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을 영원한 기억으로
신용산 주민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가족 사진이라면, 아마 십중팔구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올해로 개업 6년 차, 신용산을 대표하는 사진관으로 자리매김 중인 감나무 사진관의 김혜정 대표를 아모레 스토리가 만났다.
감나무 사진관 앞에서 김혜정 대표
그 시절 ‘사진 잘 찍는 애’, 돌고 돌아 덕업일치를 하기까지
감나무 사진관을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에서는 도예를 전공했어요. 도예가가 꿈은 아니었고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수능 점수에 맞춰서 과를 선택한 거죠. 재미는 있었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았어요. 대학 다니는 4년 내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결국 졸업 후 진로를 바꿔서 인테리어 회사에 지원했어요. 색감을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했고, 어릴 때부터 공간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경력도 없었지만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셨어요. 좋은 선배들을 잘 만나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성과를 냈어요. 실력을 인정받아 작은 부서지만 팀장이 되어 팀을 꾸려나가기도 했죠. 그렇게 10년 정도 일하다가 퇴사를 결심했어요.
퇴사는 왜 하셨나요?
첫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몸이 너무 힘들었어요. 통근하는 게 고역이었죠.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까 쉬고 싶기도 했고요. 잠시 휴식기를 갖고 다시 일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자 기존 클라이언트들에게 작업 의뢰가 오더라고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프리랜서로 일했어요. 힘들었던 통근을 안 해도 되고, 회사 다닐 때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었어요. 한동안은 ‘프리랜서 정말 좋구나,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게 착각이었어요. 점점 도태되는 걸 느꼈거든요. 현업에 있으면 내 의지가 아니어도 트렌드를 접할 기회가 많잖아요. 하다못해 점심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업계 현황에 대한 업데이트가 되죠. 그런데 혼자 일하다 보니 뒤처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더 전투적으로 일하기에는 육아와 병행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고요. 이대로는 젊은 친구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죠.
감나무 사진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러던 와중에 삼각지 쪽 건물 인테리어 작업을 하게 됐어요. 1층은 카페, 2층은 음식점으로 된 건물이었는데 3층에 옥탑방이 있었어요. 클라이언트가 옥탑방 뷰가 너무 좋아서 창고로 쓰기엔 아깝다고, 혹시 작업 공간이 필요하면 저렴하게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던 터라 고민을 했죠. 그런데 주변 사람들 90%가 반대하는 거예요.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지인들도 모두 반대했어요. 당시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 아이가 4살이었어요. 한창 부모 손이 많이 갈 시기인데 무슨 사업이냐고요. 그때 유일하게 지지해 준 사람이 남편이에요. 이렇게 감각이 있는 사람인데 집에서만 일하는 건 아깝다고,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보라고 응원해 줬어요. 남편의 응원에 용기가 생겼고, 주변 반대가 심하니까 살짝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이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사진관’이 떠올랐죠.
왜 ‘사진관’이었나요?
제가 워낙 ‘사진 덕후’였어요. 제가 어릴 때는 필름 카메라 시대였어요. 어딜 가나 항상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요. 필름은 비싸니까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찍어야 하잖아요. 한 장을 찍어도 구도를 생각하면서, 피사체에 온 애정을 담아 찍었어요. 찍고 나서는 일일이 사진을 스캔해서 색감 보정을 했어요. 그렇게 싸이월드에 올리면 반응이 뜨거웠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늘 ‘사진 잘 찍는 애’로 통했죠.
또, 저희 시댁이 진주에서 조그만 사진관을 운영하셨어요. 명절에 가면 조금씩 일을 도와드렸는데, 시골의 동네 사진관이니 사진을 찍고 바로 프린트하잖아요. 프린트하기 전에 포토샵으로 보정을 해서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사진관이라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진 것 같아요.
‘나는 사진 전공자가 아닌데..’ 하는 부담은 없으셨는지?
