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택배를 기다리는 어린왕자 - AMORE STORIES
#신우철 님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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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택배를 기다리는 어린왕자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우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칼럼니스트아모레퍼시픽 오설록 사업전략팀 신우철 님


# 칼럼을 시작하며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 동화 '어린왕자' 중에서 -
 안녕하세요. '디지털 심리학' 칼럼을 연재중인 신우철입니다. 세상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무엇일까요? SNS를 통한 정보의 빠른 확산, 스마트폰을 사용한 완전히 다른 개념의 서비스 창출 등 생각할 수 있는 변화들이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온라인/모바일 쇼핑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도 클릭 한번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매하다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는 하는데요.

언제나 설레는 그 분, 택배가 오셨습니다

 이처럼 온라인/모바일 쇼핑이 활성화 되면서 함께 발전해온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바로 '택배' 즉 배송인데요.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는 풍경이 우리에게 익숙해짐과 동시에 대부분의 택배 업체들은 산업의 성장과 함께 배송 속도에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아침에 주문하고 저녁에 받아보는 서비스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데요. 이러한 배송 속도와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2014년부터 시작된 쿠팡의 '로켓배송'입니다. 쿠팡의 배송이 여러 다른 서비스들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거점별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한 빠른 배송 속도를 차별점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쿠팡과 관련해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쿠팡의 정책이 이젠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쿠팡의 도전이 결국 실패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배송 속도를 높이는 시스템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 돌파구가 필요해진 로켓배송

 배송 속도와 관련된 잡음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아마존' 영국 지사는 배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배 기사들에게 '비닐 봉투에 생리 현상을 해결할 것을 강요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이슈는 아마존의 직접 지시가 아닌 하청 업체의 방침임이 밝혀지긴 했지만, 이를 보면 배송 속도를 높이는 일은 세계 최고 기업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희생이 치러져야 할 만큼 배송 속도는 '무조건 빠름'이 정답일까요? 오늘 살펴볼 연구 결과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 기대의 물질, 도파민

 지금부터 소개드릴 연구는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Sapolsky)'가 진행한 '도파민'과 관련된 연구입니다. 여기서 잠깐! 도파민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도파민은 뇌의 도파민계라 불리는 다양한 부분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인데요. 1958년 스웨덴 국립 심장 연구소(National Heart Institute)의 '아비드 칼슨(Arvid Carlsson)'과 '닐스 아케 힐랍(Nils-Ake Hillarip)'이 최초 발견했으며, 생각하기, 움직이기, 잠자기, 분위기 감지, 집중과 동기 부여, 찾기, 보상심리 등 뇌의 여러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로 밝혀졌습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도파민은 사람이 기쁨을 느끼는 것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은 당장 기쁨을 느낀다기보다는 원하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찾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즉, 당장 무언가를 먹을 때 보다 먹을 것을 찾아나서는 행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우리가 실제로 여행을 가기 전,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 사폴스키의 실험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사폴스키는 신호-누름-보상의 과정을 원숭이들에게 학습시켰습니다. 즉, 실험실 안의 램프에 불이 들어온 후(①신호), 특정 버튼을 10번 누르면(②누름), 맛있는 음식(③보상)이 나오도록 설계하고, 원숭이들이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도파민이 나오는지를 측정하였습니다. 학습된 규칙에 의해, 불빛이 들어오고 버튼을 누르면 음식이 나오는 것을 원숭이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조건을 바꿀 때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죠.
  • 원숭이가 보상을 받기 위해 버튼을 누를 때의 도파민 분비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도파민 분비는 신호가 나왔을 때부터 상승하기 시작해서, 보상을 받았을 때 완전히 종료됩니다. 이를 통해 도파민이 보상에 대한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보상을 기대하면서 보상을 받을 때까지 버튼을 누르게 하는 동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완벽히 똑같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25일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는 저의 모습이 잠깐 떠오르네요.

