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 담긴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요약해 소개합니다.
제10화. 아름다운 집념
1979년 어느 날, 용산 태평양 사옥에서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 주재의 긴급회의가 열렸습니다. 신규사업에 관한 논의가 그 주제였습니다.
"사업을 하고 싶소. 녹차 사업. 차 사업이 돈이 당장 벌리는 사업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이 사업은 돈하고 상관없이 적자가 날 것이야. 하지만 사업이 성공하면 태평양은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이미지를 얻을 것이오."
1960년 그라스를 방문했을 때 받았던 식물 재배의 감동을 가슴 깊이 심었던 서성환 님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출장을 다닐 때마다 그 나라의 식물원을 찾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식물과 자연,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의 장소를 평생 사업으로 일구고 싶어 했습니다. 세계 각국에 있는 차 문화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도 항상 아쉬워했습니다.
식물을 재배할 여러 방안을 모색하던 중 서성환 님은 그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제주 농업학교 교사 허인옥 님을 만났습니다. 허인옥 님과 함께 특용작물 재배 연구부터 차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서성환 님의 차 사업에 대한 소망은 점점 구체화 되어갔습니다.
농화학을 전공한 서항원 님을 회사 책임자로 정하고, 후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된 허인옥 님과 연락을 취해 1979년 한라산 남서쪽 중턱에서 녹차 사업의 첫 삽을 떴습니다. 돌송이차밭(구 도순다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개간은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흙 대신 돌덩이만 가득했던 황무지에서 식수도 구하기 힘들어 물탱크를 설치하기 위해 3m 깊이의 돌덩이를 손으로 부수고 땅을 파고, 퇴비를 구하기 위해 한여름에 오물 넘치는 양계장을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딛고 누런 흙으로 단장한 땅에 첫 묘목을 심을 때의 그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원 조성의 가장 큰 고비는 서광다원의 개간이었습니다. 그곳은 제주도에서 단 한 번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황무지인 '곶자왈'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상황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 전기가 들지 않아 밤이면 촛불을 켜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퇴비로 쓸 돼지 똥을 구하기 위해 아예 돼지 사육까지 해가면서 공을 들인 결과, 1983년 드디어 태평양이 스스로 개간한 다원에서 처음으로 찻잎을 수확했습니다.
녹차사업이야 말로 서성환 님의 건강한 신념과 뚝심에서 시작되고 지속할 수 있었던 문화사업이었습니다. 서성환 님에게 녹차사업은 돈 버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계승하고 싶은 우리의 '전통'이었고, 발전시키고 싶은 우리의 '문화'그 자체였습니다.
2000년 말부터 휴양 차 하와이에 머물던 서성환 님은 파인애플 박물관을 돌아보며 제주의 차밭에도 문화를 체험하고 휴식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중이신 아버지의 간곡한 의지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아차린 서경배 님은 오랜 시간 동안 흔들림 없는 열정으로 보란 듯이 녹차 사업을 일군 아버지의 소망을 꼭 이루어드리고 싶었습니다. 2001년 9월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에서 세상에 첫선을 보인 '오설록 티뮤지엄'. 서성환 님이 그렇게도 이루고 싶었던 꿈이 꽃피게 된 것입니다.
2003년 1월 9일 서성환 님은 어려운 이웃을 살펴달라는 뜻을 남기고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란 '다시 태어나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서성환 님은 지금도 또 다른 세상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