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빌딩숲에 둘러싸인 서울의 조선왕릉 - AMORE STORIES
#이진영 님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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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빌딩숲에 둘러싸인 서울의 조선왕릉

STAFF
COLUMN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우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꼭꼭 숨은 한국의 명소 찾기

제4화. 빌딩숲에 둘러싸인 서울의 조선왕릉

칼럼니스트
아모레퍼시픽 효능연구팀 이진영 님
더운 여름도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습니다. 9월이 지나가면 올해 하고자 했던 일을 마무리해야 해 조급함이 조금 밀려옵니다. 막연하게 나마 내년 계획도 슬슬 구상해야 하는 마음도 들고요. 날씨는 청량하지만 마음은 뭔가 복잡하고 정신 없을 때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곳, 서울의 조선왕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능과 원으로 구분되는 조선왕릉

조선시대 (1392-1910) 519년 동안 27대 왕과 왕비, 추존왕과 왕비가 있습니다. 이들 왕족의 무덤을 '조선 왕릉'이라고 합니다. 왕릉은 위계에 따라서 능(陵)과 원(園)으로 구분됩니다. 능은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종실)의 무덤을 말하고 나머지 묘(墓)는 나머지 왕족인 대군, 공주, 군과 옹주,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일컫습니다. 현재 온전하게 남아 있는 서울 근교의 왕릉은 능이 40기, 원이 13기 총 53기입니다.
  • 수도권 지역의 조선왕릉 분포도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은 강원도 영월의 장릉(단종), 경기도 여주의 영릉(세종, 효종)을 제외하고는 당시의 도읍지인 한양에서 하루면 다녀올 수 있을 만한 거리인 40km이내에 입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태조 왕비(신의 왕후)와 정종의 왕릉은 개성에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유산으로 조선왕조 특유의 철학을 담은 자연친화적인 독특한 장묘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00년 이상 지속된 당대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해 예술적 독창성이 뛰어나고 정기적인 국가 제례와 조상 숭배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왕릉으로는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문정왕후), 강릉(명종)과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경종), 성북구 정릉동의 정릉(신덕왕후), 서초구 내곡동의 헌릉(태조), 인릉(순조),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성종), 정릉(중종)이 있습니다.

# 선릉(宣陵)•정릉(靖陵)

선릉? 정릉? 그게 어디 있어?라고 갸웃거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선릉역(2호선,분당선), 선정릉역(분당선,9호선)은 들어보신 적 있을 텐데요. 지하철을 타고 땅속으로만 지나 다니셨다면, 강남 한복판 빌딩숲 사이 유일한 녹색 지대로 남아 허파 역할을 해주고 있는 이곳을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선릉역 8번 출구로 나와 그대로 직진하면 됩니다. 선정릉 입구까지 정확히 5분40초 걸립니다. 차를 가져가시더라도 강남에서 가장 요금이 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잡고 오붓이 걸으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주변에 맛집도 수두룩합니다.
  • 강남 도심 한복판 빌딩숲과 선정릉

세계 문화 유산이자 조선왕조의 철학이 담겨있고, 왕들이 영면한 곳인데 제가 너무 약장수같이 소개해드렸나요?^^ 저는 서울에 있는 조선왕릉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 되는 것이 현대에 맞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들려보실 분들을 위해서 조금 더 선릉과 정릉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 선정릉의 산책로

약 2시간 반 정도면 선릉과 정릉을 모두 둘러볼 수 있습니다. 약 3.5 km의 관람길을 따라 걸으면 되는데요. 정문 출입구에서 왼쪽 방향으로는 성종대왕릉과 정현왕후릉이 모셔진 선릉이, 오른쪽 방향으로는 중동대왕릉인 정릉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관람하더라도 상관없지만 오른쪽 방향으로 재실을 거쳐 정릉을 보고 산림쪽을 돌아 정현왕후릉을 거쳐 성종대왕릉으로 나오는 방향이 걷기에 지루하지 않고 좋은 것 같습니다.
  • 선정릉 안내도(문화재청 안내서)

매표소를 지나 산책로 초입에 재실이 위치해 있는데요, 산책하기 전에 재실 행랑채 마루에 앉아 잠시 쉬고 갈 수 있습니다. 재실 옆에는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도 있으니 한번 찾아보세요. 좀더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 내려오면 현재 하수공사중인 곳이 있는데요. 그곳을 지나면 정릉을 볼 수 있습니다.
  • 매표소 초입에 위치한 재실


