가우디는 건축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위대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동화적인 상상력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카사 바트요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이처럼 멋진 카사 바트요에서 가우디가 말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순수한 꼬마가 된 것처럼 모든 걸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럼 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칼럼에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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