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감독은 작품을 ‘만들고’, 프로듀서는 영화를 ‘완성한다’. - AMORE STORIES
#강승민 님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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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감독은 작품을 ‘만들고', 프로듀서는 영화를 ‘완성한다’.

  •  영화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스튜디오와 프로듀서는 왜 중요한가?
     사진은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출처 : CJ E&M)



 지난번 칼럼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지각변동 현상을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기반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영화 제작 단위, 스튜디오(제작사) 프로덕션과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미경의 뚝심?

 얼마 전 끝난 칸 영화제에서 기쁜 소식이 있었죠?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예술적 성취와는 별도로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투자 배급사인 CJ의(더 정확히는 E&M 사업부를 총괄하는 이미경 대표) 뚝심이 낳은 결과라고도 평가하는데요. 영화적 미학의 완결성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동시에, 대중적인 소구점까지 명확히 파악한 이번 영화는 영화사(바른손)와 투자 배급사 CJ와의 긴밀한 협조와 신뢰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부터 CJ와 함께하면서 매번 장르 영화라는 상업적 틀과 작가적 주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준수한 작품들을 만들어왔는데요. 이미경 대표는 감독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영화마다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며 작품을 제작해왔습니다. 특히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지금껏 봉준호의 야심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고 평가받는 <마더>에 CJ는 투자와 권한을 일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더>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면서 봉준호의 영화들이 세계 영화제에 첫선을 보이는 계기가 되었죠. 이러한 뚝심의 바탕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매우 장기적이면서 동시에 시장과 평단의 취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연구해야 하는 지난한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CJ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박찬욱과 영화사 외유내강(영화감독 류승완의 배우자가 운영하는 영화사, 대표작 <베테랑>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감독 혹은 프로덕션들과 협업해 최소한의 간섭과 규정 외에는 창작의 자율성과 권한을 위임하며 스타 감독들의 작품들을 배급하고 있습니다.

 비단 CJ뿐만이 아닙니다. 롯데나 쇼박스 같은 대형 투자 배급사들은 자사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감독/제작사와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당장의 수익 창출을 넘어서 투자 배급사의 브랜드를 해외(주로 영화제 기간 열리는 필름 마켓을 통해)로 확장하고 레벨업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올해 칸 필름 마켓에서 영화 <기생충>은 63개국에 해외 판권을 팔며 역대 기록을 세웠다. (출처 : 스포츠동아)



CJ의 두 얼굴

 하지만 대형 배급사들의 경우 단기 수익 또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영화들이 앞서 말한 평화롭고, 신뢰에 기반한 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대형 배급사, 특히 CJ가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비판받는 지점은 바로 투자 수익의 고정성과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대중 영화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봉준호처럼 본인이 제시하는 영화적 아이디어나 트리트먼트 포트폴리오를 귀담아듣고 사업 아이템으로 구체화해주는 파트너는 누구나 원하겠지만 대다수의 감독과 제작사는 그런 기회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영화적 맥락과 감독/스튜디오의 개성과 무관하게 신을 난도질당하거나 잘리고 때로는 직접적인 연출 간섭까지 받기도 합니다. 일례로 CJ의 경우 개봉을 앞두고 가편집한 영화들을 일반인 패널을 통해 심사를 받게 되는데요. 재미, 감동 등의 평가 요소를 신과 시퀀스별로 점수화해 평균 대비 낮은 신들은 덜어내고, 다른 신들로 채우는 수정 지시를 후반 작업 전에 진행한다고 합니다. 새로 삽입을 요청하는 장면은, 과거 흥행했던 영화들 중 가장 평이 좋은 부분들이며 이들 중 선택된 한 장면이 해당 영화에 맞게 변형됩니다. 때문에 가만히 살펴보면 CJ가 배급한 영화들은 기승전결의 패턴이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JK필름(윤제균 감독)의 영화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한 레퍼런스를 변형/수정하며 제작되어왔는데요. <협상>, <그것만이 내 세상>, <국제시장>, <해운대>등이 JK가 CJ와 합작해 만든 영화들입니다. JK필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 회사 의존도가 높다면 제작사의 역할은 단순히 연출부와 미술부 등 영화 생산의 시스템을 꾸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CJ E&M은 영화사 JK필름을 인수해 인-하우스 시스템 제작으로 영화를 개봉하고 있다. (출처 : CJ E&M)



