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장인 정신의 극치, 바티칸 - AMORE STORIES
#박샛별 님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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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장인 정신의 극치, 바티칸

칼럼니스트박샛별 님
아모레퍼시픽 뷰티플랫폼팀

 안녕하세요, 사우 여러분. 세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뷰티플랫폼팀 박샛별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미술이나 건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탈리아 로마 지역을 여행하면서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조각과 건축, 그림들을 보며 그 규모와 섬세한 디테일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중 특히 바티칸 박물관에서 받았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데요. 오늘은 신에게 닿았을 예술이 가득한 바티칸시국에서 만난 장인 정신의 대표 주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로마 포폴로 광장의 사자상입니다. 섬세한 갈기와 누군가가 입에 물려준 장미로 누가 봐도 이탈리아 사자임을 보여주네요.

  바티칸 박물관에는 그림, 조각, 건축을 망라하는 엄청난 작가들의 예술품들이 가득한데 그중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는 역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3대 예술 거장으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꼽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실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다고 해요. 교황과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아 바티칸에서는 그의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 바티칸 박물관을 떠받치는 좌 미켈란젤로 우 라파엘로 되시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워낙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미켈란젤로를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생각하실 텐데요. 사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가 24세에 로마에 체류하고 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피에타 상입니다.
  • 현재 피에타 상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방탄유리 속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처음 이 피에타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유명하지도 않고 어렸던 이 조각가를 시기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보이는 예수의 표정이나, 앳되어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 예수에 비해 커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비례를 꼬투리 잡아 비난했다고 해요. 사실 미켈란젤로는 애초에 피에타 상을 신에게 바치겠다고 생각해서,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을 고려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시점에서 피에타를 마주 서서 보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부분들이 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예수와 마리아의 비율이 맞아떨어지고, 예수의 표정이 평안해 보인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를 듣고선, 그는 정말로 비범한 예술가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 몸의 근육, 손등의 핏줄, 옷자락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정말 세심하고 현실적이었어요.

 미켈란젤로는 이 멋진 창작품을 처음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성당에 가져다 놓았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이 조각을 대체 누가 만들었는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을 봅니다. 다른 조각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서, 미켈란젤로는 밤에 몰래 성당에 숨어들어 '피렌체 출신 미켈란젤로'라고 성모 마리아의 가슴께 조그맣게 조각해 새겨 넣지요.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본인 이름을 더 대문짝만 하게 표시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작품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미켈란젤로다운 고집으로 보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한 피에타 상은 현재 성 베드로 성당 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품이 되었습니다. 신의 관점에서 조각했다는 사실도 너무나 대단하지만, 조각 자체만 보아도 무릎이나 손 같은 섬세한 부분들이 실제 사람 같아 놀라기도 했어요.
  • 이런 식으로 가까이 가서 자세히 봐야만 새겨진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작품을 할 때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작품만을 생각하며 체력적인 한계까지도 뛰어넘어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 최고의 산물이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일 것 같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의 전용 예배당이자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곳으로 교황청의 심장부라고 해요.

 예배당에 입장하면 양쪽 벽에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루카 시뇨렐리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들이 표현하는 예수와 모세의 일생 연작이 보이고, 머리 위에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입장하는 사람들 모두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스토리텔링에 입을 떡 벌리게 되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이 다 똑같아 가만히 지켜보다가 웃음이 났습니다. 저 또한 예외없이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채 담기지도 않는 장관에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돌리느라 바빴지만요.
  •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서면 이토록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지며,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마주할 수 있지요.

 4년 동안 천장 아래 비계를 설치해놓고 고개와 등을 뒤로 젖힌 채 매일 작업했을 미켈란젤로. 그래서 그의 허리는 구부정해졌고 관절염에 시달렸으며, 유화물감이 얼굴과 눈에 떨어져서 작품이 완성될 무렵에는 시력을 거의 잃고 피부병으로 고생했다고 해요. 그럼에도 미켈란젤로는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몇 년을 이 천장화를 위해 바치죠.

