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9년 한 해 AP사우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이야기할 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인 도시와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서울은 600년 도읍으로서 무학대사가 천거해 조선의 수도로 도읍되었고'라는 식의 재미없는 글은 지양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자가용을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서 출근하는 이 공간인 바로 서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서울, 도시의 삶'을 시작합니다.
도시는 멈춰 있고 딱딱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객체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며 그 생명체 속에 또 다른 생명체들이 모여서 도시를 형성하고, 이 도시들이 모여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 속에서 고도의 혁신이 일어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과실을 가져다주는 도시는 재미있는 연구 대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제가 올 한 해 말하는 동안은 단순히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뿐 아니라 사실상 대서울이나, 서울 세력권이라고 불리는 서울 및 서울 수도권(근접 경기 지역)을 통칭해 서울로 다룰 겁니다. (김시덕 선생의 <서울선언>, 채상욱 애널리스트의 <오를 지역만 짚어주는 부동산 전략> 참고) 도시로서의 구분은 행정구역보다는 도시 안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 1910년대 용산 신도시
지금의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먼 과거까지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약 1910년까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10년 조선총독부는 서울을 중구, 종로구, 용산까지를 경성부, 즉 지금의 서울로 편성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곳이 용산 신도시입니다. 갑자기 용산 신도시라고 하니 마치 용산재개발로 탄생하는 용산 효성해링턴아파트를 말하는 것인가 헷갈리실 수 있는데요. 1910년 그 당시에도 종로구와 중구에 넘쳐나는 사람과 상업 시설 등으로 인해 당시에 외곽 지역인 용산에 계획도시인 신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거 단지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용산역 앞과 신용산 지역에 위치한 지금의 주거, 상업 단지들입니다. 세계본사로 이사하고 온 이후 주변의 '용리단길'이 매우 힙한 도시가 되었는데요. 제 칼럼 4부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다룰 내용이긴 합니다만 주로 걷기 좋은 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기 좋은 동네가 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용리단길'은 첫 번째 걷기 좋은 평지에, 두 번째로 격자형으로(바둑판 모양의 도시) 만들어진 깔끔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산역 앞의 드래곤힐 스파 옆의 동네 역시 그 당시의 신도시로 정갈하게 격자형으로 블록형 도로가 있는 주거 지역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일본인들이 용산에 거주했는가 궁금하실 텐데, 지금으로 따지면 코레일 같은 '만철공사(만주철도공사)'가 당시 용산역에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직주 근접에 맞는 주거 단지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른바 만철사택으로 불리는 주거 지역이었습니다.
서울 행정구역 변화
구 용산역사
2. 서울의 첫 번째 도시 모습을 형성하게 만든 철도(경인선, 경부선)
2019년 현재 서울 수도권 최고의 주거 단지는 단연 강남3구일 것입니다. 강남3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뜻합니다. 그리고 강남 지역을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오피스 공실률이 단 3%대에 불과한 판교(참고로 서울시의 공실률은 11.6%, 용산은 17.5%)1) 가 있습니다. 그 옆으로 배후 주거 단지인 분당이 있는데 이 지역은 2018년도 한 해 21.9% 상승(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기준)하며 전국 최고의 아파트 가격 상승폭을 보였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축을 따라 더 내려가면 경기도시공사가 분양한 신규 택지 지역으로 탄생해 신분당선 개통과 경기도청 이전 등으로 아파트 가격이 평당 3,000만 원을 돌파한 광교신도시2)가 있습니다. 모두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삼고 있는 도시로 교통의 효과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의 핵심 도시는 어디였을까요? 바로 철도 교통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경인선과 경부선이 지나가는 곳이 중심 도시였지요. 지금의 1호선이 다니는 곳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1910년 만들어진 한강철교를 건너 노량진과 영등포, 구로를 지나 하나의 노선은 제물포를 향해 가고, 다른 하나의 노선은 부산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경인선과 경부선이었지요. 바로 지금의 인천행 1호선과 천안행 1호선 라인이지요.
