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그룹의 9월 - AMORE STORIES
#역사속오늘
20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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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그룹의 9월

아모레퍼시픽그룹 역사 속 사건들을 월별 정리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모든 성공에는 두근거리는 시작점이 있습니다. 첫걸음을 떼며 나아가는 출발의 순간, 우리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수많은 꿈을 그립니다. 회사를 창업해 원대한 꿈을 펼쳐나가고, 새로운 판매 방식과 서비스 제도를 도입해 세상을 놀라게 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9월. 초록빛 과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이 시기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세계로 전파할 준비를 차근히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꿈의 씨앗을 틔워서 알곡을 맺기까지 다방면으로 열정을 기울였던 뜻깊은 9월의 이야기를 되새겨봅니다.

1945년 9월 5일,
태평양화학공업사 창업

 1945년 9월 4일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군은 강제 징집되어 끌려온 조선인 청년들을 해방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끌려갔던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과 조선인 청년들은 고향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없었고, 어떻게든 스스로 돌아갈 방편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튿날인 1945년 9월 5일, 서성환 님은 베이징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날 그가 본 것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드넓은 세상이었습니다. 창성상점으로부터 가업이 시작된 지 십수 년이 흐른 후지만 훗날 회사의 시작을 이날로 정한 것은 진정한 자유의 햇살을 되찾은 그 날이 서성환 님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내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성환 님은 강제징용에 끌려간 후 13개월 만에 다시 개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고향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서성환 님의 꿈만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생존이 삶의 목표였던 시대에 서성환 님은 세계로 나가 동백기름과 조선의 화장품을 팔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물건이 모두 모여들고 각 나라 상인들이 오가던 중국의 시장과 세계에 대해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창성상점 간판이 내려지고 새 간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태평양상회'. 태평양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였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47년, 태평양상회 식구들은 개성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좋은 원료를 구해서 좋은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면 서울로 와야만 했습니다. 서성환 님과 가족들은 남대문시장 인근 가옥에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해방 이후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서성환 님은 '믿을 수 있는 원료만 쓴다'는 원칙에 따라 최고의 원료를 확보해 최고의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이러한 품질제일주의 정신은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모레퍼시픽그룹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영철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64년 9월,
방문판매제도 도입

 공들여 만든 좋은 제품을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할 방법을 찾던 서성환 님은 1962년 3월, 국내 최초의 유통 전문회사인 태평양판매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지정판매소를 모집했습니다. 지정판매소에서 오직 태평양 제품만 정찰제로 판매하자 모조품 걱정이나 가격 때문에 일어나던 시비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정판매소는 약국이나 고급 의상실 등에서 화장품 판매를 부업으로 운영하다 보니 제품 관리가 허술해 결국 지정판매소 제도를 중단했습니다.

 새로운 판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서성환 님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웃들이 찾아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의 공간처럼 여성들이 안방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화장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제품을 선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방문판매제도가 시작됐습니다.

 1964년 마침내 방문판매 사업이 시작되면서 수천 명의 여성이 초록색 제복을 입고 방문판매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방문판매원들은 특약점에 모여 피부 정보와 마사지 방법, 메이크업 기술 등을 전수받은 후 아모레 로고가 새겨진 가방 안에 제품과 스크랩북, 상품 견본을 챙겨 고객을 만나러 거리로 나갔습니다. 방문판매원은 전국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농촌은 물론 주민이 그리 많지 않은 섬마을에도 판매원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1970년대에 방문판매제도가 정착되자, 방문판매원이 집에 오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고객들의 행복한 기대감도 늘었습니다. 아모레 방문판매원과 그들이 전하는 품질 좋은 제품과 함께 아름다운 일상의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아모레 방문판매제도와 함께 고객의 삶도, 방문판매원의 삶도 더욱더 아름다워졌습니다.

1993년 9월,
무한책임주의 선언

 1993년 48주년 창립기념일에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태평양 모든 임직원이 한없는 책임을 진다는 '무한책임주의'를 대내외에 선포했습니다. 고객 지향적인 체질 강화를 통해 고객이 최고로 신뢰하는 기업이 된다는 궁극적인 목표도 세웠습니다. 최고의 기술 확보와 시장 밀착 경영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품질 높게 생산해 신속히 공급하고자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구축해나갔습니다. 클레임 처리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은 범위까지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만족을 넘어선 기쁨을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또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이 고객 손을 떠날 때까지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무한책임주의의 일환인 '쓰던 화장품 바꿔주기 캠페인'이 시행되자, 3일 동안 전국 아모레 고객 서비스 센터를 찾은 고객 수는 4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쓰던 화장품뿐만 아니라 분첩, 섀도 팁 같은 화장 도구도 무상으로 제공하자, 작지만 세심한 배려에 고객들은 기뻐했습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무한책임주의는 서비스, 품질, 환경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입장에서 되짚어보며 더 강력한 프로세스와 혁신 작업을 추진하게 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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