 작품을 오랜 기간 그리다 보니 그리는 와중에도 그의 그림 실력이 늘었음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는 조각을 했던 사람답게 회화에서도 평면적 표현에서 진화해,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는 모습을 앞모습과 뒷모습을 이어 그려서 입체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시도했답니다. 그 디테일에 감탄하며 미켈란젤로는 정말 노력하는 천재라는 표현이 딱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사람들이 본다면 나를 천재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노력파이기도 했습니다.
  • 복도의 천장조차도 너무나 화려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 채 걸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곱슬머리에 주저앉은 코를 가진 외골수였다면, 라파엘로는 사교적인 미남이었다고 해요. 둘은 성격과 외모는 정반대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고집이 너무 세 제자들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작품 활동도 대부분 혼자 했던 미켈란젤로에 비해 라파엘로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상냥한 성격으로 주변에 제자들이 많아 함께 만든 작품들 또한 많다고 해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보고 친구에게 "천장에서 인물들이 떨어지는 줄 알고 황급히 몸을 숨길 정도로 그림이 너무나 빼어났다"라고 말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때부터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경외하며, 그의 인물 묘사 등을 배워 본인의 그림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사실 라파엘로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장점들을 모방해 본인 것으로 소화해내는 것에 뛰어났다고 해요.
  • 압도적인 동문들을 자랑하는 아테네 학당입니다. 등장인물이 많음에도 구도가 안정감 있어 산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집무실을 꾸며줄 작가를 찾던 교황 율리우스 2세 앞에 아름답고 재능 있는 라파엘로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라파엘로의 나이 25세, 이 젊은 천재가 탄생시킨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바티칸이 자랑하는 아테네 학당입니다. 라파엘로의 그림에 경탄한 율리우스 2세는 나머지 방들도 그에게 맡겨 바티칸 박물관에는 라파엘로가 만든 네 개의 방이 남아 있게 되죠.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서는 '아테네 학당'과 '성체에 관한 논쟁(disputa)'을 볼 수 있습니다.
  • 작년 여름 제가 방문했을 때는 티켓 메인이 아테네 학당이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이 구역의 간판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해서,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등이 등장합니다. 라파엘로는 인물의 특성을 그림에 영리하게 담았는데요, 관념을 중시하는 플라톤은 한쪽 손이 하늘을 향하도록, 자연계와 과학을 탐닉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표현했죠.

 플라톤 옆에는 소크라테스가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아래에는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견유학파(犬儒學波) 디오게네스가 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욕심 없이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되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견지했고, 개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한 견유학파의 대표 철학자입니다. 실제로 그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살았다고 해요. 세계를 정복하며 승승장구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일광욕을 하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찾아와 공손히 대화를 청했는데, 디오게네스는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이 나의 따뜻한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좀 비켜주시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일화를 듣고 보니 아테네 학당 한가운데 계단에 드러누운 그의 모습이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By Nicolas Andre Monsiau, 1818

 아테네 학당 속 등장인물들은 라파엘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을 모델로 삼았는데,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허리를 굽혀 컴퍼스를 돌리고 있는 유클리드는 건축가 브라만테를, 보라색 옷을 입고 팔꿈치를 계단에 기댄 채 사색에 잠긴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초상을 담았다고 해요. 우측 하단에 까만 모자를 쓰고 옆모습이 빼꼼히 보이는 인물에는 본인의 얼굴을 담았고요. 그 옛날 현인들의 모습을 동료들을 모델로 삼아 그려내니 그림 속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한결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은 당시 파격적으로 천상과 지상을 극적으로 대조해 표현했습니다.

 1515년에 바티칸의 예술 책임자가 된 라파엘로는 1520년 본인의 생일날 37세라는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일에 대한 집착과 추진력으로 온 기력을 쏟아낸 그가 열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작업한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도 바티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데요. 그림의 윗부분인 천상에서는 예수가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 순간을 보여주고, 아래 지상에는 어둡고 소란스러운 모습으로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곤란에 빠진 채 예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강렬한 분위기가 압권인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뒤, 그의 제자 로마노가 이어서 그려 완성했다고 해요. 라파엘로가 만든 이 극적인 대조 화풍은 르네상스 고전 양식을 해체한 것으로, 다음 세대인 바로크 양식이 자리 잡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위대한 예술 업적 덕분에 라파엘로는 성인으로 추대되어 로마 판테온에 유해가 모셔져 있어요.
  • 로마 판테온에서 잘생긴 라파엘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티칸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보면서,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본질보다 효율성을 먼저 따지고, 어떻게 해야 수치적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들까를 치중해서 고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그에 반해 바티칸시국에서 만난 예술가들에게서는 오롯이 작품 자체로 견주고, 누가 그 과정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 묵묵히 노력해왔을 장인 정신이 느껴졌습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그 고결한 가치는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았어요. 그랬기에 대단한 마케팅 없이도 몇 백 년째 수천만의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감동시킬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1년 내내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곳입니다. 하지만 감동적인 장인 정신을 목도하며 리프레시하고 싶은 분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막강한 바티칸에 가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다음 칼럼으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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