☞ 외로운 왕릉, 정릉의 숨은 사연

선릉은 왕과 왕비가 함께 있는 반면 정릉은 혼자 있는 외로운 왕릉입니다. 이 딱한 사정은 태릉에 혼자 계신 문정왕후의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원래 중종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중 하나인 희릉(첫번째 계비인 장경 왕후) 옆에 계셨는데 죽어서 함께 묻히고 싶었던 두번째 계비인 문정왕후가 현재 강남구 삼성동(조선시대 광주)으로 굳이 이장을 합니다. 그런데 한강이 범람해서 정릉 홍살문까지 물이 들어오게 되면서 다시 이장을 해야 하지 않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정왕후가 돌아가신 후에는 본인도 따로 떨어져 태릉에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장경왕후, 중종, 문정왕후 모두 혼자 있게 됩니다.
  • 정릉의 홍살문

홍살문아래 길(참도, 參道)을 보면 뭔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은 신도(神道)라고 해서 죽은 왕의 혼들만 다니는 길이라 사람은 다닐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저길을 밟으면 곤장을 맞았다고 합니다. 오른쪽으로 한단 낮게 만들어진 길이 어도(御道)라고 해서 왕이 다닌 길이라고 하는데 관람객들도 어도로만 다녀야 합니다. 신도와 어도 끝에 보이는 집을 정자각이라고 하는데요. 하늘에서 보면 지붕이 丁(정)자 모양이라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에도 신도와 어도 구분이 있으니 신도로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정릉은 능침공간쪽에서 볼 수 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까치발 해서 올려다 보는 게 좋습니다.

문화재 관리가 소홀했던 어린 시절에 왕릉에 올라가서 석마(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에 오르고 혼유석(무덤 앞에 놓은 직사각형의 돌)에서 뛰놀았던 기억을 가진 분들도 있을 법 한데요. 지금은 절대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정릉을 보고 나면 산책로가 마치 둘레길 같은 분위기로 바뀝니다. 옛날부터 왕릉 주변 산림은 왕가에서 보호했기 때문에 바로 도심이란 것을 잊을 정도로 숲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산책로


☞ 선릉의 조형미

산책길을 따라서 이동하면 선릉의 정현왕후릉 뒤편 소나무 군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왕릉을 조성할 때 능침공간 뒤편은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정현왕후릉과 성종대왕릉은 같은 선릉이지만 무덤의 형태가 서로 상이합니다. 성종대왕릉은 병풍석을 두른 반면 정현왕후릉은 난간석만을 두른 소박한 형태입니다. 왕이라 병풍석을 두르고 왕비라 안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조성될 때 상주의 의견에 따라서 변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병풍석을 두르려면 백성들의 노고가 많이 필요하지만 봉분을 유지하기 좋기 때문에 선호되었다고 합니다.

정현왕후릉과 성종대왕릉의 능침 꾸밈 차이(병풍석 유무)

능침앞에 있는 큰 돌상은 흔히 일반 무덤의 상석과 같이 보이지만 제사음식을 차리는 곳이 아니라 혼이 나와서 노는 장소라고 여깁니다. 임금님들의 제사상은 정자각에 어마어마하게 차려집니다. 일반 무덤같이 상석에 놓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능침 주변에는 양과 호랑이 돌 조각을 세워서 잡것을 물리치고, 왕 앞에는 무인석(능묘 앞에 세우는 사람 형상의 석조물)을 두어 그 위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일반 양반들도 문인석(능 주위에 위치해 능을 지키는 수호물)을 두는 것은 가능했으나 무인석은 절대로 둘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무인석과 문인석 뒤엔 석마가 있는데 지난 세월에 시달려서 하마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현왕후릉과 성종대왕릉의 무인상과 석마


☞ 선릉과 정릉에 담긴 슬픈 역사

선릉과 정릉에 묻혀 있는 성종과 정현왕후, 중종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도굴을 당하여 훼손되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유교 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왕의 무덤이라고 하더라도 부장품이 별로 없거나 값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수중에 도성이 침탈당하면서 왕릉의 능침이 파헤쳐지고 관이 꺼내어진 뒤 관과 사체가 불에 탔습니다. 다시 도성을 되찾은 후에 관과 사체가 불탄 자리를 수습하여 모셨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도쿠가와 막부가 다시 수교를 청했을 때 조선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만행을 저지른 죄인을 잡아 올 것을 요구했고 진범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은 죄인들을 보내 죄값을 치르게 했다고 합니다.
  • 정릉과 도심빌딩


# 4화를 마치며…

맑은 하늘 아래 숲길을 따라 역사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다 보면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 옆에서 함께 하는 이는 누구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한번쯤 가까운 왕릉에 한번 가보세요. 한때 한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자들의 고단한 안식과 무분별한 개발에 살아 남은 자연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사의 복잡함 속에서 가을을 몸과 마음으로 만끽할 수도 있고요! 참고로 조선왕릉은 월요일에는 휴관하며,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니 유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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