1) 출처 : KOSIS(국가 통계 포털 : 상권별 오피스 공실률)
2) 광교자연앤힐스테이트 109A형 기준
3. 마용성은 뭐고, 신뉴와 영등포는 뭐길래? 도시의 비가역성, 그리고 가역
당연히 1910년 이후의 경성이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산업과 인적 물적 교류가 이 철도를 타고 흐르니 이 철도 주변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례가 서울역, 용산, 노량진, 영등포, 부평, 안양 등이었습니다. 도시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번성합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심 일대와 부도심 일대는 시간이 지나고 도시가 확장될수록 외곽에 세워진 건물들이나 시설에 비해 노후화되고 그에 따라 낙후되고 슬럼화됩니다. 이를 도시의 비가역성이라고 합니다. 비가역성(irreversible)3) , 즉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이러한 비가역성으로 인해 서울역부터 출발해서 발전한 노량진, 신길, 영등포, 부평, 구로, 안양 일대는 물론 종로구와 중구의 배후 주거 지역 역할을 하던 곳들은 낙후되고 오래도록 슬럼화되어갔습니다. 이런 이미지들이 아직 5060세대에게는 강하게 남아있기에 언론에서 '마용성이 대세'라는 등의 말을 들으면 '거품이 심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길의 아파트들의 평당 가격이 3,300만 원을 돌파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이해할 수 없기도 합니다.4) 사실 상당 부분의 가격 상승 이유는 도시의 비가역성이 해소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저희가 세계본사로 이전하기 전에 근무했던 시그니쳐 캠프가 위치한 을지로/광화문/시청 일대를 CBD(Central Biz District로 뉴욕이면 맨하튼 남쪽 일대, 샌프란시스코면 유니언스퀘어, LA면 다운타운 일대, 런던이면 피카딜리 서커스 일대를 일컫는다)로 삼고 있고 그의 배후 주거 지역이 바로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였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과거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과 노무현 정부에 의해 뉴타운이라는 도시재정비사업이 만들어지고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매우 낙후된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외곽으로 사람들이 나가 살았던 것이었지요. 그 외곽이 바로 노태우 대통령의 주택 200만호 공급이라는 기치 아래 만들어진 분당/일산/평촌/산본/상동이라는 1기 신도시였고요.
3) 공간의 가치 (박성식 저)
4) 신길 래미안영등포프레비뉴
4. 뉴타운과 직주 근접, 워라밸의 시대
도시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도시의 비가역성'(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심 일대가 확장되는 도시의 외곽에 비해 더 낮고, 더 노후화되어 있는 것이고 이는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지 않는 이상 되돌릴 수 없기에 비가역성이라고 한다는 뜻), 바로 이 비가역성(irreversible)을 되돌려(가역, reverse) 좋은 환경으로 개선되자 구도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집니다. 요즘 말로 입지 가치에 상품 가치가 더해지니 인기가 좋아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 시작된 사업들이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며 도심 회귀 현상이 일어납니다. 바로 직주 근접과 워라밸 추구로 다시 구도심으로 회귀한다는 것인데요.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를 하던 시대에 뉴욕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은 더 이상 낙후된 할렘이나 브루클린에서 살 필요 없이 넓은 교외인 외곽 지역의 뉴저지로 나갑니다. 뉴저지에서 아빠 1명만 하루에 3~4시간가량 출퇴근에 시간을 들이면 나머지 가족 3명 이상은 매우 깨끗하고 녹지가 많은 지역에서 안락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198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수도권에서도 나타났지요. 그 덕에 2006년 버블 시대에 버블 세븐이라는 지역에 당당히 분당/일산/평촌/용인 등이 이름을 올린 것이지요.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1인 가구, 딩크(DINK)족, 맞벌이 그리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욜로(YOLO)와 워라밸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직주 근접(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워야 한다)이라는 시대가 도래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요? 1시간 반을 달려 퇴근 후 집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 도심 지역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도심 회귀 현상입니다. 이것과 맞물려 2004년에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제일 먼저 길음, 왕십리, 은평 뉴타운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체가 2010년 초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마래푸(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왕십리 센트라스, 텐즈힐의 시대가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5. 서울의 힘(메갈로폴리스, 도시의 힘)
서울이라는 도시는 지방의 소도시나 전원도시와 비교할 때 늘 시끄럽고, 번잡하고 교통체증이 심한 스트레스 등의 혼잡 비용이 큰 도시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버드대학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왜 도시가 인간에게 유익한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구 100만 명이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소규모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에 비해 평균 50% 이상 생산성이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근로자들의 교육, 경험, 종사 산업이 같다고 비교해도 높다는 것인데요. 심지어 평균적으로 어떤 국가이건 도시 인구의 비중이 10% 증가할 때, 해당 국가의 1인당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집적 이익이라는 클러스터 효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혁신 방법을 고민하고 더 많은 기회를 공유함에 따라 성장이 촉진된다는 것인데 바로 세계본사의 설계 의도가 이 도시가 주는 집적 이익(소통의 증가에 비례하는 혁신의 촉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재들이 단절된 공간에 동떨어져서 통신 장비 등으로만 소통할 때보다 직접 대면하고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하고 그를 통해 부수적인 기회들을 창출할 때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도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세계본사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도시 기준으로 GDP가 7,793억 달러에5) 이르며 세계 4위의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매우 큰 도시입니다. 이런 성과가 해방 이후 불과 70년 만에 나타났다는 것은 인구의 절반이 서울 수도권에 몰려 사는 효과가 발현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5) financeonline.com (1위 도쿄, 2위 뉴욕, 3위 LA)
오늘은 서울(대서울 혹은 서울 세력권)이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여섯 번에 걸쳐 이야기하게 될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 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칼럼을 쓰고자 합니다. 다음은 '강남의 탄생' 편을 기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칼럼을 읽으며 궁금하신 내용은 댓글이나 이메일로 문의해주시면 저 역시 공부해서 더 좋은 칼럼을 작성하는데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서울뿐 아니라 거주하고 계신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리는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