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한, 페르시안들의 영원한 라라랜드 - AMORE STORIES
#2017 도시 혜초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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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한, 페르시안들의 영원한 라라랜드

혜초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안녕하세요. 테헤란 도시 혜초 김태현입니다.7월의 뜨겁고 강렬했던 태양을 뒤로 하고 테헤란의 8월은 다소 그 기세가 누그러지고 저녁 8시 반을 넘겨야 넘어가던 해도 이제는 많이 짧아졌습니다. 오늘로 혜초 생활 100일을 맞이한 시점에서 그 동안 테헤란 시내를 참 많이도 누볐던 것 같습니다. 이곳의 주요 교통수단인 현지 우버 snapp으로 이동한 거리만 무려 2,447km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란에서 가장 도시화되고 발달된 테헤란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란의 찬란했던 옛 모습을 느껴보고 싶다'

 사실 테헤란을 대표하는 명소를 꼽으라면 밀라드 타워나 보르제 아자디(아자디 타워), 골레스탄 궁전 등 여려 명소들이 있지만 대부분 현대적인 건축물이고 도시는 이미 높은 빌딩들로 가득 차 있어 중동의 옛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하여 이란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도시인 이스파한을 탐방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란은 미국과 영국인들의 비자발급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어(특이사유 허용)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 계열 국민들이며, 이들 대부분은 테헤란보다 문화와 유적이 가득한 이스파한이나 쉬라즈를 방문합니다.(테헤란 시내에는 정말 외국인이 많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금번 답사를 통해 다시 한번 이란이라는 국가에 큰 매력을 느꼈고, 비록 방문하기 쉽진 않지만 누구나 한번만 방문해본다면 그 동안 이란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스파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ity of Army

 보통 어떤 도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을 때 도시 이름의 어원을 확인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파한 이름의 어원에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는데 몇몇 개인 인터넷 블로그에는 '세계의 절반'(네스페자한, Nesf-e-Jahan)으로 소개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16세기 이스파한을 여행한 레니에(Renier)라는 프랑스 시인이 이맘 광장을 보고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라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정설은 그리스어인 아스바다나(Asbadana),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세파한(Sepahan, 세파흐의 복수 표현)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는데 세파흐(Sepah)는 페르시아어로 '군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군대들의 집결 장소'라는 뜻이며 이후 이 것이 이스파한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외세에 수많은 침략을 받음에 따라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군인들이 집결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들이 도시의 어원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스파한은 종종 Isfahan, Esfahan 등 앞 글자가 혼용되어 사용되는데 영어식 표현은 Isfahan, 페르시아식 표현은 Esfahan입니다.


History of Esfahan

 17세기 페르시아 여행기를 저술한 샤르단은 당시 이스파한에 관하여 '인구 100만명, 모스크 160개, 학교 48개, 여관 1,800여 개, 목욕탕이 273개에 달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만큼 이스파한은 당대 최고의 상업도시를 지향하고 풍요로운 도시환경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이스파한은 아랍과 투르크(티무르), 몽골(칭기즈칸) 등으로부터 900년 동안 지배를 받은 식민의 역사가 서린 도시입니다.
 이후 재건된 페르시아 제국인 사파비 왕조(1502~1736)에 의해 도시가 재건되었는데요. 참고로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를 국교로 삼았고 그때부터 페르시아는 중동 지역과 이슬람 세계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되어 현대 신정국가인 이란의 원형이 됐습니다.
 재건된 도시를 화려하게 꽃 피워준 결정적인 계기는 사파비조 제 5대왕 압바스 1세였습니다. 압바스 대제는 이스파한으로 수도로 옮기면서 전 세계의 장인과 예술가를 불러모았고, 이스파한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라는 천명을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이스파한은 제국의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로서 급속하게 발전을 이루었고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문화 유적들은 이 시기에 건설이 된 것입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침략당하고(1720년), 카자르조(1779~1925)에 의해 테헤란으로 수도가 이전되면서 도시 발전이 크게 저하되었지만, 아직도 카펫(직조), 피혁, 자기, 향료 등의 주요 산지로 유명하며 옛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어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 도시입니다.

