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닭곰탕, 골목 - AMORE STORIES
#서동현 님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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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닭곰탕, 골목

칼럼니스트서동현 님
이니스프리 TM팀


1. 봄, 토요일

 하늘이 제법 흐린데도 햇살이 자꾸만 머리를 들이밉니다. 겨울이 언제였을까요. 나른해진 눈꺼풀이 느릿느릿 오르내립니다. 졸린가 싶어 슬쩍 기대봐도, 헝클어진 잠결에 부스스 하품만 나옵니다. 3월의 어느 토요일 한복판, 그렇게 봄이 갈팡질팡 찾아왔습니다.

 옛말에 계절이 바뀐 줄도 모르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했던가요. 그래서 철없는 저는 봄기도 모른 채 허기만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슬금슬금 찾아온 배고픔과 귀찮음의 중간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데, 책장 구석에 눈길이 갔습니다. 소설가 성석제의 <소풍>이었죠. 손길 가는 대로 아무 데나 펼친 곳에서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양은 냄비에 닭 뼈를 우려낸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찢어놓은 닭고기를 넣은 뒤, 파 같은 양념을 해서 먹는데 몇몇 식탁 위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양은 냄비'란 말에 벌써 엉덩이가 들썩였습니다. 따뜻한 봄날을 핑계로 친구들을 부추겼습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회현역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자연스레 계단을 꾸불꾸불 올라서서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이름난 칼국수집 앞을 지나 길을 내려갔습니다. 어두컴컴한 골목에 들어서니 갈치 비린내가 가득합니다. 왠지 축축할 것 같은 골목 입구에 작은 간판이 하나 발그스레합니다. 가게 앞에는 커다란 유리 상자가 있고, 그 안에서 노란 닭고기를 찢고 있는 아주머니의 곱슬머리가 허옇습니다. 그 세월의 더께에서 새벽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이 어두운 골목에서 이곳만 살아서 꿈틀대는 듯했지요.

 갓 삶은 닭을 맨손으로 발라내는 것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해본 사람만 압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뜨겁지 않으세요, 물으니 식힌 거라 괜찮다 하십니다. 멋쩍어 손사래를 치시는데 손바닥이 이미 발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수십 년 해온 일이시려니 하지만, 일일이 손으로 찢고 애써 먹기 좋게 해주시려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려는데, 옆자리 아저씨들이 이상한 말을 외칩니다.
 메뉴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런 음식은 없는데,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싶었습니다. 수십 년 단골들이 쓰는 '냉수'나 '민짜' 같은 은어(隱語)가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하긴 이곳 '닭진미'가 생긴 것이 1962년이라고 하니, 50년 넘은 세월 동안 모종의 암호 같은 말들이 생긴 것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알고 보니 '뼈 빼기'는 닭다리의 뼈를 빼고 살만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다 빼기'는 '뼈 빼기'에서 닭 껍질까지 빼고 살코기로만 달라는 말이랍니다. 그것 말고도 '기름 빼기(닭 껍질만 빼고)', '파 빼기(국물에 파 넣지 말고)'도 있답니다. 음식은 고작 삶은 닭과 국물 하나인데, 이렇게 복잡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추위도 이길 겸 기름지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닭곰탕 하나가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삶처럼 오랜 세월 다채롭게 진화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새벽밥이나 점심 허기를 채우고, 저녁나절엔 삶은 닭고기에 술 한잔 할 수도 있는 전천후 음식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닭고기의 퍽퍽한 식감을 싫어해서 그냥 "껍질 많이"라고 외쳤습니다. 왠지 조곤조곤 말하면 밥을 안 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말간 국물이 담겨 왔을 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닭 뼈를 우려낸 육수 위로 닭 기름이 반, 파가 반이었습니다. 국물은 맑은 만큼 싱거웠습니다. 토렴하듯 밥을 말아 휘휘 저어봅니다. 소금과 후추를 넣을까 하다가 어울리지 않는 듯해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얇게 저민 마늘은 생각보다 매워서 하나 먹고 포기했습니다. 대신 아주머니가 꾹꾹 눌러 담은 양푼 속 깍두기로 간을 해결했습니다.

