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더 기억나는 30년의 맛
왕복 10차로의 쭉 뻗은 대로 양옆으로, 점심시간이면 수많은 직장인들의 발길이 파도처럼 몰려든다. 그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용산수림식당을 찾는다.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파란 바탕의 빨간 글씨 간판에 한 번, 속이 편해지는 집밥 같은 맛에 또 한 번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대표 메뉴는 비법 육수로 감칠맛이 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김치찌개, 큼직한 계란말이 그리고 양푼에 푸짐하게 끓여낸 닭볶음탕이다. 어머니 이수월, 아들 고동현 두 사장님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다.
숲의 나무처럼 많은 손님이 찾아준 30년
원래 이름이 용산수림식당이었나요?
아들 수림식당이었는데, 검색하면 같은 상호명이 많아서 앞에 ‘용산’을 붙였습니다. 용산 토박이고 용산에서 장사한 지 30년 되었으니 붙여도 되겠다 싶어서요.
엄마 사람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수림이라는 딸이 있어서 지은 게 아니고, 제 이름도 수림이가 아니고요. (웃음) 나무 수(樹)에 수풀 림(林)으로, 손님이 숲의 나무처럼 빽빽하게 들어오라고 이름 짓는 분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올해가 30주년인데, 이름 덕인지 지금까지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30년이나 됐군요. 축하 드려요.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셨네요.
엄마 처음부터 이 자리에서 한 건 아니에요. 처음엔 국제빌딩 앞 신용산시장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했어요. 그 시장 골목에 포장마차가 쭉 있었거든요. 95년 5월에 첫 장사를 했는데 아직도 그 시절이 눈에 선해요. 재밌고 즐겁게 했어요. 거기서 제법 잘 되었는데 10년쯤 지나 재개발을 하면서 옮겨 가야 했죠.
아들 그렇게 옮긴 자리가 다시 재개발되면서 2019년에 이곳으로 왔어요. 당시에 지하에서 운영했는데 홀이 꽤 넓었어요. 지금 50여 평인데 사이즈가 비슷했죠. 재개발로 인근 상인이 모두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머니가 지금 이 자리를 보고 바로 계약을 해서 지금까지 왔어요.
2층인데 한눈에 마음에 드셨다는 게 좀 신기하네요.
엄마 어디서 하든 단골들이 와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1층 공실은 규모가 다 작아서 이곳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포장마차 할 때 손님들이 못 드시고 가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기껏 찾아주셨는데 대접 못하고 보내드리는 게 싫어서 식당을 하면 꼭 넓게 할 거라고 다짐했거든요.
아들 아모레퍼시픽 직원 분들을 비롯해서 단골 분들이 저희 ‘빽’이죠. 옮기고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도 어려움 없이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포장마차 시절의 메뉴를 그대로 가져오신 건가요? 그때도 김치찌개를 하셨는지.
엄마 그때는 술안주류를 많이 했어요. 지금 그 중 남아 있는 게 계란말이와 주꾸미볶음 같은 것들인데요. 포장마차를 접고 식당을 차리면서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많은 지역이니까 집밥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구를 많이 했죠.
아들 당시에 어머니께서 육수 연구를 엄청하셨다고 해요. 제가 초등학생 때였는데, 인근 상인 분이 슬쩍 물어보시길래 자랑삼아 육수 내는 재료를 읊었어요. 우리 엄마가 연구해서 만든 육수에 이런 게 들어간다고 아는 척 하고 싶었던 거죠. 나중에 부모님께 엄청 꾸지람 들었어요. (웃음)
어떤 육수인지 궁금하지만 비법이라니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용산수림식당 육수의 특징은 얘기해 주실 수 있죠?
엄마 우리 김치찌개는 시원한 맛이 나요.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로 김치찌개 먹을 때 고민하는 게 입 안이 텁텁해진다는 거잖아요. 그걸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나도록 육수 개발을 했죠. 실제로 질리지 않고 개운해서 자꾸 찾게 된다는 단골이 많아요.
아들 그 비법은 아무도 모르고 저만 압니다. 대를 이은 비법이에요.
