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젠트리피케이션 - AMORE STORIES
#문성민 님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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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젠트리피케이션


 안녕하세요. 서울 도시의 삶 네 번째 이야기 시간입니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면서 낮맥, 루프톱, 테라스 카페 등을 찾아 나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화려한 몰(Mall)이나 백화점만 찾는 것이 아닌 구석지고 낙후된 골목으로의 회귀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최근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힙지로(을지로), 망리단길(망원동),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용리단길 등이 화두입니다. 세계본사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용산 시절과 달라진 점은 우리 사옥 외에도 주변 환경의 변화일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도시의 생장 관점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눈물의 세입자와 몰락한 상권 등이 이슈가 되기도 하며 부정적 어감이 담기긴 했지만 도시라는 생명체의 재생을 의미하는 관점에서 볼 때 젠트리피케이션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Gentry라는 어원 자체도 영국의 중소 지주 계급을 일컫는 단어이니 Gentry+Fication이라는 것은 도시가 고급화되었다는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 살아 있는 생물의 재생

 도시는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업무와 상업 지구가 형성되고, 이 업무∙상업 지구 가까운 곳으로 주거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도시계획이 이를 지원해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거나 혹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형태입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시 지역은 당시에는 쾌적하고 새로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낙후되고 쇠퇴하며 사람들이 새롭고 깨끗한 환경을 찾아 떠나면서 황폐화되어 버려지곤 합니다. 마치 추수가 끝난 후의 황량한 들판이나 유목민들이 떠난 초원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필연적으로 중심 지역이었던 이 장소는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주거든 상업 목적이든 상대적으로 기피 혹은 회피하는 지역이 됩니다. 이에 따라 임대료나 매입가액은 하락하게 되고 자연스레 낮은 임대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이 중에는 본인의 실력으로 낙후된 지역에서라도 고객을 유인할 자신감이 있는 자영업자들이 모여들어 그 지역의 감성에 맞으면서도 독특한 아이템이나 가성비가 뛰어난 재화를 제공하는 영업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재능 있는 자영업자들이 모여들면 자연스레 상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나게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도시가 재생되는 것이지요.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인위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당국은 도시 재생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 게 전 세계적인 도시계획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낙후된 도시는 다시 좋아지기 어렵고 그로 인해 신규로 필요한 인프라 시설들은 교외 지역으로 넓혀가는 스프롤링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도시의 '비가역성'이라고 부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 도시의 비가역성을 되짚어서 다시금 도시가 살아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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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성수동(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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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선동(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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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연남동(출처 : 주간동아)



2. 어디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가 : 익선동, 힙지로, 망리단길

 가로수길, 홍대, 이태원 경리단길, 해방촌, 연남동, 성수동, 망원동, 익선동, 을지로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지역들입니다. 그러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떤 지역에 주로 일어날까요? ①임대료가 싸고(젠트리피케이션 이전의 인근 상권과 비교 시) ②주변의 큰 배후 상권∙업무 지구와 붙어 있고 ③걷기 좋은 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촌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예술가들과 상인들이 몰려들며 운치 있는 거리가 된 것이 홍대입구였습니다. 신촌의 대학가와 합정∙홍대로 이어지는 업무 지구에서 나오는 소비력에 의해 끌어올려진 상권이었던 신촌∙이대 상권의 임대료 상승이 가속화되자 예술가와 상인들이 홍대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후에 홍대 근처의 임대료도 상승하자 연남동과 망원동 일대로 계속해서 비싼 임대료를 피해 도망가는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번져가는 것입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 일대의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인근 상권인 가로수길로의 이동도 그런 예일 것입니다. 종로 상권에서 익선동으로 옮겨가고 최근에는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맹위를 떨치는 을지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입니다. 기본적으로 임대료와 상권의 다양성은 반비례 관계라고 합니다.1) 낮은 임대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양하고 특색 있는 상권을 만들고, 이를 보고 단기 투자성 자금을 지닌 사람들이 권리금을 주고 프랜차이즈를 상권으로 유입시킵니다. 이 상권이 유명해질 즈음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나 상인들이 상권에 유입됩니다. 이후 높은 임대료에 저항이 큰 상인들이 그 상권을 떠나 옆으로 이동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어내, 결국 다양함과 특색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경리단길을 보면 그런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김영준, <골목의 전쟁>, 스마트북스(2017), p199~203
  • 텅빈 경리단길(출처 : 한국일보)

  • 을지로 맥주거리(출처 : 중앙일보)