 닭고기가 졸깃하고 고소합니다. 몇 점은 양념에 찍어서 먹고, 김치에 싸서도 먹다가 참지 못하고 국물에 다 넣어버렸습니다. 따뜻한 국물에 들어간 닭고기는 이상하게 부드러웠습니다. 삼계탕이나 치킨에서 쓰는 연계(軟鷄, 어린 닭)와는 확연히 다른 맛입니다. 이 집은 1년 반쯤 된 산란계 진계(陳鷄, 묵은 닭)를 씁니다. 그래서 닭 뼈 국물이 뽀얗고 구수한 맛이 돕니다. 간혹 오래된 닭을 노계(老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고작 1년 남짓 키워놓고 '늙었다'고 표현하며 질기고 맛없을 거라고 오해하는 것은 왠지 억울합니다. 어린 닭을 끓여서는 절대 이런 국물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닭고기의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닭이 30일 정도만 키운 백세미(White Semi Broiler)이기 때문입니다. 백세미(白-semi)라는 말이 언뜻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흰색 잡종 닭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닭을 삼계(蔘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백세미를 주로 생산하는 기업들이 삼계탕 시장을 노리고 만들어낸 이름일 뿐입니다. 백세미가 시장에서 선택된 기준은 단 하나, 가격이 싸기 때문입니다. 일반 육계의 절반 가격이죠. 그래서 삼계탕집 뚝배기를 차지했고, 치킨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팔 수 있게 된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싸고 맛없는 닭을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양은 냄비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뭔가 아쉬웠지만, 뜨끈하게 배부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보양을 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오는 길에 보니 아주머니들이 노릇노릇한 닭고기를 또 찢고 있었습니다. 장갑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손끝에 김이 모락모락 했습니다. 컴컴한 골목 좁은 지붕들 사이로 봄 햇살이 노릇노릇 내려섰습니다. 또 다른 닭곰탕집을 가기 전에 소화도 시킬 겸 종로로 향했습니다.

2. 종묘와 세운상가

 서울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종묘를 손꼽습니다. 특히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를 원한다면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사이 하늘이 옅푸른 색으로 개었습니다. 구름이 천천히 휘돌아 푸른 빛깔이 더해갑니다. 잔잔하게 내려앉은 박석(薄石)들을 조용히 디뎌보니, 불규칙한 아름다움들이 발끝에 전해져 옵니다. 건축가 승효상이 '신들의 지문'이라 말했던, 그 낮은 돋을새김들입니다. 그 모습에 말이 점점 줄어들고, 발이 차츰 느려집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무심히 뻗어 내린 소나무 가지 아래로 기왓살이 가지런합니다. 길게 늘어선 정전 건물 끄트머리가 사뿐히 돌아앉았는데, 나지막이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문득 찾아든 바람이 묵직하고, 서늘한 풀 소리가 가슴께 자욱해집니다. 긴 여운이 겨울밤처럼 가라앉습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종묘를 보고 "아름다운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대가의 뜻을 올곧이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차마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광경을 만났을 때, 귀로 들어 입으로 옮길 수 없는 침묵을 접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넉넉한 오후 햇살에 나무 그림자가 구불구불 길을 더듬을 때, 빛 바랜 연분홍 담장이 흐드러지게 붉어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종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길 건너편 세운상가 경사로 광장에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해방 직전에 이곳 세운상가 자리에는 소개 공지(공습으로 인한 화재가 번지지 않게 하려고 만든 넓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조성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로는 천막집과 판자촌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세운상가 완공 후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본사가 이곳에 있었고, 10년쯤 전 현대상가가 헐린 뒤에는 잠시 논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에 이곳이 국회의사당 부지로 의논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반대해서 무산되었는데, 문화재를 아껴서가 아니라 그가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의 후손이라서 그랬다고 합니다.
  • 종묘 앞 소개 공지(1967) - 서울시 사진아카이브

 이렇게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고 있는 세운상가지만, 설계 당시에는 많은 이상을 담은 곳이었습니다. 당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때까지 생소했던 복합 주거 단지를 계획했고 그 과정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d d'Habitation)의 혁신적인 주거 공간 개념들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건물마다 옥상 정원과 공중 복도, 아트리움이 시도되었고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또 그 안에 병원, 은행, 파출소, 동사무소와 우체국 등을 배치해 건물 안의 입체 도시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실현되지 못했고, 상권 이동으로 인해 1층이 슬럼화되기까지 해서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최근에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상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세운상가를 따라 인현동 인쇄 골목 쪽으로 향했습니다.