# 이스파한 답사의 시작

생각보다 쾌적한 버스 여행

  • 테헤란 Beyhaghi 버스 터미널의 모습

  • 버스 탑승 후 배부해 준 간식

 아침 7시 30분에 예약해둔 이스파한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시각 기상해서 터미널로 향합니다. 이른 시각이지만 금요일이라 그런지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이란은 금요일이 공식 휴무일이고, 목요일이 semi 휴일입니다.)
 자! 이제 버스에 탑승을 하고 출발합니다. 하지만 6시간의 탑승 시간과 곧 창밖을 가득 채우는 황무지를 계속 보고 있으니 30분이 채 되지 않아 설레는 마음이 다소 지루해집니다. 이런 고객들을 마음을 아는지 버스에는 좌석마다 마침 게임기가 달려있고 간식도 배부해 줍니다. 사실 이 점이 가장 흥미로웠던 점인데 6시간을 이동하는 버스 편도 티켓 가격이 33만 리얄(한화 1만1천원)에 불과한데 간식까지 줍니다. 아무리 유류비가 저렴하다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운행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일반 주유소 1L 휘발유 가격 약 300원)
  • (좌)버스 개인 좌석에 달려있는 게임
    (가운데)잠시 들른 휴게소
    (우)도시를 경유할 때 빼놓고 창 밖 풍경을 항상 채우는 황무지들

 사진으로 보이는 황무지 사진이 이동 시간 중 창 밖 풍경의 90%를 차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잠시 휴게소에 정차 후 다시 세시간 정도 황무지를 지나다 보면 드디어 목적지인 이스파한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스파한의 첫 인상

  • 대부분 낮은 건물로 도시가 이루어진 이스파한

  • 테헤란과 다르게 길가 곳곳 녹음으로 가득 차 있는 이스파한

 정확하게 출발한지 6시간이 지나면 황무지가 가득하던 바깥 풍경에 조금씩 초록색들이 채워지고, 균일한 크기로 지어진 황토색 건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다소 지루했던 여행객들의 눈에 다시 호기심을 불어 넣습니다. 테헤란의 회색빛 고층 건물들과 다르게 이스파한의 건물들은 대부분 황토색의 2~3층 건물들이며 길가에는 가로수 행렬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차분한 느낌과 무엇인가 신비한 느낌이 감도는 이스파한의 첫 인상.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를 여행하게 된 기분이 시내를 지나오며 뇌리를 스칩니다.(마치 서울에서 경주를 찾아간 느낌과 유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내 문화유적지 탐방을 시작합니다.

# 동에는 '베르사유', 서에는 '이스파한'

이맘 광장

  • 이스파한의 자연사 박물관

  • 쿠란의 한 구절
    (쿠란에 대한 지속적인 암송을 강조한 구절)

 이제 숙소를 나와 이맘 광장을 향합니다. 태양이 유난히 따갑지만 수많은 가로수길 아래 그늘로 향하면 그나마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칠 수 있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특이한 사인들이 보입니다. 이는 쿠란의 구절을 하나하나 프린팅해 놓은 것인데요. 언뜻 보아도 꽤 긴 울타리 같은데 정성스럽게 걸어놓은 것을 보면 이란인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과 사람들에게 종교 의식을 장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략 15분쯤 걷다 보면 이맘 광장에 도착합니다. 개인적으로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만큼 엄청나게 광활한 크기의 광장이 펼쳐집니다. 광장 중간 중간은 간결하게 다듬어진 조경 시설로 가득하고 나들이를 나온 이란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길이 512m와 너비 163m의 이맘 광장은 실제로 중국 천안문 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라고 합니니다. 위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① 동쪽으론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Sheikh Lotfollah Mosque)
    ② 서쪽에는 알리카푸 궁전(Ali Qapu Palace)
    ③ 남쪽은 이맘 모스크(Imam Mosque)

 페르시아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는 이 광장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원래 폴로경기를 위한 잔디 광장이었는데 중간에 분수를 설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초 광장의 이름을 '낙쉐 자한'(세상의 본래 모습)으로 지었을 만큼 16세기 당시 이란인들이 상상한 천국의 모습을 지상에 구현한 아주 소중하고 위대한 공간입니다.