당연히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무모했는지(웃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카메라 수동 모드를 겨우 다룰 줄 알고, 조명도 어떻게 치는지 몰랐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의문이었죠. 그런데 저는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생기는 그 떨림을 좋아해요. 생각해 보니 만약 망한다고 해도 나 혼자 부끄러운 것 말고는 문제 될 게 없더라고요. 직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금이 큰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느 정도 부담이 있긴 했지만, 크게 두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진로를 바꾼 것에 대한 후회는 없으세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이전에 했던 일들과 아예 무관하지 않더라고요. 도예과에서는 대중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선의 안목을 키울 수 있었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배운 기술과 감각을 통해 공간을 기획할 수 있었죠. 그 어떤 경험도 쓸모 없지 않다는 것, 무용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세 평짜리 옥탑방에서, 감나무 뻗어나가다
당시 감나무 사진관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3층 옥탑방의 세 평짜리 공간이었어요. 거기서 사진관을 하려니까 반대가 더 심했죠. 옥탑방이라 간판을 올릴 수도 없는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사진을 찍겠냐고요. 그때 희망을 준 것도 아모레퍼시픽이에요. 주변에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아모레퍼시픽 건물만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거든요. 이듬해 3월에 다시 신사옥 입주를 앞두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건물 공사가 끝나는 시점도 3월이라, 예감이 좋았어요. 아모레퍼시픽처럼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이 들어오면 용산에 새바람을 일으킬 거라 확신했죠.
초창기 감나무 사진관
사진관 이름을 ‘감나무 사진관’으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건물에 있던 음식점 이름이 ‘카키바움’이었어요. 독일어로 ‘감나무’라는 말이에요. 50년 된 주택을 개조한 건물이었는데, 감나무 두 그루가 크게 있었거든요. 감나무가 상징적이라고 여겨져서 음식점 인테리어도 감색과 녹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했죠. 자연스럽게 사진관 이름도 ‘감나무 사진관’이라고 짓게 됐어요. 작고 소박한 공간이라 화려하고 세련된 영어 이름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로고도 5분 만에 만들었어요. 마당에 떨어진 감 꼭지를 위에서 바라보니 꼭 꽃처럼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네모난 프레임 안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모습을 감 꼭지 모양으로 표현했죠.
감 꼭지에서 영감을 얻은 감나무 사진관 로고
시작하고 반응은 어땠나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어요. 정식 오픈 전에 조명을 세팅하는 날이었는데, 아랫층 카페에 오셨던 아모레퍼시픽 직원 두 분이 ‘여긴 뭐하는 곳이지?’ 하면서 와보신 거예요. 제가 원래는 굉장히 외향적인 편인데, 처음 손님이 오니까 너무 떨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마침 엄마가 와계셨는데 제가 쭈뼛대고 있으니, 그 분들의 손을 잡고 주변에 소문 좀 내달라고 부탁하시는 거예요. 엄마의 진심이 통했던 건지, 그분들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시겠다고 했어요. 오픈 이벤트로 만들어둔 가격 할인 쿠폰을 그날 바로 사내게시판에 올려주셨고, 그걸 계기로 예약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초기 고객 거의 대부분이 아모레 고객님들이었죠.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이 몰리니, 초반엔 부족한 점 투성이었어요. 고객님들을 테스트 삼아(웃음) 시행착오를 겪으며 미흡한 점들을 하나둘 보완해나갔죠. 감나무 사진관은 아모레퍼시픽 고객님들과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만들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요?
저도 그게 참 신기해요. 그런데 지금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기술적으로는 부족하지만 굉장히 정겨워요. 고객님들의 표정이 굉장히 편안하거든요. 사진 찍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진은 표정이 전부예요. 크고 화려한 스튜디오에서는 조금 압도되는 게 있잖아요. 작은 공간에서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예쁜 구석이 있다
심플한 배경에 인물 위주의 사진관 컨셉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배경이 너무 화려하거나 인물 주변에 아이템이 많은 것을 선호하지 않아요.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거든요. 분명 제 취향과 같은 고객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깔끔한 배경에 인물 위주로 표정을 살려서 찍기로 했죠.