3. 밀레니얼 세대와 젠트리피케이션

 최근 뉴트로(NEW+RETRO) 감성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익선동과 을지로가 돋보이는 상권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개발 시대에 만들어진 업무 지구의 빌딩들에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위치한 와인 바나 맥주집들이 그런 사례겠지요. 을지로의 대표적인 호프집이었던 만선호프는 밀레니얼들의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현상을 보면 밀레니얼을 전혀 다르게 생각했던 기존의 X세대나 그 이상의 세대들은 의아해합니다. 굳이 이러한 뉴트로 열풍의 이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는 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그저 어떤 이유를 찾아서 단정짓고 '이건 이렇다. 이 세대는 이러할 것이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본인들이 가보지 않았고 낙후된 지역임에도, 낮은 임대료를 기반으로 생겨난 특색 있는 가게들을 방문하는 밀레니얼들이 증가하는 지금의 현상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지역들이 주목받게 되고 그 지역들은 젠트리피케이션 열풍에 합류합니다. 자유자재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역을 홍보하고 이러한 특색 있는 지역들을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지역의 부동산 가치까지 견인하는 현상인 것입니다.


4. e커머스의 약진과 상권의 몰락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서 동네별로 좋아지는 것 같은데 결국 돌아보면 이전의 상권들은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인근 미군 부대의 미군과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상권으로 출발해 외국인들만 출입하는 동네였으나, 이색적인 모습의 독특한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이태원만의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올라가는 임대료를 피해 경리단이나 해방촌으로 이동했습니다. 최근의 이태원은 몰락했다는 평을 들을 만큼 시들어버렸고, 고급 상권들은 한강진이나 한남동으로 이전해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상권이 확장되어 가게들이 그 지역을 꽉 채운 이후 더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권을 채워줄 고객의 소비력이 상권 확대에 비례해 커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통계청의 지난 4월 '2019년 4월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4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총 10조 6,448억 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17.2% 수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온라인 쇼핑은 최근 의류, 가전 및 통신을 넘어 음식료업과 서비스업까지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여러분들이 퇴근하고 주문해서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치킨이나 중국요리를 넘어 다양화되고 급속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교통의 발달은 상권의 확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애플리케이션의 출현과 모바일 시대의 도래로 인해 유명 맛집이 배달 앱을 통해 전국구 맛집으로 도약하는 반면, 배달 앱의 손이 닿지 않는 식당들은 손님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해 11월 이미 음식료업의 온라인 매출은 소매품 판매액 비중의 20%를 넘어서며 폭발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오프라인 상권의 위축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지요.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도 지역 전체의 상권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 유목민들이 휩쓸고 간 초원처럼 되는 이유는 상권 전체를 채워줄 수 있는 소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젠트리피케이션 우리만의 문제일까? No.

 한 예능 방송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젠트리피케이션이 국내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가 있는 이슈입니다. 미국 비자면제가 약 10여 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2000년대 초반에 유럽으로 몰렸던 많은 한국의 배낭여행객들이 이제는 미국 서부를 방문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LA에 가면 Abbot Kinney Blvd라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커피계의 애플이며 얼마 전 한국에 상륙해서 큰 붐을 일으켰던 블루보틀커피, 커피 매니아들이 즐기는 인텔리젠시아,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집인 Salt&Straw까지 즐비한 이 거리는 LA의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입니다. 이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된 계기는 1980년대에 J.케빈 브런크라는 예술가가 이 거리에 야자나무를 심고 예술거리를 조성하며, 이를 기반으로 아름다운 태평양 해변에 서핑족과 예술가들을 불러모으며 거리가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013년 GQ에서는 "Coolest block in America"로 이 거리를 선정하기도 하였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지역 역시 매력도가 올라간만큼 임대료가 높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여기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점점 이탈해가고 있으며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유명 브랜드들이 즐비한 거리로 바뀌고 있습니다. 도시 재생 관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은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산업이 붕괴된 이후 가장 위험한 도시로 변해갔습니다. 이 곳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지역을 떠난 주민들이 다시 자리잡기 시작했죠. 디트로이트도 마찬가지로 또 변할지 모르지만, 폐허가 된 도시보다는 재생된 도시에 활력이 높을 것이며, 임대료가 상승하더라도 도시가 새로운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갖다주는 것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일 것입니다. 도시가 그저 회색 시멘트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성장통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LA Abbot Kinney의 블루보틀커피(출처: 직접촬영)

  • 도쿄 롯본기의 도시 재생 모습(출처: 직접촬영)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발생적입니다. 낙후된 지역에 낮은 임대료를 선호하는 상인들이 특색있는 상권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좋아진 상권의 임대료는 높은 수요로 인해 상승합니다. 이로 인해 높아진 임대료를 견딜 수 있는 상권으로 재편되며, 상권의 매력도가 저하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나면 또 다시 인근의 지역이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거래의 총량은 커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온라인 쇼핑의 확장과 사람들의 소비행태 변화라는 것이죠. 도시는 멈춰져있는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생활하고 돈을 벌고 삶을 일구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장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칼럼의 주제는 <서울의 아파트, 한국인의 아파트 사랑>입니다. 그럼 올여름에도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고 가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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