※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폴로'라는 운동은 페르시아에서 유래되어 서유럽으로 전파된 스포츠입니다.


  • 이맘 광장에서 폴로 경기 행사를 하는 모습

① 이맘 모스크(Imam Mosque)

 광장 중앙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그 끝에서 이맘 모스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광장의 중심이 되는 모스크인 만큼 그 정문에서부터 위용이 대단합니다. 약 1,800만 장의 벽돌과 47만 2,500장의 타일로 장식했다는 페르시아 건축의 걸작 이맘 모스크는 또한 '블루 모스크', '왕의 모스크'라고도 불립니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천국의 낙원을 묘사하려고 했던 당대 이란인들의 열망을 드러내듯 환상적인 문양과 평화로운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모스크를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경건해지는 듯 합니다.
  • 이맘 모스크 전경

  • 이맘 모스크 정문 모습으로 화려한 문양과 푸른 빛감, 정교하게 조각된 성문을 보고 있으면 절로 숙연해집니다.

 약간의 입장료(약 만원)를 내고 내부로 입장하면 또 하나의 작은 광장과 예배당을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속적인 보수 공사 탓에 내부 정리가 다소 어수선한데요.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서 쏟아질 듯한 아라베스크(아랍인이 창안한 장식무늬로 식물의 줄기/잎을 도안화하여 기하학 무늬로 배합한 것) 문양으로 가득 찬 벽면과 천정을 보면서 감탄을 멈출 수 가 없습니다.
  • (좌)일반 시민들이 생명의 근원인 물(성수)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한 곳
    (우)예배당 내 14개 계단, 이슬람교의 위대한 14인을 기린 제단
    (하)이란인이 묘사한 천국의 모습. 노란색 = 태양 / 초록색 = 나무&식물 / 파란색 = 물

 이 사원의 특징은 예배당이 모스크의 정문에서 조금 비스듬히 건설된 것인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예배당은 메카를 향해 지어져야 한다는 원칙과 이맘 광장의 균형미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커다란 천장의 돔을 발견 할 수 있는데, 바깥 돔은 54m, 안쪽 돔은 38m의 에코 시스템으로 설계해 돔 사이의 공간의 울림을 통해 멀리 있는 신자들까지 예배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특히 사진에 표시된 검은 바닥 안에서 소리를 내면 일곱번의 메아리가 울린다고 하는데 실제로 해보니 유사한 숫자의 메아리가 웅장하면서 끝은 청아하게 예배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 (좌)실제 이맘 모스크 예배당과 정문의 방향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예배당 천정 모습 / 엄청난 높이에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우)예배당 벽변을 가득 메운 아라베스크 문양 / 바닥 내 검정 부분에 서서 소리를 내면 메아리가 온몸을 울립니다.

 이 밖에도 예배당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정원들과 작지 않은 광장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건축물 내부에 평화로운 천국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고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여 당대 이란인들의 지상 낙원을 만들고자 했던 열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②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Sheik Lotfollah Mosque)

  • 맞은편 알리카푸 궁전에서 찍은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

 이제 예배당을 나와 광장 동쪽에 자리잡은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로 향합니다. 일단 규모면에서 이맘 모스크보다 아담하지만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이맘 모스크가 서민들의 사원이라면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는 왕족만을 위해 지은 모스크입니다. 따라서 외관을 보면 정문에 커다란 첨탑이 없습니다. 이는 왕실 전용이기 때문에 예배 시간을 대중들에게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좌, 가운데)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 내부 예배당 모습 / 화려한 활금빛 문양으로 천장을 장식했습니다.
    (우)벽면을 둘러싼 코일형태의 아치문 장식

 예배당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또한 이맘 모스크와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맘 모스크의 노란색 배경보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황금빛으로 전체적인 톤을 맞춰 격조 높은 분위기를 완성하여 아담하지만 왕족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③ 알리카푸 궁전(Ali Qapu Palace)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를 나오면 정면에 바로 알리카푸 궁전이 보입니다. 아직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가운데 많은 이란인들이 중앙 광장에 마련된 분수대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어린 아이들이 수영을 하거나 분수대에서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며 누구나 이렇게 차별없이 신성한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한것이 이 광장을 건설한 모든 페르시아인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 알리 카푸 궁전 맨 상층부에 자리잡은 음악 감상실
    천장

