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냉면의 시절 - AMORE STORIES
#서동현 님
201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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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냉면의 시절

칼럼니스트서동현 님
이니스프리 TM팀


Prologue

낡은 중절모 아래 은빛 귀밑머리가 붓처럼 휘었다. 쌓인 그리움들이 지은 타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미련처럼 올라앉은 고명을 스윽 밀어낸다. 짧은 한숨을 짓고, 차가운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맑게 들이켠다. 덩이 진 마음 녹이듯 국수를 훌훌 풀어낸다. 소주를 반쯤 털어 넣고, 허연 가락들을 주욱 당겨 붙인다. 쇠젓가락 끝이 오가는 사이, 그릇 안으로 작은 수묵화가 스쳐가는 듯했다.

 냉면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지난겨울이었습니다. 을지로를 떠나기 얼마 전, 어느 냉면집 구석에서 어르신의 젓가락 끝이 그리는 그림을 보고 문득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날 보았던, 수십 년 휘젓고 수백 번 들이켰을 그 몸짓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고향과 가족을 맛으로라도 그려보려는 손짓에 가슴이 묵직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냉면을 먹을 때마다 서늘한 육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벌써 두 번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펄펄 끓는 여름에 숨이 막힙니다. 사나운 햇살이 화살처럼 내리꽂힙니다. 불볕에 물린 목덜미가 화끈거립니다. 땀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이런 날이면, 냉면 생각이 정말 간절해집니다. 하지만 요즘엔 이래저래 냉면집 문턱이 닳아 없어질 판입니다. 그 기나긴 줄이 원망스러워 더운 한숨만 나옵니다. 벌써 입추(立秋)가 지나가지만, 이제라도 냉면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야 하나 싶어 고민이 많습니다.

1. 메밀과 빈대떡

 해가 좀 지고, 왁자했던 시장 골목이 검은 옷을 입을 무렵입니다. 발길 끊긴 어둑함을 디디고 좁다란 계단을 올라섰습니다. 가게 입구에서 돼지기름 냄새에 또 숨이 턱, 막혔습니다. 매번 오늘은 냉면만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노릇노릇한 소리만 듣고도 정신이 아득해져서 말이죠.
 이곳은 특이하게도 삶은 돼지고기와 절인 오이를 고명으로 씁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새벽 6시부터 끓이는 육수의 주재료는 소고기와 사골입니다. 거기에 양파를 껍질째 함께 끓여서 육수 끝에서 단맛이 살짝 돕니다. 그래서 냉면이 심심할 때는 오이를 씹고, 허전하면 돼지고기에 감아서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곳의 국수는 메밀 함량이 60%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냉면집들이 70% 이상인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밀 함량이 적으면 그 향이 덜하다고들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국수에서 메밀의 향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육수 속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국수에서 메밀 향을 맡을 수 있으려면, 통메밀 상태로 5℃에서 보관하다가 주문이 들어올 때 바로 가루로 빻아서 국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과열된 제분기를 사용하면 메밀 향이 더 옅어집니다. 40℃만 되어도 메밀의 전분이 변성하기 시작하는데, 바쁜 냉면집 제분기가 과열되면 그 온도가 70℃까지도 올라가기 때문이죠. 그나마 이렇게 하는 곳도 거의 없기는 합니다. 제분한 메밀 가루를 받아서 반죽만 그때그때 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사실 그동안 우리가 냉면에서 메밀 향처럼 느꼈던 것은 냉소다(NaHCO₃, 탄산수소나트륨 / 면 강화제) 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주변 대부분의 면 요리에 쓰이는 첨가제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냉면에서 메밀 향을 굳이 맡아야겠다면, 맷돌로 갈아서 바로 반죽해주는 곳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냉면집이 있다는 말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메밀이야 어찌되었건, 면수를 아껴 마시던 사이에 냉면이 나왔습니다. 다른 집보다 뽀얀 빛깔에, 여러 가지 맛이 풍성한 육수입니다. 돼지고기 고명은 여전히 탄탄합니다. 호락호락 부드럽지 않아서 씹는 맛이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빈대떡을 기름지게 한 입 먹고, 짭조름한 오이를 육수와 함께 마십니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들 닭무침에 자꾸 눈이 가는 걸 참느라 애먹었습니다. 나올 땐 돼지기름 냄새에 돌아설까봐 숨을 잠깐 참아야 했습니다.