2대가 함께 맛을 내다
그럼 육수 연구할 때 초등학생이었다던 아드님은 언제부터 함께 하셨나요?
엄마 얘가 검증된 전문 조리사예요. 내가 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해보겠다고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웠어요.
아들 제가 83년 생인데요.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포장마차로 음식 장사를 시작하셨어요. 그때 엄마 왜 하셨죠?
엄마 아이들 아빠가 개인택시를 했는데 저도 일해서 손을 좀 보태고 싶었어요.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친정엄마가 워낙 손맛이 좋은 분이고 제가 그걸 닮았어요. 요리에 자신도 있고 해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돈을 벌어보자 해서 음식장사로 결정한 거예요.
아들 그 손맛을 제가 닮은 건지 저도 진로 고민을 하는데 요리가 하고 싶더라고요. 부모님께 요리 직업반이 있는 직업학교에 가겠다고 했죠. 어머니가 처음엔 엄청 반대하셨어요.
엄마 대학가야지 무슨 소리냐고 했죠. 즐겁게 하는 일이지만 또 한편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아들은 다른 일을 하길 바랐어요.
그래도 부모님을 잘 설득하셨나봐요.
아들 정말 간절했거든요. 그때는 요리 교육이 요즘 같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유튜브나 이런 것도 없었고요.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려면 학교를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고집을 부리니까 어머니께서 져주셨죠.
해보니 어떻던가요?
아들 천직이더라고요. 직업학교 나와서 군대도 취사병으로 다녀오고, 아쉬워서 전문대 조리학과에 들어가서 배우고 호텔에도 있고, 일식집에서도 일했어요.
엄마 전문적으로 공부 많이 했죠.
두 분이 본격적으로 함께 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아들 이 전에 있던 곳이 규모가 꽤 컸는데 손님도 많고 어머니 혼자 경영이 어려웠어요. 사람을 둔다고 해도 관리가 만만치 않고 힘들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도와야겠다 싶어서 들어왔죠. 제가 큰 업장을 경험하면서 익힌 시스템을 많이 적용했어요. 그렇게 자리를 잡아 나갔습니다.
엄마 저희는 김치가 중요해서 일주일에 세 번씩 김치를 담가요. 한 달에 거의 100포기를 담그죠. 이것도 각자 역할을 분배해 다 시스템화 되어서 크게 힘들지 않아요. 처음엔 아들하고 부대끼기도 했는데 서로 양보하면서 맞춰갔어요. 우리 아들, 27살에 가출도 했었어요.
아들 손님 응대나 음식 준비과정이나 제가 배운 것과 다르니까 답답하더라고요. 부모님은 원래 하시던 습관을 포기 못하시고, 내가 포기해야 하나 싶고. 답답한 마음에 사촌네 집에 갔다가 사흘만에 왔어요. 하필 복날 전에 집을 나가서 계속 걱정이 되는 거예요. 복날 바쁠텐데 엄마 혼자 어쩌나 하는 마음에 금방 돌아왔죠.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그걸 계기로 서로 믿고 양보하면서 좋아졌어요.
서로 윈윈 함께 성장하는 한강대로 사람들
통증 없는 성장은 없다잖아요. 긴 시간 한강대로 직장인들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는데, 한강대로의 변화를 다 아시겠어요.
엄마 태평양화학 빨간 건물일 때부터 알죠. (웃음) 그때는 태평양이었어요. 옛 기억 때문인지 가끔 불쑥 태평양이라고 하는데 아모레퍼시픽 직원분들이 오랜만에 들어본다면서 반가워하세요. 빨간 건물이 지금 또 멋진 건물로 바뀌었잖아요. 잘 되는 모습 보면 제 일처럼 좋아요.
아들 용산에서 식당을 하고 있고 또 저희가 용산 토박이라 더 반가워요. 우리 지역이 같이 발전하는 거니까요.
용산수림식당 하시면서 언제가 가장 보람 있으셨어요?
