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마음이 힘들 때, 꺼내 읽어요 - AMORE STORIES
#이재은 님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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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마음이 힘들 때, 꺼내 읽어요

칼럼니스트이재은 님
아모레퍼시픽 조직문화개발팀


 유난히 마음이 힘든 날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따뜻한 말조차도 마음에 들이기 버거운 날들 말입니다. 저는 그런 날 소설이나 만화에 파묻히곤 했습니다. 자기 개발이나 업무와 관련된 그런 '쓸 데 있는 책들' 말고, 허구인 것도, '쓸데없는' 것도 분명한 이야기 속 세계를 싸돌아다니며 (가상의) 콧바람을 쐬고 나면 뾰족이 곤두세웠던, 힘을 주어 웅크렸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풀어졌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야기에서 위안을 찾는 것은 배워 아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생존의 기술이라는 것을요. 아이들은 잠이 드는 게 무서워 잠투정을 한다고들 하죠? 그럴 때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는 아이의 두려움을 어루만지고 잠에 빠져들게 합니다. 소아과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 낮에 본 사나운 고양이가 자꾸 생각날 때… 아이는 책장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날름 뽑아다 엄마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릅니다. 떼를 쓰다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분을 참지 못해 방방 뛰고 자신이 아는 가장 미운 말(심술꾸러기라든지…)을 주워섬기다가도, 짐짓 모르는 척 그림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하면 이야기에 끌리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슬금슬금 다가와 귀를 기울인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요?

 이번 '모두의 그림책'은 아이뿐 아니라 세상에 지친 어른이의 아픈 마음도 만져줄 위안의 책들을 엮어봤습니다. 이야기와 그림, 색채의 개성은 모두 다르지만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큼은 같은 두 권의 책입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숨긴다면
올리버 제퍼스 <마음이 아플까봐>

 아이들은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냅니다. 기쁘면 발을 동동 구르고 깔깔 웃고 슬프면 눈물이 금세 차오르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아이들은 '쿨해지는' 법, '척하는' 법을 배웁니다. 기뻐도 슬퍼도 아닌 척, 솟아나는 애정도 적당히 눌러 에두르고, 상처에도 아프지 않은 척하면서 '제법 어른스러워졌다'는 칭찬을 듣게 됩니다.

 북아일랜드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올리버 제퍼스가 쓰고 그린 <마음이 아플까봐>의 소녀도 그런 시기를 겪습니다. 소녀는 별과 바다를 보면 마음이 간질이고, 엉뚱하고 담대한 상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너무나 큰 슬픔에 맞닥뜨리자 소녀는 그만 자신의 마음을 꺼내 두꺼운 유리병에 가두어버리고 맙니다.
 소녀가 어른이 되는 동안 유리병 안에 갇힌 마음은 과연 아프지 않고 안전했지만, 소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더 이상 별을 생각하지 않고, 무엇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며 유리병 깊숙이 침잠한 소녀의 마음은 소녀가 이런저런 도구로 꺼내어보려 해도 도무지 유리병의 좁은 주둥이를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실톱으로 썰어도 끄떡없던 소녀의 유리병은 데굴데굴 굴러 해변에 가닿습니다. 소녀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던 곳이죠. 그때, 그 시절 소녀만 한 어린아이가 다가와 유리병 속 마음을 거짓말처럼 손쉽게 꺼내어 줍니다. 관계의 상실로부터 받은 상처로 갇혀버린 마음을 새로운 관계,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아이다움이 열어준 것이죠.

쿨하지 못해도, 내 마음에 솔직한 삶
사노 요코 <태어난 아이>

 그런가 하면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 솔직 담백하고 위트 있는 에세이로도 유명한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의 아이는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아예 '태어남'을 거부합니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아이는 '쿨'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맹수도 무섭지 않고, 갓 구운 빵 냄새에도 배가 고프지 않고, 예쁜 친구가 말을 걸어와도 대꾸하지 않습니다. 두꺼운 유리병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게 된 소녀의 마음처럼, 아이는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이제 된 걸까요?

 어느 날, 아이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생깁니다. 개에 물린 여자아이가 엉엉 울며 엄마에게 뛰어갔을 때, 엄마가 우는 아이를 나직이 달래며 씻기고, 약을 발라주고,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을 본 아이는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보다는 나의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줄 누군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단어는 '반창고, 반창고!',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원하게 된 아이는 '태어납니다'. 이제 아이는 부딪히면 아프고, 물리면 가렵고, 빵 냄새를 맡으면 입 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태어나지 않음'의 자유로움과 굳건함, 강함을 버리고, 욕망하고 흔들리고 나약한 존재가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맛과 색채를 품에 안은 것입니다.

 <마음이 아플까봐>는 재기 넘치는 아일랜드 남성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입니다. 그림체는 부드러우면서 단순하고, 색채는 맑고 풍부합니다. <태어난 아이>는 태평양전쟁 시대에 태어나 이미 작고한 일본 여성 작가의 작품입니다. 펜으로 힘있게 마구 그은 듯한 와일드한 터치, 빨강, 파랑과 무채색 등 몇 가지의 색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두 책이 품고 있는 메시지만큼은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유럽인이건 아시아인이건, 인간이라면 겪는 아픔과 슬픔의 해답은 결국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과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내민 손을 맞잡기를 주저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덧 2018년도 반환점을 돌아야 할 시기가 가까워옵니다. 회사에서건, 가정에서건 늘 즐겁고 마음에 꼭 차는 일들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다면 이 두 책을 통해 지난 반년을 잘 마무리하고 마음을 토닥일 위안을, 그리고 6개월이나(!) 남아 있는 남은 반년을 멋지게 살아갈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그림의 출처는 amazon.com 및 그림책박물관(http://picturebook-museum.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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