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봄, 사랑, 벚꽃 말고 - AMORE STORIES
#이재은 님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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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봄, 사랑, 벚꽃 말고

칼럼니스트이재은 님
아모레퍼시픽 조직문화개발팀


 2018년이 낯설어 무심코 2017년이라 쓰고는 '7'을 '8'로 슬그머니 고쳐 쓰기를 반복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3월도 다 지나고 따뜻한 남쪽으로부터 봄꽃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도심 속에서 바쁜 삶을 살며 황사와 미세 먼지는 가깝고 봄꽃은 먼 생활을 하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우분들께서는 어느 노래 가사에서처럼 '봄, 사랑, 벚꽃'도 남의 얘기이며 '봄이 그렇게도 좋냐'고 반문하고 싶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어제까지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 나무에 쫑긋이 꽃망울이 지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을 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샀지만 역시 '봄이니까' 새 트렌치코트가 우리의 장바구니를 간지럽힐 때, 새 어린이집, 유치원이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울던 아이가 퇴근해 보니 꽃처럼 밝게 웃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조잘거릴 때… 분명히 봄은 매년 그렇게 우리에게 '심쿵'한 설렘을 선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일이 바쁘고 꽃구경 갈 사람이 없어도 사우 여러분의 마음을 간질여줄 '봄 그림책'을 함께 나누어볼까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바로 그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앞에서 소개한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십센치의 '봄이 좋냐', 그리고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처럼 봄만 되면 차트를 역주행하는 노래들을 '봄 캐럴'이라고 부른다면서요? 하지만 이 구역의 원조는 역시 이 노래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굳이 꼭 꽃 피는 산골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노래가 입 안을 맴도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봄 아지랑이, '울긋불긋 차리인' 봄꽃 무리가 떠오르며 마음이 따스해지실 겁니다. 이 '국민 동요'는 사실 아동문학의 거장 이원수 님이 쓰신 시에 작곡가 홍난파 님이 곡을 붙인 노래로, 이원수 님은 중학교 시절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이사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림책 <고향의 봄>은 이원수 작가 탄생 100년을 기념해 2011년 기획된 책으로, 한국적 서정을 잘 표현하기로 유명한 김동성 작가가 장장 3년간의 작업을 통해 원작 시의 감동을 그림과 함께 담아낸 명작입니다. 제가 빈약한 제 언어와 문장을 아무리 그러모아도 도저히 이 글과 그림이 함께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그림 출처 : 알라딘)

 어떠세요? 저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어린아이와 어른, 미술과 문학, 그리고 어느새 귓가에 어른거리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까지 아우르는 오감의 향연을 그림책이라는 쉽고 가까운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겨우내 지겹도록 겪은 추위와 미세 먼지, 그리고 그것들만큼이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여러 일들에 지치고 메말라간다는 느낌을 받고 계신 사우님이라면, 이 책을 통해 '고향'과 '봄'이 주는 포근한 따스함, 어린 시절 꽃길을 걸으며 느꼈던 설렘을 추억하며 이번 봄을 맞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색하는 어른들의 봄을 위하여, '마레에게 일어난 일'

 '고향의 봄'이 잊고 있던 우리의 동심을 일깨워주는 책이라면,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탄생과 성장, 늙음과 죽음 이 공존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아직 조부모를 비롯한 주위 어른들의 질병과 죽음이 낯선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흐드러지게 절정을 맞은 꽃을 보며 지는 꽃의 허무함을 함께 떠올리는 어른 독자들이 이 책이 가진 풍부한 결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말괄량이 소녀 마레와 할머니입니다. 마레처럼 과자를 먹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정원을 뛰어다니며 놀던 쾌활한 할머니는 마레의 가장 좋은 친구였지만, 어느 날 중풍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할머니는 더 이상 예전의 할머니가 아닙니다.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말도 표정도 잃은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잊고 잃어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마레와 할머니의 소통과 교감은 말과 교감을 잃었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마레는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은 물건을 만들어 할머니를 살리려 합니다. 그 덕분인지 할머니는 한 음절 한 음절씩 말을 뱉어내기 시작하지만 어른들은 아무도 그것을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레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잃었지만 할머니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마레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맙니다. 할머니는 슬픔을 말로도 표정으로도 표현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할머니의 눈빛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읽은 마레는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 손으로 할머니를 이끌고 할아버지에게 갑니다.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의 마지막을 볼 수 있게 된 할머니는 그제서야 눈물을 멈추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향해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딱 두 마디를 힘겹게 내뱉습니다. '안녕' 그리고 '과자'. 그리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엔 다시 이전과 같은 화색이 돌아옵니다.
  • (그림 출처 : 보림출판사)

 가볍지도 않고 멋을 내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스토리의 힘도 있지만, 이 책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결코 단 한 장도 무심코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오래된 물건의 콜라주나 목판과 물감, 에칭과 회화 등 여러 재료와 기법을 켜켜이 쌓아 올린 카쳐 퍼메이르의 그림은 그만큼 담고 있는 시간과 감정의 결도 깊이 있고 풍부합니다. 특히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흐드러진 벚꽃, 마레가 뛰노는 정원의 생명감은 할머니의 질병, 할아버지의 죽음과 대조를 이루며 우리 삶의 유한함,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생명과 교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두 그림책과 함께 한 '봄 그림책 산책' 어떠셨나요? 이 글을 읽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사우 여러분께서 봄의 따스함과 설렘, 또 새로운 계절의 시작과 함께 소중한 사색의 순간을 누리실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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