2. 맛의 경계선

 토요일 늦은 오후.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입니다. 사진들이 그득한 좁고 어두운 복도는 늘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줍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마치 수십 년 전의 평양 뒷골목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 복도를 만들기 위해 공구 상가를 절반쯤 포기했다는 냉면집 주인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늘 그렇듯, 편육이 먼저 나왔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제육, 저육(猪肉, 돼지고기)이라고도 하는데 다 같은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쌈 고기와 달리 서늘한데 잡 냄새가 없고, 부드러운데 쫄깃하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이 돼지고기 편육에 있어서는 이만큼 잘하는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육수를 낼 때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함께 끓인다더니, 아마 그래서 이런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육수를 들이켰습니다. 그 맛이 여전합니다. 날씨가 달라지고 사람들이 몰리면 그 맛도 변하기 쉬운데 이렇게 유지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가느다란 면 다발은 공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습니다. 찬물에 헹군 면을 이처럼 꽉 짜서 물기를 빼주지 않으면 육수의 맛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온 힘을 다해 국수를 짜야 하는데, 어떤 도구도 없이 손으로만 해야 하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냉면 위로 고춧가루가 곱게 뿌려져 있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알맞아서, 덜하면 허전하고 많으면 매운 느낌이 올라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맛의 경계선이겠지요. 그 또한 매일 수백 번씩 반복할 텐데, 어느 쪽으로도 휩쓸리지 않으니 대단한 일입니다.

 꾸미를 열어 젖히고, 삶은 계란을 먼저 먹었습니다. 노른자가 풀리면 육수가 탁해지는 게 싫어서 그렇습니다. 육수를 한 모금 마시고, 아껴 먹던 편육을 국수 몇 가닥에 얹었습니다. 탄탄한 국수 가락을 적당히 집어 입 안에 욱여 넣습니다. 그리고 또 육수를 한 모금 마십니다. 그제야 막힌 숨이 트이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냉면에 소주를 드시는 풍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습니다. 주로 평양의 냉면 맛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평양의 냉면만이 그렇게 특별했을까요.

3. 평양의 맛

 17세기에 중국으로부터 국수틀이 전해진 이래로, 냉면은 관서(평안도, 황해도 북부) 지방의 겨울 별미로서 문헌에 몇 번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국수', 혹은 '막국수'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막국수'는 메밀의 껍질까지 한꺼번에 가루를 내어 반죽한 면을 말하는데, 평안도에서는 색이 검다고 흑면(黑麵)이라고 불렀고, 강원도에서는 흙 색깔이 난다고 토면(土麵)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4.27 남북정상회담 옥류관 냉면 / 2018. 07 – MBC 스페셜 <옥류관 서울1호점>

 관서 지방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겨우내 녹지 않아서, 겨울 김치가 천천히 숙성되며 깊은 맛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겨울 김치를 동침(冬沈)이라 불렀는데, 그 말이 변해서 '동치미'가 된 것입니다. 평안도에서는 남쪽 사람들이 '싱건지'라 불렀던 이 물김치를 담글 때 고기 삶은 물을 섞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도 김장 김치 담글 때 종종 쓰기도 하지요. 그렇게 담근 동치미는 가을 메밀을 수확하는 시기에 가장 알맞게 익어서 국수를 말아 먹기 좋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겨울냉면이었습니다.

 그러데 여름에는 냉면에 동치미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냉장 시설이 없어서 하루만 두어도 맛이 변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기 삶은 물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주로 소고기 육수를 중심으로 꿩고기나 돼지고기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름냉면에서도 평양의 강세는 계속됐습니다. 그 이유가 당시 신문 기사 속에 나와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제아무리 잘 만드는 국수라도 밀가루를 섞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순전히 메밀로만 만들며, 쇠고기, 돼지고기를 서울보다 갑절씩이나 넣는데, 평양육이 얼마나 맛있는지 형도 이미 아시는 바라 누누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닭고기와 달걀까지 넣으며, 닭 삶은 국물에다가 말아서 갖은 양념을 하니 얼마나 맛이 있겠습니까."
- 동아일보 / 1926. 8. 21

 여기서 평양육(肉)은 평양의 소, 평양우(牛)의 고기를 말합니다. 당시 평양의 소고기 품질이 매우 뛰어나고 저렴했다는 뜻입니다. 조금 앞선 시기의 일본 측 자료를 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 나옵니다.