아들 콕 집어서 언제라고 하기보다 손님들이 다시 찾아주실 때 보람 있어요. 우리 맛을 알아주시는 구나 하는 마음이 들죠. 영화배우 조진웅 님이 저희 단골인데 처음에 조용히 드시고 가셨어요. 조진웅 님인줄도 몰랐죠. 그런데 매번 사람을 바꿔가면서 오시는 거예요. 이 동네 사시는데 가족과도 오시고, 방송국 관계자나 매니저분들과도 오시고요. 맛있으니까 소개해주시는 거겠죠?
엄마 요새는 외국 분들도 종종 오세요. 어디서 봤다면서 본토 김치찌개를 먹어보고 싶었다고요. 신기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김치찌개 맛을 알린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단골 중에 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엄마 많죠.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와주는 분도 계시고요. 직장인 분들은 부서 바뀔 때마다 일부러 우리 가게에서 회식하는 분도 계시고요. 직장을 옮긴 후에 찾아주는 분들도 계세요.
아들 연말이면 반가운 얼굴들 많이 뵙는데요. 아모레퍼시픽 뿐 아니라 근방에서 직장생활 하고 퇴직하신 분들이 연말 모임을 일부러 저희 가게에서 하시거든요. 서로 반가워서 인사나누고 왁자해지죠. 저 초등학교 때부터 뵙던 분도 오시고,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엄청 놀라세요. 먼 친척 같은느낌이죠.
엄마 아모레퍼시픽 직원 분들 중에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오시는 분들 계세요. 늘 반가워요.
김치찌개 외에도 메뉴가 다양해요.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뭔가요?
엄마 점심 장사만 하는 게 아니라 저녁 장사도 하니까 회식 하거나, 술 한 잔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안주류도 준비해뒀어요. 제가 포장마차 하면서 인기 있던 것들 계속 하고 있죠. 그 중 계란말이는 그때도 지금도 인기입니다.
아들 어머니가 90년대 중반에 두툼한 계란말이를 하셨으니까 아마 거의 최초일 거예요.
엄마 푸짐하게 드시면 좋잖아요. 계란을 조금씩 더 넣어서 말았더니 두껍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또 저희 인기 메뉴 중 하나는 닭볶음탕이에요. 우리 아들이 요즘 스타일로 양푼에 담아서 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내서 시작했는데 대박을 쳤죠. 그 다음부터는 아들이 메뉴 만든다고 하면 무조건 오케이에요.
아들 얼마 전에 점심 셋트를 만들었는데 부모님께 칭찬받았어요. (웃음) 이제 메뉴를 더 늘리지 않으려고요. 어머니는 좀 더 늘리고 싶어하시는데, 이미 충분히 많고 있는 메뉴를 제대로 서비스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도와주시고, 제 아내도 돕고 일하는 분 두어 분과 함께 하고 있는데,이게 다 지금 메뉴에 최적화된 시스템이거든요.
앞으로 용산수림식당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길 바라시나요?
엄마 우리 손주가 관심이 많아요. 아들이 할 때는 반대를 했는데, 요즘은 세상이 바뀌고 해서인지 손주에게 비법을 전수해줘도 좋겠다 싶어요. (웃음) 손주 덕에 3대째 이어오는 김치찌개 맛집이 될 수도 있겠죠. 꼭 그렇지 않아도 오래도록 매일 힘들게 일하는 직장인 분들께 편안한 집밥 같은 음식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아들 저희 엄마가 지역 부녀회도 하시고, 주민자치위원도 하시면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세요. 오늘도 아모레퍼시픽 뒤 한마음공원에서 닭손질 하고 오셨더라고요. 사랑의 밥차에서 삼계탕 준비한다고요. 용산은 서울에서도 특히 사람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웃간의 정도 있고 봉사하고 서로 위하는 마음도 있고요.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해서 용산에 있는 회사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하고 더불어 저희도 그 길에 함께 갔으면 해요. 우리는 계속 이 자리에 있을 테니까요, 아모레퍼시픽 직원분들 많이 찾아주세요.
Information
용산수림식당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콘텐츠 제작 가야미디어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전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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