3. 인쇄 골목 닭곰탕

 인쇄소 골목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오래된 닭곰탕집, '황평집'이 있습니다. 1970년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당시 사장님 부부의 고향인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글자를 하나씩 따서 '황평집'이라 했답니다. 지금의 주인도 그 후 20년 넘게 해왔다고 하니, 오래되긴 오래됐습니다. 이번에는 저녁 시간이니 욕심을 조금 부려 닭무침과 닭찜도 곁들여봤습니다.

 닭곰탕을 끓일 때는 마늘을 듬뿍 넣어 한 차례 끓인 후, 뼈와 살을 분리해 닭 뼈를 다시 넣고 끓이며 기름을 건져내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물이 맑고 누린내가 없다고 하지요. '황평집'에서는 닭곰탕에 간을 하지 않고 먹다가 깍두기나 마늘종을 곁들여 먹고, 마무리는 밥을 말아서 먹는 거라고 합니다.

 닭무침은 오이, 양파, 사과를 함께 무쳐서 내는데 제 입에는 좀 달았습니다. 평래옥의 덜 촉촉한 닭무침이 조금 더 제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닭찜은 남대문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잘게 찢는 과정이 없는 대신 아주 가지런하게 담아 내왔습니다.
  • '황평집'의 닭곰탕, 닭무침, 닭찜

 인현동 일대에는 인쇄소가 아주 많습니다. 인쇄 골목 인근의 지명이 주자동(鑄字洞), 필동(筆洞), 묵정동(墨井洞)인 것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인 박문국(博文局)이 있던 곳도 을지로 2가였던 걸 보면 말이죠. 1980년대에 장교동(청계천 장교빌딩, 한화빌딩 자리)에 있던 인쇄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킨 후에 더 많아졌습니다. 그 뒤로 충무로의 영화 포스터나 티켓, 각종 선거 홍보물 등을 인쇄하며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골목 안에 들어서면 종이와 잉크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남대문과 인현동의 닭곰탕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맛만 다른 게 아니라 흐름이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이곳 인현동의 닭곰탕 가게들은 문을 여는 시간이 늦습니다. 또 그릇이 크고 양이 많습니다. 닭고기를 잘게 찢어 식감을 좋게 하려는 것보다는 큼직한 고깃덩어리로 허기를 덜게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물은 좀 덜 맑고, 대신 맛이 깊고 진합니다. 게다가 남대문에 비해 음식이 나오는 속도도 빠르고, 심지어 양념장이 그릇에 붙어서 나오기도 합니다.

 인쇄 골목의 닭곰탕이 남대문과 다른 것은, 인쇄 골목 사람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새벽밥을 먹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달리, 인쇄 골목은 공장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힘쓸 일도 훨씬 많고, 사람들을 상대하기보다는 기계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밤새 인쇄기를 돌리던 시절도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닭곰탕 양이 많아지고 얼큰한 양념장이 발달한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왠지 고기가 더 많은 듯한데, 점심에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호반집' 닭곰탕 백반

 음식이 한 시대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골목 하나의 모습만으로 투영되기도 합니다. 장소라는 것이 단순히 위치나 입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맥락이 있기 마련이고, 그 흐름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목에 가득 찬 봄기운에 닭곰탕이 더 얼큰하고 뜨거워졌습니다. 시장 골목, 인쇄 골목, 닭곰탕 골목에 모두 힘이 넘치고 웃음이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국물처럼 그들의 하루가 우렁찼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골목에선가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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