"특히 평안남도에서 생산되는 차우(車牛)는 키가 5척(약 1.5미터) 정도가 되는 것도 있었고 발육의 상태가 좋아서 외국 종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 중략 – 지금의 조선우는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체격이 작아지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예전의 소들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조선지산우(朝鮮之産牛) / 1910

 조선의 소 품종이 뛰어났던 것은 오랜 이유가 있습니다. 건국 초기, 조선은 물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각궁(角弓)의 재료인 뿔을 얻을 수도 있고, 힘도 세고 지구력이 좋아서 농사일에 쓸 목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세조 7년(1461년)에 드디어 오키나와에서 물소 한 쌍을 들여와 창덕궁 후원에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추위에 약한 물소들을 적응시키며 50여 년을 노력한 끝에 중종 4년(1509년)부터는 수십 마리로 불어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농민들이 물소에게 밭을 갈게 했는데 그 힘이 재래종의 2~4배가량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목동오수(牧童午睡) / 김득신 作 / 18세기 / 간송미술관

 그 뒤로 자연스레 기존의 토종 소들과 교배가 이루어지면서 독보적인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크고, 힘 세고, 온순한 소는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조선 후기에는 그 숫자도 많이 늘어서 인구 15명당 한 마리 꼴이었다고 하니, 조선은 당대 최고 품종의 소를 몇 집 건너 하나씩 기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결국, 평양의 냉면이 다른 지역보다 뛰어났던 것은 평양 소고기의 품질이 매우 좋았고, 게다가 고기의 양도 푸짐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가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고기였을지도 모릅니다.

4. 정통성과 다양성

 우리는 1920년대 원래의 평양냉면 맛이 어땠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아직 평양에 가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평양도, 평양의 냉면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맛을 확인하려면 시간과 장소 두 가지 모두 되돌려야만 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정통성보다는 다양성으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냉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재료가 단순한 데 비해 다양한 변주를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난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냉면집들에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종로의 유진식당은 탁하고 짙은 국물이 가끔 오해를 사지만, 좋은 수육과 녹두전을 곁들이면 더위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국밥은 박찬일 요리사의 손에서 재구성된 곳인데, 그 완성도가 수십 년 노포(老鋪)에 버금간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옥류관처럼 알고명(鷄蛋, Jidan)이 올라간 몇 안 되는 냉면집으로, 여름에 명란오이무침과 함께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남포면옥은 아직 동치미를 육수로 쓰는 고집스러운 곳인데, 동치미의 신맛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여러 가지 약재를 써서 육수의 향이 아주 독특한 곳입니다.
 그러나 냉면의 진화를 비웃듯, 본래 같은 음식이었던 막국수는 더 자유롭게 영역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냉면은 평양의 울타리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메밀국수라는 큰 틀 안에서 막국수는 좀 더 변화무쌍합니다. 어쩌면 냉면이 고집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피로감이 반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골들 맛보기였던 들기름막국수를 대표 메뉴로 바꾼 장원막국수는 하루에 테이블 회전 수가 30번쯤 됩니다. 을지로4가의 터줏대감 산골면옥은 언제든 일정한 수의 단골들이 진을 치는 곳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이제는 자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막국수 곱빼기를 시키면 나오는 쌍봉(雙峯), 다른 말로 '엎어말이'는 이 집 명물입니다. 그리고 성게소막국수는 임정식 요리사가 평화옥을 열기 전에 시도했던 팝업 스토어(Pop-Up Store)의 메뉴였습니다. 아주 도전적인 시도였는데, 그 고소함과 해물의 신선함이 기묘하게 어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5. Epilogue

 냉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지를 쳐내느라 자꾸만 글 바깥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좀 횡설수설한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냉면은, 지난 100년을 통틀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음식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한 그릇에 담긴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그러니 메밀과 모밀을 논하고 육향의 종류를 살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름이 막국수건, 냉면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맛이 균형을 이루는지는 살펴야겠지요. 그렇게 다양한 냉면들을 두루 섭렵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원형을 찾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박경리의 말처럼 그것은 끝이며, 정지이며, 소멸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남은 여름은 아껴두었다가 동네 냉면집 갈 때 쓸까 합니다. 벌써부터 젓가락 끝에 냉면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서 메밀꽃이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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