부침이 많은 영화 산업

 이러한 비판에 대기업 투자 배급사들 또한 할 말이 많습니다. 영화 산업은 고정비와 마케팅비가 많이 들어가는 반면 그 수익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 주요 반론 내용입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모바일과 클립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신 단위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백 억을 투자한 영화도 개봉 전까지는 흥행을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정하고 부침이 많은 영화 시장에서 투자 수익률을 회수하기 위한 일견 타당한 논리일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극장 사업까지 겸하며 자사 투자 영화를 소위 "몰빵"하는 데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비즈니스적 판단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들의 외형이 비슷해지고 관객들의 뇌리에 휘발성이 강한 소비성 콘텐츠로 지금의 한국 영화들이 수렴된다면 결국 공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마치 과거 영화로웠던 홍콩 영화와 일본 영화들이 지금은 모두 전폐하고 르네상스의 흔적조차 없어져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영화 산업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인접 산업과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몸집을 더 불려야 한다는 말도 있고, 또 다른 혹자는 콘텐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는 가운데 가장 시급한 단계는 바로 "산업의 체질 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본의 유입도, 높은 수준의 역량을 보유한 예술가들도, 산업의 토대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도태되거나 소외되어 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업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영화를 만드는 제작의 단위, 바로 스튜디오의 자생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튜디오와 프로듀서의 역량이 더욱더 필요한 시기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작품이지만, 투자자의 투자 기대와 대중의 소구점을 프로듀서가 중간에서 중재하면서 만들어지는 레이블 기반의 소품종 대량생산의 상품입니다. 제작사의 색깔에 따라 보유하거나 계약한 감독들이 모두 다르고, 프로듀서는 투자자와 극장 배급 업자들과 소통 창구가 되어 이들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상품으로 출시되도록 가교 역할을 합니다.

 영화 제작의 순서는, 영화사에 소속된 프로듀서들이 연 단위로 영화 제작 콘셉트와 기획을 짠 후, 이에 걸맞은 감독과 스태프들을 모집한 뒤, 투자자의 투자를 받아 제작에 돌입합니다. 이후 촬영과 편집을 마친 영화는 후반 작업 후 배급사를 통해 극장에 상영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때문에 창작자와 투자자 사이에서 조율하는 스튜디오와 프로듀서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관객과 투자자, 스태프들이 기획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도록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제작 과정에서 품질에 대한 합의점을 매번 "과정 관리"해야 합니다. 이에 항상 트렌드와 영화적 흐름에 신경을 쓰고 촉을 세우는 감각은 기본 역량입니다. 그래야만 좋은 영화 기획이 나오고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획 영화는 관객을 리드한다.

 때로는 좋은 기획 영화가 관객들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모두 반대했지만 결국은 관객의 흥미를 끌고 영화 내용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에 성공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들 영화는 감독의 연출 능력도 한몫했지만 좋은 아이템을 끄집어내어 콘텐츠화한 프로듀서의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 우울한 한국 사회에 멜로 영화 돌풍을 일으킨 <접속>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 모두가 찬성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시나리오는 신파 없이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고, 당시 무명에 가까운 장윤현 감독을 보고 투자하려는 회사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티켓 파워가 약했던 전도연과 한석규는 흥행 요소는 더더욱 아니었죠. 하지만 당시 선풍적 인기였던 PC 통신을 기반으로 20, 30대들의 트렌드를 읽어낸 명필름 프로듀서인 심재명의 고집과 뚝심은 결국 <접속>을 1997년도 최고의 멜로 영화이자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시초로 만들었습니다.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조명주를 발굴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심재명 대표는 이후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를 크게 흥행시키며 당시 신인이었던 박찬욱을 주류에 소개하며 김광석의 노래까지 역히트시키기도 했습니다.
  • 명필름 심재명 대표(왼쪽). <접속>을 흥행시키며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 <해피엔드>, <반칙왕> 등을 제작하며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최근에도 <건축학개론>, <아이 캔 스피크>처럼 독특한 색깔과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다. (출처 : tvN)

 <쉬리> 이후 갈 길을 잃었던 충무로의 돈들이 체계적으로 투자되던 때도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강원도의 힘>의 홍상수,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등, 현재 거장으로 우뚝 선 감독들의 출세작들이 이때 만들어졌고 스튜디오 제작의 체계가 자리 잡힌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로듀서들의 역량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영화는 양질의 콘텐츠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제작사가 많아져야 한다."

 아직도 명필름을 경영하며 대표와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는 심재명 대표는 작년 <환절기> 개봉을 앞두고 파주 명필름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제작사가 많아져야 한다"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영화사는 300곳에 달합니다. 하지만 명필름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는 손에 꼽습니다. 좋은 영화사가 많이 나오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심재명 대표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탁월한 제작자들이 의미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제작자의 역할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스타 감독들은 자신의 제작사를 차려서 투자사와 직접 계약을 하죠. 제작자의 역할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많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거죠. 흥행의 양극화랄까요.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도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어요. 할리우드만 해도 상업 영화계 안에서 제작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작사의 숫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기사 출처 : 명필름 심재명 대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제작사가 많아져야 한다"(맥스무비))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좋은 제품은 뛰어난 기술과 감각만으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적절한 리더십으로, 때로는 빠른 상황 판단과 뚝심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산업의 한계를 돌파합니다. 영화계의 프로듀서의 중요성은 우리의 비즈니스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 <공동경비구역 JSA(2000)>, <접속(1997)> 등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기념비적 작품은 명필름이 제작했다. (출처: 명필름)

 다음 시간에는 오늘 이야기에 이어 트렌드를 주도하고 이끈 대표적인 영화 프로듀서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프로듀서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금의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스타 프로듀서들이 있었고 그들의 업적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아니결국프로듀서가BM이잖아
#감독은그럼연구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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