  • 음악 감상실 안내문

  • 탁 트인 전경으로 내려다 보이는 이맘 모스크

  • 커다란 발코니를 18개의 나무 기둥을 통해 시야를 확보하고 있으며 정면은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의 모습

 평화로운 풍경을 뒤로 하고 알리 카푸 궁전에 들어왔습니다. '숭고한 문'이라는 뜻의 알리 카푸 궁전은 왕이 귀빈을 맞이하고 폴로 경기를 관람하거나 음악을 감상하던 공간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모스크와는 다르게 광장을 향하고 있는 커다란 발코니가 있습니다. 이곳에 서면 정말 드넓은 광장이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시야가 탁 트여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긴 나무 기둥이 18개가 있고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또한 한 층 위로 올라가면 아담한 공간이 나오는데 바로 왕의 음악 감상실이라고 합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벽면에 파여진 여러가지 문양의 공간에 중국의 청화 백자를 넣어 장식품으로 썼다고 하니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박물관과 음악 감상실이 합쳐진 하나의 문화공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④ 케이샤리예 바자르(Quyesarriyeh Bazaar)

  • (좌상)이맘 광장을 둘러싼 아케이드에는 상점들이 가득 입점해 있습니다.
    (우상)바자르 실내 모습
    (하)전통 아라베스크 문양을 형상화하여 구리판 위에 덧칠한 접시

 이맘 광장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광장을 둘러싼 2층으로 된 아케이드에 자리 잡은 케이샤리예 바자르입니다. 이곳에서 주로 판매되는 물품들은 카펫, 화려한 문양의 접시(자기, 구리 접시 판에 문양을 새겨 넣은 접시들)가 메인 품목이며, 기타 유아용 장난감과 미니어쳐입니다. 이곳은 폴로 경기를 관람하러 오거나 예배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서던 시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스파한에서 생산되는 실크 카펫과 접시류들이 이란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어 이곳에 관광을 온 많은 사람들이 구매한다고 합니다.

시오세 폴 다리(Si-o-she Pol Bridge)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리가 위치한 엥겔랍 스퀘어까지 내려오니 서서히 석양빛을 품은 시오세 폴 다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석양빛에 비친 다리는 황금빛을 내뿜고 있어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 석양빛에 비친 시오세 폴 다리

  • 2010년 대 이전 자얀데 강이 흐르는 시오세 폴 다리 전경

  • 많은 시민들이 다리를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 시오세 폴 다리 야경 전경

 사진으로 보이는 시오세 폴 다리 밑으로는 이란의 대표적인 산맥인 자그로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자얀데(Zayandeh)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중 시오세 폴은 가장 긴 다리로 33개(페르시아어로 33를 시오세로 부릅니다.)의 아치로 이루어 있어 이스파한의 남북을 이어주는 대표적인 다리이며 강물에 비친 다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초반 강 상류에 지어진 댐과 기본적으로 수자원이 부족한 이란의 여러 도시들이 물길을 내어 자얀데 강을 수자원으로 활용하면서 현재는 안타깝게도 바짝 말라있는 상태인데요. 다리의 존재만으로도 고대 페르시아인들의 건축학 기술과 유려한 교량 디자인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에 가슴 벅찬 경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마치며…

 사실 이란을 떠올리면 축구나 핵무기 등으로 인해 폐쇄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100일이라는 기간 동안 도시화된 수도 테헤란과 문화 유적의 도시인 이스파한을 오가며 만났던 수많은 낯선 이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아저씨는 이스파한을 떠나기 전 우연히 만난 분인데 끊임없이 자신의 나라에 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간단한 간식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비록 많은 곳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 기본적으로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호의를 베푸는 나라의 시민들을 만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방국가들에 의한 지속적인 각종 제제, 정치적 압박, 테러단체인 IS(이슬람국가)로 대표되는 무슬림의 이미지, 그리고 수많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제작, 배포되어 이란에 씌워지는 부정적인 프레임은 어쩌면 이란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 역학관계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순 없지만 최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이란이 발전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도 '진짜' 이란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겠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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