당시 이렇게 인물 위주로 찍는 사진관들이 많이 있었나요?
깔끔하게 인물 위주로 찍는 흑백 사진관들이 몇 군데 있긴 했어요. 그 외에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운영하는 스튜디오들이 많았어요. 엄마 만삭 사진부터 아이 돌 사진까지 찍는 패키지가 대표적인데, 굉장히 고가였어요. 원본을 사려면 추가로 돈을 내야 했고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조금 더 편하게 접근 가능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사진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관을 시작하면서 제가 그 시장을 개척해보기로 했죠. 웨딩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웨딩’이라는 말이 붙으면 왜 더 비싸지는 건지 늘 의문이었어요. 감나무 사진관에서는 웨딩사진도 커플 사진 가격에 똑같이 촬영하고 있어요. 가격이 저렴하니까 ‘양심 사진관’, ‘착한 사진관’이라고 불러주시기도 해요. 그럴 때면 제가 느낀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한 노력이 고객들의 마음에 가닿은 것 같아 뿌듯하죠.
감나무 사진관의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촬영과 보정, 인화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요. 촬영은 되도록 짧게 하려고 해요.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면 바로 촬영을 끊죠. 오래 찍을수록 지쳐서 표정이 더 안 나오거든요. 그러고 나서는 같이 사진을 고르고 보정을 하는데 그 과정이 또 재미있어요. 결과물을 바로 받아 가실 수 있고요. 고객들에게 사진 찍는 경험이 유쾌하고 재미있게 기억되길 바라요. 특히 아이들에게 ‘사진관은 재밌는 곳, 사진관은 노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최대한 짧고 즐겁게 촬영하려고 하죠.
표정이 굳을 때는 어떤 식으로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도하세요?
사진관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상당히 긴장을 하고 오세요. 제가 ‘아줌마’잖아요. 특유의 친화력으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말을 건네고 웃어드리면 고객님들 표정도 한결 자연스러워져요. 충분히 멋진 외모인데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모든 사람에겐 다 저마다의 예쁜 구석이 있거든요. 촬영하면서 그 부분을 계속 칭찬해 드리면 고객님도 자신감이 생겨서 더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시죠. 고객을 예쁘게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즐겁게 활영 중인 김혜정 대표
단골들이 매년 감나무 사진관을 찾는 이유
감나무 사진관은 단골이 많기로 유명한데요, 사진관에 단골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처음엔 커플사진 찍으러 오셨다가 결혼사진을 찍고 만삭사진을 찍고 아이와 함께 백일사진, 돌사진을 찍으러 다시 오세요. 그 후에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처럼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오시고요. 저도 매년 찾아주시는 게 신기해서 여쭤보니, 이걸 안 하면 올해 숙제를 안 한 기분이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진을 남기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요.
그런 고객님들을 보며 가족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문화가 더욱 보편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가격을 최대한 대중적인 선에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대가족이 오셔서 ‘가족 사진은 비싸서 여태 못 찍었는데 처음으로 찍어요.’하실 때 정말 뿌듯하죠. 온 가족이 모여 사진 한 장 남기는 것, 너무나 의미 있지만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고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아보실 수 있게 본질 강화에 힘을 쓰고 있어요.
고객 응대가 힘든 적은 없었나요?
저는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이 많이 없어요. 아주 가끔 힘들게 하는 고객이 있을 땐, 그 이유를 고객이 아닌 내 안에서 찾아보려고 해요. ‘정말 잘못된 게 무엇일까? 본질적인 부분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해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제가 한 단계 성장해있더라고요. 그런데 힘든 고객은 1%고, 99%의 고객들은 에너지를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들이에요. 특히 아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진짜 큰 행복이에요. 아이들은 정말 무해하거든요. 아이들이 빵긋빵긋 웃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이 안돼요. 울면 우는 대로 예쁘고요. 작은 생명이 주는 힘이 정말 커요. 그래서 직업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감나무 사진관의 기록들
신용산점으로 이사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간이 작아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제약도 많았어요. 대가족 사진도 찍고 싶고, 전신 사진도 찍고 싶었거든요. 단골 고객님들은 늘 같은 배경에서 찍는 것 같아서 죄송했고요. 공간을 확장하고는 싶었지만, 이 지역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3년 만에 지금 이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어요. 여기 올 때만해도 노포거리 같은 느낌의 조용한 골목이었거든요. 손님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점점 ‘용리단길’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며 젊은 층의 유입이 늘었고 워크인으로 방문하는 고객들도 많아졌어요.
