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Get a Life 전시회는 잘 보셨나요? 이번 칼럼에서는 중국 예술가 저우리(周力)의 단독 전시회인 Shadow of the wind 전(展)를 소개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본 전시회의 주 소재인 그림자와 선을 마주하게 됩니다.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전시장 제일 앞에 배치한 손바닥만 한 전등이 전시의 서막을 알립니다. 작품 속 구불구불한 선이 밝게 빛나며 이번 전시회에서 '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다양한 효과를 활용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선을 표현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국 전통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가장 먼저 느껴집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기 위해 움직이지만, 이 빛은 가만히 서서 살펴봐야지만 볼 수 있습니다.
선과 추상예술은 모두 자유롭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고도의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오랜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글씨가 흐트러지고 마는 서예와도 같죠."
- 저우리
천천히 문이 열리면서 어둠 속 하얀 배경이 두 눈을 사로잡습니다. 배경은 잠잠하게 있는 것 같다가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스쳐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파도가 치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형상이나 규칙도 없습니다. 가벼우면서도 우아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유를 나타내는 듯한 배경입니다.
뒤돌아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땐 태어나기 직전 엄마 뱃속의 태아가 떠올랐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의 뇌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흐릿한 기억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선들이 그 희미해진 기억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전시장 중앙에 등받이 없는 벤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으니 어둠에 둘러싸여 더 빛을 발하는 흰 배경의 그림과 마주했습니다. 그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그림이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우리도 빛의 일부이고 빛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으며, 빛나는 면도 그 뒤에 가려진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엉킨 선들은 동적인 동시에 정적이고,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우리 인생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두운 전시장에 한동안 멈춰 서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작품 앞에서 그리도 조용히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은 그리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뒤엉킨 선들로 표현된 위 그림 앞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느끼는 반가움과 정든 곳을 떠날 때 느끼는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마음이 답답했고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기억의 뿌리는 우울하기도 하고 편안하면서 행복하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파악할 수 없고, 좋고 나쁜 것이 모두 한데 뒤섞여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전시회 관람이 끝나고 마치 꿈을 꾼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다 이내 울컥하지만 깨어나면 별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꿈 말이죠.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찬란했던 추억을 가슴속에 새기는 것을 보면, 우리 모두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작품을 보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제가 직접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사진으로도 여러분에게 잘 전해지길 바라면서 이번 칼럼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