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전략팀은 지난해 아모레퍼시픽 디자인 조직이 디자인 센터로 통합되면서 새롭게 신설된 부서인데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디자인 센터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일입니다. 또한, 예산과 인사 관련 업무도 담당하며 아모레퍼시픽의 디자이너들이 보다 업무에 몰입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업무 환경과 인프라를 조성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디자인 센터 전략 개발과 디자인 선행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여했던 모든 프로젝트가 소중해서 어느 것 하나를 쉽게 꼽을 수가 없는데요. 설화수 브랜드를 처음 담당하게 되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이미 고객의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라 시작하기도 전에 그 중요도와 무게감에 겁부터 났었는데, 막상 해보니 놀랍도록 편안한 기분이 들었었어요. 제 전공이 한국화였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죠. 마치 회화 작업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디자인을 진행했었는데 덕분에 대학 졸업 후 잊고 지내던 한국화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프레시팝 론칭도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입니다. 신규 브랜드 개발인 만큼 브랜드 콘셉트부터 BI(Brand Identity) 개발, 패키지 디자인, 생산 등 디자이너가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걸쳐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일정이 여유롭지 못해 힘들기도 했었지만 프레시팝 론칭 프로젝트를 해낸 이후에는 그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져도 무서울 것이 없더라고요. 여러모로 저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제품 디자인 개발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디자인 콘셉트 단계, 두 번째 디자인 개발 단계, 세 번째 디자인 결정 단계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제품 생산과 출시 단계인데요. 저는 이 중 첫 번째 디자인 콘셉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콘셉트 단계에서 마케터와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품의 개발 배경이 무엇인지, 시장 상황은 어떤지, 내용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개발자가 특별히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등 궁금한 내용은 남김없이 묻고 같이 의논하려고 해요. 제품 디자인은 팀 작업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개인의 영감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의 소통과 협력에서 나오죠.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저는 제품의 콘셉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마케터 역시 디자이너의 생각과 의도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거든요. 충분히 고민하고 소통하여 디자인 콘셉트가 나왔다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쉬워요. 어떤 때에는 1차 디자인 공유회에서 최종 디자인이 결정될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아, 그럴 때는 정말 짜릿하죠.
그만큼 디자인 초기 단계에 시간을 충분히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개발 일정이 촉박해 이를 맞추기 위해 정신 없을 때도 많긴 하지만요.
어느 날 제 두 딸을 목욕시키는데 제가 디자인한 바디워시와 샴푸를 사용하며 "이거 엄마가 디자인한 거야"라고 무심결에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굉장히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좀 묘했어요. 입꼬리가 쓱 올라가는 기분이랄까요?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피어올랐어요.
그날 이후에 화장품 매장에 가면 아이들이 먼저 제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알아보고는 "저거 엄마가 한 거다!, 이것도 엄마가 한 거다!"라고 소리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쑥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자이너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인을 하다가 뭔가 복잡해지면 꼭 떠올리는 말이 있어요. '좋은 것은 반드시 있다.'
이 말은 무인양품의 디자인 어드바이저인 후카사와 나오토가 한 말인데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디자이너로서의 고민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대게 디자인은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생각해보면 디자인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다른 이도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좋다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결국 좋은 디자인이라는 것도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답이 없다고 생각될 때,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있기 때문에 답 또한 반드시 있어'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고, 좀 더 여유를 갖고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