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김밥을 아주 맛있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소풍 도시락에 어김없이 들어 있던 다진 베이컨과 치즈를 넣은 김밥도 맛있었지만, 가장 즐겁게 먹은 김밥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인 날 만들어 먹던 테마키즈시 (手巻き寿司)입니다. 각자 만들어 먹는다는 점도 재미있었지만, 테마키즈시를 만들 때 정해진 저의 역할이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테마키즈시용 초밥을 만들 때는 갓 지은 밥에 식촛물을 부어 양념합니다. 이때 밥에 부은 식촛물의 산이 빨리 날아가도록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어야 하는데, 바로 그 일이 집의 막내인 제 몫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이 다 지어질 때쯤 제 이름을 부르시면, 책상에 있던 책받침을 가지고 부엌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요즘 마트에서 아보카도가 자주 보입니다. 아보카도를 보니 저는 테마키즈시가 생각났어요. 다른 채소는 빠져도 아보카도는 꼭 들어가야 제맛이 나거든요. 휴일이 많은 5월, 아이들과 집에서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요리로 소개해드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길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먹지 않던 채소나 고기들을 금세 먹어버리기도 하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이지요. 아이들과 쉽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엄마나 아빠가 미리 준비를 좀 해두어야 합니다. 아이가 쉽게 또 바로 요리를 시작할 수 있게요.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는 음식을 멋지게 완성한다는 마음을 버려야 아이와 즐겁게 요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테마키즈시는 그런 면에서 적당한 요리입니다. 잘 손질된 색색의 재료들을 기호에 맞춰 김에 말기만 하면 됩니다. 예쁘게 완성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도 부모도 마음의 부담이 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하나씩 싸서 입에 넣어주기도 하면서요.
테마키즈시에서 중요한 것 두 가지. 바로 맛있는 쌀밥과 김입니다. 김의 경우 저는 '곱창 김'을 추천합니다. 양념하지 않고 구워서 바로 먹는 곱창 김은, 김 자체의 풍미가 좋을 뿐 아니라 일반 김보다 두께가 두껍고 질감이 바삭해 입에 넣고 씹는 소리부터 맛있습니다. 곱창 김은 일반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밥은 전기밥솥에 하는 편이 편리하긴 하지만, 저는 솥에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 솥밥에 도전했을 때는 밥이 설익으면 어쩌나 혹은 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몇 번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데다, 전기밥솥으로 한 밥보다 더 맛있는 그 맛에 반해 주말이면 꼭 솥에 밥을 지어 먹습니다.
솥밥 짓는 방법을 설명드릴게요. 쌀은 밥 짓기 1시간 전에 미리 씻어서 체에 밭쳐둡니다. 솥에 정량의 물과 쌀을 넣고 센 불에서 5분 정도 두면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불을 줄여 15분간 익히고 불을 끕니다. 그리고 10분간 그대로 두어 뜸을 들이면 솥밥이 완성됩니다. 그냥 먹는 밥이라면 상관없지만, 김밥용 밥을 지을 때는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 편이 좋습니다. 쌀과 물(수분)의 비율을 1:1로 정확히 지키면 되는데요. 계량컵에 양념을 먼저 넣고 여기에 물을 부어 계량하면 쉽게 비율을 맞출 수 있습니다.
테마키즈시에 넣을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재료들을 소개해드립니다. 꼭 전부 필요한 것은 아니니,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가감해서 쉽게 만들어보세요.
* 재료 (4~5인분 기준) :
· 쌀 3C
· 물 3컵 : 미림 2T + 청주 1T을 미리 넣은 뒤 추가로 물을 부어서 전체 양을 3컵으로 맞춤
· 식촛물 : 식초 4T + 설탕 2T + 소금 1/2T
· 다시마 5cm* 2장
· 구운 곱창 김 8장 : 가로세로 약 10cm 정사각형이 되도록 잘라서 준비
· 아보카도 3개
· 날치알 1팩
· 계란말이 : 계란 3개 + 미림 1T + 설탕 1/2t +소금 1/2t
· 오이 1/2개
· 무순 1팩
· 참치 샐러드 : 참치 1캔 + 양파 채 썬 것 1/2개 + 레몬주스 1 1/2T + 마요네즈 1/2C
· 연어 횟감 & 참치 횟감 200g씩
· 흰깨 1/4C
· 잘게 찢은 게맛살 3개
· 슬라이스 치즈
* 계량 기준 1cup = 200ml / 1Ts = 15ml / 1ts = 5ml
1. 쌀은 밥 짓기 1시간 전에 미리 씻어 체에 걸러둡니다.
2. 밥솥에 쌀을 붓고, 미리 섞어둔 물+미림+청주를 부어줍니다. 여기에 다시마 조각을 함께 넣어 취사를 해주세요. 솥에 지을 경우 센 불에서 5분, 약한 불에서 15분, 뜸 10분을 들입니다. 밥이 다 되면, 뜨거운 김이 한 김 날아가도록 밥주걱을 세워 자르듯이 저어줍니다.
3. 한 김 식힌 밥을 넓은 쟁반 등에 펼쳐놓고, 여기에 식촛물을 골고루 뿌려줍니다. 밥과 양념이 얼추 섞이면 부채를 부쳐 식히며 섞어줍니다. 김이 확실하게 빠지도록 충분히 식혀주세요.
1. 계란말이 재료를 모두 섞어줍니다.
2. 잘 달군 프라이팬에 조금씩 계란물을 부어가며 계란말이를 만듭니다. 4~5번에 나눠서 부어주세요. 계란말이가 눌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프라이팬의 온도가 중요합니다. 계란물을 부었을 때 치익 소리가 나면서 계란이 보글보글 부풀면 적당한 온도입니다. 계란을 말 때는 온도를 여기서 조금 낮춰서 말아주세요.
3. 계란말이가 완성되면 한 김 식힌 후에 김밥에 넣기 좋도록 기다란 모양으로 썰어 준비합니다.
1. 참치는 캔에서 기름을 따라내어 버리고, 양파는 잘게 채 썰어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주세요.
2. 참치와 양파, 마요네즈와 레몬주스를 잘 섞어줍니다.
1. 아보카도는 세로로 돌아가며 칼집을 내어 반으로 쪼갠 다음, 아직 과육에 붙어 있는 씨에 칼을 깊숙이 박아 비틀 듯이 씨를 빼냅니다. 껍질은 잘 익은 아보카도라면 손으로 조금씩 떼면 금방 떨어집니다. 역시 김밥에 넣기 좋도록 세로로 길게 썰어주세요.
2. 연어와 참치 횟감도 한입 크기로 썰어주세요.
3. 그 밖에 재료들 - 흰깨, 게맛살, 오이, 고추냉이, 무순 등은 작은 종지에 담고 덜기 편하도록 작은 스푼이나 집게를 같이 놓습니다.
모든 재료가 완성되었습니다. 넓은 접시에 골고루 준비된 재료를 담고, 각자 취향껏 김밥을 싸 먹으면 됩니다. 김밥을 싸는 방법은 김 위에 밥을 평평하게 편 다음, 좋아하는 재료들을 적당히 올려 나팔 모양이 되도록 김의 모서리 부분부터 말아주면 됩니다. 다양한 조합으로 김밥을 만들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양의 밥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아이들은 손이 작아 김밥 마는 것을 힘들어해서 저는 미니 사이즈 김발을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김발과 작은 주걱으로 열심히 김밥을 쌉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요리하는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