감나무 사진관 신용산 본점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육아를 하며 사업을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이 전쟁 같았죠. 하지만 일에 욕심이 있는 편이라 힘들어도 계속 육아와 일을 병행했어요. 프리랜서였을 땐 육아 도우미를 옆에 두고 집에서 일했고, 사진관을 개업하고 나서는 매일 터지는 돌발 상황 속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느라 발을 동동거렸죠. 단 하루도 순탄한 날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느덧 아이가 자립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 시기까지만 양육을 거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잘 버텨내면, 일하며 육아를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지는 날이 올 거예요.
엄마가 일을 한다고 해서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희 아이들은 제가 일을 함으로써, 자기주도적으로 자랄 수 있었어요. 일하는 엄마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요. 엄마가 일을 하며 생기는 결핍이 아이에게 선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많은 걱정과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시면 좋겠어요.
경력단절이 두려운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저도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에서 나오면서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그래서 취미생활이든, 아르바이트든, 프리랜서든, 어떤 형태로든 업계에 발을 담가 놓으려고 했어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 다행히 퇴사를 하고도 저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현업에 있는 분들과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을 수 있었죠. 이건 저만의 철학인데, 내가 잘 되려면 주변 사람들이 잘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가 잘 되길 바라야 하고, 더 나아가 상대가 잘 되도록 내가 도와줘야 하죠. 그렇게 계속 덕을 쌓으면 언젠가는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생각지도 않은 인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이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거죠.
감사하는 마음으로,감나무 사진관
일하면서 번아웃 같은 건 없으셨어요?
번아웃이 온 적은 없었어요. 하루 18시간 일할 때도 있고, 밤을 새울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일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아마 제 마음속에 항상 감사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긴 시간을 돌아왔을 구불구불한 길일지도 모르는데, 저는 그 길을 미끄럼틀 타듯이 쉽게 왔잖아요. 거저 받은 행운이나 다름없는데, 불평불만하면 안 된다는 마음,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신기하게도 ‘감나무 사진관’을 줄이면 ‘감사’예요.
대표님에게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모레퍼시픽 건물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센세이션 했어요. 건물을 지나갈 때면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하기도 했죠. 그게 불과 7년 전인데,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할 기회가 왔다는 것만으로 큰 영광이에요. 감나무 사진관이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해주신 게 아모레예요.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할 정도로 의미가 크죠.
아모레퍼시픽 직원들만의 특징이 있다면?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친절하세요. 고객으로 오신 건데도 서비스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밖에서 누굴 만나든 잠재적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대하거든요. 아모레퍼시픽 고객님들에게도 기본적으로 그런 태도가 배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만나면 늘 기분이 좋죠.
앞으로 어떻게 감나무 사진관을 발전시키고 싶으신지요?
저희 직원이 7명인데, 직원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저는 제가 원하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잘 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직원들이 잘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함께해 준 직원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지점을 더 늘려서 직원들이 하나씩 맡아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향후 10년의 목표예요. 본점이 용산구에서 잘한 것처럼, 2호점인 필동점도 단단하게 자리매김했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고객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감나무 사진관 10주년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고객님들은 10년 동안의 자신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고, 저희는 10년의 여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4년 남았네요.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객들과 소통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감나무 사진관 신용산 본점
epilogue
셔터를 누를 때마다 행복한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는다. 사진을 찍는 김혜정 대표를 보며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는 사진사가 꼭 마법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그가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행복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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