# '불확실성과 기대감'이 가져오는 것

 위의 첫 번째 실험에서 원숭이는 버튼 10회를 누르자마자 보상(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조건을 달리하여, 버튼 10회를 눌러도 50%의 확률로만 음식을 주었습니다. 이 경우에 도파민의 분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상이 줄어들었으니 분비도 줄어들었을까요?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도파민의 분비는 2배나 증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실험에서, 이번에는 25%, 75%의 확률로 음식을 주었습니다. 이 경우는 앞선 두 번의 실험 결과값과 비교하자면 중간치 값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 보상확률 차이에 따른 도파민 분비

 위 그래프를 얼핏 봐선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확률이 낮아질수록, 또는 높아질수록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면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할 터인데, 확률이 반반인 50%일 때 도파민 분비가 가장 많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폴스키는 이에 대해 '불확실성과 기대감'이라는 문구를 제시합니다. 즉, 원숭이가 25%의 경우에만 음식을 받았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음식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하고, 75%의 경우에 음식을 받았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음식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즉, 음식을 50%의 확률로 받을 때가 가장 예측하기 어렵고 그만큼 기대감을 크게 불러일으켰다는 것이죠.

# 기대와 온라인 쇼핑

 우리가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바로 물건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익일 특급 배송을 시킬지라도 어쨌든 기다려야 하죠. 이러한 기다림이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기다림조차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위 실험 결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디지털 도파민(Digital Dopamine)'이라는 보고서에서 '라조피시(Razorfish)'는 1,680명의 미국, 영국, 브라질 그리고 중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수행했는데요. 각국의 응답자 중 미국은 76%, 영국은 72%, 브라질은 73% 그리고 중국은 82%의 응답자가 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 보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물건이 우편으로 배송될 때 더 마음이 들뜬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심리학박사 '수잔 웨인쉔크(Susan Weinschenk)'가 실시한 온라인 쇼핑 관련 인터뷰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빠른 배송을 바라기보다는 언제 물건이 도착할지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원했고, 물건을 기다리면서 얻는 즐거움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 고객에게는 '배송'도 쇼핑 경험이다

 '물류'라는 특성상 속도가 중요시 되지만, 사실 고객들이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속도가 아니라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자 경험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온라인 쇼핑이든 오프라인 쇼핑이든 생각하는 방식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배송이 나에게 오는 과정을 내가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는 과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소문난 맛집에서는 오래 기다리더라도 '충분한 조리를 위한 과정이겠거니'라고 여긴 경험, 멀리 해외에 사는 친구가 구하기 힘든 물건을 보내줬을 때 들뜬 마음으로 기다려본 경험 등 기분 좋은 기다림의 순간들이 사우 여러분도 한번쯤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온라인 쇼핑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배송 속도'가 아니라, '내가 체감하는 상대적인 배송 속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러한 흐름에 맞춰가는 것인지 최근엔 배송과정도 하나의 'MOT(Moment of Truth)'로 보고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경우에는 '좌절 제로 포장기법(Frustration Free Package)'을 도입했는데, 기존의 빡빡한 포장을 개선해서 제조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제품을 잘 보호하면서도 쉽게 뜯을 수 있는 포장 기법이라고 합니다.

 도입부에 언급했던 쿠팡의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면, 쿠팡이 배송 속도를 높이는 점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 과정에서 만든 '쿠팡맨 제도'가 있기에 실패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쿠팡맨의 서비스를 칭찬하는 SNS 포스팅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기존의 택배사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왔으니까요.
  • 쿠팡맨에 대한 SNS포스팅


# 사막여우는 왜 3시부터 행복했을까?

 동화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는 말합니다. "어린왕자가 4시에 온다면, 여우는 3시부터 행복할 것이라고.." 굳이 도파민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온라인 쇼핑을 통해 배송의 중요성을 파헤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기대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봤던 동화처럼 매일 매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난 주에 주문한 택배를 조금 더 여유 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제발 기사님이 말없이 경비실에 그냥 두고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사우 여러분들도 기대감이 함께하는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 참고 : 본 칼럼은 '수잔 웨인쉔크(Susan Weinschenk)'의 저서 '모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사람에 대한 또 다른 100가지 사실'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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