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세 줄의 일기를 쓴다. 첫 번째 줄은 그 전날의 가장 안 좋았던 일을, 두 번째 줄은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일을 쓴다. 마지막 줄은 그날 하루의 각오로 마무리한다. 길어야 5분, 바쁠 때는 1분이면 쓸 수 있는 분량이라 부담도 없다. 그렇게 5년간 예닐곱 권의 노트를 써오던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써왔던 세 가지 주제의 글들을 엑셀로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다음의 두 가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내게 에너지를 주는 것들, 반대로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것들을 더 자주, 더 오래 반복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것이 내 삶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에 '스몰 스텝'이란 이름을 붙이고 매일 실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개 되지 않던 목록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록들을 엑셀로 정리해 '스몰 스텝 플래너'를 만들었다. 물론 그 실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첫 번째 스몰 스텝은 역시 세 줄 일기다. 그 다음에는 성경 한 장을 읽고 영어 단어 다섯 개를 외운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앱은 엄선된 다섯 개의 단어와 발음, 그리고 학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쪽지 시험까지 제공한다. 이 작은 습관이 3년을 넘어가자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6개월 전 일본어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중국 출장을 다녀온 3개월 전부터는 중국어 단어를 다섯 개씩 외우기 시작했다. 한글 맞춤법은 영어 단어와 함께 시작해 매일 10개 씩을 앱을 통해 학습하고 있다. 그 결과 웬만한 생활영어는 번역된 내용을 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용기를 얻은 나는 TED 동영상을 자막 없이 보기 시작했고, 급기야 영화 한 편을 통째로 도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차곡차곡 쌓이는 영어 실력이 뿌듯한 자신감과 자존감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영어의 재미를 스스로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스몰 스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부자리부터 정리하는 습관이 생겨났고, 하루에 한 장씩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내 얼굴을 기록한 후부터는 내 표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는데도 무표정한 모습이 찍힐 때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나를 객관화해서 본다는 것의 유익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매일 반복해서 듣는 팟캐스트는 십여 개를 넘어섰고, 매일 관심 분야의 뉴스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그 뉴스의 목록이 수만 개에 이르자 글을 쓰는 내 일의 효율이 확연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글쓰기 창고가 생긴 셈이었는데, 이는 수많은 글쓰기의 달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글쓰기 스킬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칼럼니스트들의 글을 매일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 목록이 이제 400여 개에 이른다. 약속 시각 10분 전 도착을 스몰 스텝으로 정한 이후론 미팅이나 모임에 지각하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나는 점점 이 스몰 스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내용들을 브런치라는 블로그 서비스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어느 글은 무려 13만여 명이 보고 갔고 수천 명의 사람이 이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글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의뢰였다. 결국 책은 출간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강의 요청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평소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만남이 나의 일로 연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강의료가 인세를 넘어선 것도 반가운 일이었으나 더 많은 기회와 사람들로 연결되는 그 과정이 내게는 마법처럼 여겨졌다.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스몰 스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록들은 여전히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을 바꾸기 위해 버스 기사님에게 인사하는 스몰 스텝을 추가했다. 건강을 위해 하루 다섯 잔의 물 마시기를 추가했다. 집안일 함께하기라는 목록을 넣어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주 작고 사소한 이런 반복의 결과는 놀라웠다. 그 변화는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이 느끼고 있었다. 내 주변에 건강한 에너지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스몰 스텝이 혹시 '강박'의 결과는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매일 기록하고 있는 스몰 스텝 플래너를 보여준다. 서른 개에 이르는 목록들 가운데 내가 매일 실천하는 것은 절반을 조금 넘는다. 강박처럼 매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목록에 올려두고 일주일 동안 실천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삭제했다.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목록은 5분에서 10분을 넘기지 않는 것들이다. 일상에 무리를 주는 것은 스몰 스텝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반복하는 것은 내게 재미와 유익을 주는 것들이며 나도 모르게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것들을 실천하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내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스몰 스텝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스몰 스텝이란 말은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책의 내용 중에서 따온 것이다. UCLA 의대 교수인 로버트 마우어는 초고도 비만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일화를 책에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운동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결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할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은 제안을 환자에게 한다. 거창한 운동 말고 매일 TV 앞에서 1분간만 걸어 보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한 달 후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의 몸무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놀라운 변화가 한 가지 있었다. 이 환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의사에게 던진 것이다.
"하루에 1분씩 더 할 수 있는 게 뭐 또 없을까요?"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 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였다. 아주 작고 사소한 습관은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의 뇌를 속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이것이 작심삼일의 결과를 낳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스몰 스텝이라는 아주 작은 변화는 뇌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가 조금 더 큰 변화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결과는 놀랍기 그지없다. 이러한 스몰 스텝이 기업 경영으로 옮겨가면 린(Lean) 방식의 경영이 되고,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방법론이 되고, 소프트웨어 개발에선 애자일(Agile) 방식이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들을 실험해본 후에 더 큰 변화와 혁신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억지스럽지 않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준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는 더 큰 변화로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자신을 바꾸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조직도 바꾸고 기업을 바꾸고 시장을 바꿀 수 있다.
스몰 스텝은 아주 작고 사소한 습관을 일상에 녹여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변화시킨다. 그래서 요즘도 새벽 5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세 줄 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부자리를 개고 성경 한 장을 읽는다. 영어단어 다섯 개, 일어와 중국어 단어 다섯 개씩을 외우고 셀카를 찍는다. 이 작은 변화가 나를 바꾸어 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유익할 뿐 아니라 즐겁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