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업자를 따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늦가을이었음에도 푸름을 잃지 않았던 마당의 잔디, 건강하게 자라고 있던 텃밭의 채소들, 여유롭고 평온해 보이는 초록들에게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리고, 집을 둘러본 지 30분만에 입주를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었드랬죠.
재미있는 건, 제가 계약서를 꾸미는 동안 바로 이전에 집을 보고간 분이 집 계약을 하겠다고 부동산으로 전화를 했단 사실인데요. 그 분과 전화를 하며 난처해하던 중개업자 아주머니를 보고선, 다소 급한 듯 했으나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강하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좀 더 해본다고 시간을 끌었다면, 지금과 같은 주택적 삶은 없었겠죠. 물론 그 역시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집을 보러 갔을 당시 제법 잘 정돈된 마당의 잔디와 텃밭의 식물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에 뭐가 있고 교통은 어떤지를 꼼꼼하게 따지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선택을 한 것인데, 그냥 이 곳에서 살고 있게 될 내 모습에 스스로 빠져들어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집에서 살게 되면, 지금 살고 계신 노부부 보다 훨씬 더 예쁘고 그럴듯하게 마당을 가꿀 수 있을 것 같다는 크나큰 착각을 하면서 말이죠.
# 꾸덕꾸덕한 땀과 눈물의 댓가
아이를 낳기 전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육아가 뭐 별거 있나, 아이들이야 그냥 낳으면 자연이 알아서 길러주는 거 아니겠냐..' 자연이 알아서 길러주는 과정 중에서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일년에 몇 번쯤은 가끔 새벽에 응급실 방문해주고, 뉴스에서 말하는 어린이 돌림병 중 몇 개는 꼭 걸려서 고생 좀 하는 것'들은 생략이 되었나 봅니다.
이사해서 맞이한 첫 여름에 그걸 깨닫게 되었는데요. 그 날, 이곳에 처음 온 날 보았던 여유롭고 풍요로운 초록들은 자연이 거저 준 선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낸 산물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몇 십 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저와 제 아내는 순진하게도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조막만한 밭에서 난 소출 덕분에 이제 채소 살 일은 없겠구나', '채소들이 좀 남으면 가까운 원당시장에 내다 팔기도 해야겠구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죠.
어찌되었건, 각종 채소 모종들이 심어진 자리에 적당히 물도 주고, 비료도 뿌려주었습니다. 그럴듯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해 각종 연장들도 구입했고요. 별일 없는 주말 오후에는 늘 주기적으로 그렇게 노동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소박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는데요.
모종가게 젊은 점원이 돈 안받을 테니 그냥 가져가서 한번 키워보라고 건네준 딸기는 역시 할인점에서 시식하며 맛보았던 그 달콤한 맛은 아니었고요. 가시 같은 게 표면에 많아 맨손으론 절대 만질 수 없었던 오이는 처음부터 매끈한 채소는 아니었더군요.
야심차게 모히또 만들어 넣어 먹으려 했던 애플민트는 잡초 같은 생명력의 바로 그 잡초들 덕분에 단명하셨고요. 그나마 잘 자라주었던 고추들은 가족들이 그닥 선호하는 반찬이 아니란 이유로 부모님 댁으로 이관된 일부를 제외하곤 땅에서 나서 곧 다시 땅으로 들어가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먹을 순 없었으나 잘록한 허리의 유미적 관점을 몸소 보여준 오이, 한동안 식탁에서 사랑 받았던 호박
하지만 모양은 이상했으나, 수분 가득한 호박은 아침상에 바로 올려 식감 좋은 호박전으로 부쳐 먹기도 했고, 제법 맛이 좋았던 방울 토마토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심은 적은 없었으나, 언제부턴가 자라고 있던 돈나물은 처음엔 잡초인줄 알았으나, 물김치에 넣어 먹거나 초고추장 양념을 해서 먹으면, '툭툭'거리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주택적 삶의 노동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작은 소출이 주는 기쁨 역시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생산성이나 효율 측면에서 보자면, 고사리 같은 꼬마들의 손과 도시형 백수(白手)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마는, 작고 소박한 하지만 위대한 생육의 과정에 함께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네 식구에겐 흥분과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멈춘 듯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초록들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조금씩 그 생장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죠.
# 고단한 일상 속 구원자 : 꽃님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마당 이곳 저곳에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일부 잡초에게도 꽃이 피어나는데요.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질문도 시작이 됩니다.
'아빠, 이건 이름이 뭐예요?'
중학교 생물시간에 딴짓 하지 않았더라면, 빈약한 생태적 지식이 조금은 충만해졌을까요? 저는 여전히 마당 안쪽에 피어있는 꽃이 철죽인지 연산홍 인지가 헷갈립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알게 된 신기방통한 어플 덕분에 이제는 요런 식물이나 꽃 이름들은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부권을 보다 견조하게 만들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요.
아무튼 먹을 수도 없는 꽃과 같은 개체는 그다지 저의 관심을 끌진 못했습니다. 그저 남자들이 의례적으로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활용하는 소품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죠. 작년에 사다 심어놓은 장미가 만개하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언젠가 주말에 마당에서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와 보라길래, 못 보던 벌레가 나타났나 싶었는데 마당에 있던 장미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 소리였습니다. 작년 여름께 사다가 심었던 거 같은데, 꽃을 피우지 않아 속아 산 줄로만 알고 있었더랬죠. 개화 시기가 5월이었음을 모르는 무식함 덕분에 말입니다.
아이들 손이 이끌려서 담장 밑 장미를 보게 되었는데요. 뭐랄까요, 그 때의 기분은…TV에서 AOA의 설현을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의 쓰나미 였습니다. 먹지도 못하는 '꽃' 따위에 심쿵하다니요. ㅎㅎ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장미들을 보지 않았을 까요. 민들레나 무궁화처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장미는 좀 달랐습니다. 무언가..그게 모양이 특이하다거나 향이 더 강렬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꽃이란 걸 심었고, 제법 꾸준히 물도 주고, 주변 잡풀들도 꾸준히 뽑아내는 등 나름의 정성이 1년만에 근사한 꽃이 되었다는 사실에 무언가 좀 특별한 애착을 갖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미에 감탄하기 전 마당 안의 AOA는 사실, 로즈마리였습니다. 유독 후각에 민감한 터라 그루당 1만원이나 하는 로즈마리를 무려 3그루나 심어 놓았는데요. 출퇴근길에 머리 쓰다듬듯 손으로 가지들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향이 퍼지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식물이었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다 말라 죽는 건가 싶더니만, 어느새 죽은 고동색 줄기들이 다시 초록으로 변해 있더군요. 얼마 전 다녀간 조경업자 아저씨도 이렇게 로즈마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이곳 볕이 꽤나 좋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역시 생명이라는 건 상황이 어찌되었건 살아내는 힘 자체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신학자의 '꽃은 척박하고 고단한 일상 속 구원'이란 말이 생각이 나네요. 생이 지속되는 동안 절기별로 꽃들은 피고 지고를 반복하게 될텐데,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 붕붕'까지는 아니지만 얄팍하게나마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저의 비루한 일상을 구원해주길 소망해 봅니다.
# 3화를 마치며…
매번 같은 시간에 일정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지구상 어떤 일보다 힘겨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사실 이 모든 주기적 노동은 고통 아닌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것을 지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노동과 주택적 삶 사이에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얼개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졌는데요.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정보를 전해드려야겠단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6시 내고향'에선 그야말로 꾸미지 않은 리얼한 삶의 정보들이 넘쳐나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