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인상, Spb - AMORE STORIES
#2019 도시 혜초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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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인상, Spb


 안녕하세요. Здравствуйте(즈뜨라스부이쩨).해가 밤 늦게까지 지지 않는 백야가 찾아오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인사 드립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어로는 Санкт-Петербург(상트-빼쩨르부르그)로, 현지에서는 줄여서 '빼쩨르부르그' 또는 '빼쩨르'라고 부릅니다. 혹은 영어 이름인 Saint Petersburg의 철자를 따서 'Spb'라고도 하는데, 이 약자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많이 사용합니다(이하 빼쩨르). 수도인 모스크바와는 714Km, 고속 열차인 삽산으로 약 4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곳은 러시아의 제2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곳은 모스크바가 수도로 정해지기 이전, 200년 동안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의 슬픈 전쟁과 혁명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물론, 600개가 넘는 극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저는 이번 칼럼을 통해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받은 첫인상을 빼쩨르의 도시 약자인 Spb(Story, People, Beauty)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는 앞으로 제가 혜초로서 집중 탐구해나갈 주제들이기도 한데요. 지금은 단편 조각에 불가하지만, 더욱 심화시켜 러시아인과 뷰티 시장을 깊이 이해하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좌)316년전 이 도시를 건설했던 표트르 대제의 동상 / (우)도시의 약자(Spb)의 러시아 원어 버전



Story : 5월의 레닌 그라드 이야기

제2차 세계 대전의 상처가 가장 많이 남은 도시

 5월은 이곳에서 가장 큰 국경일이 있는 뜻깊은 기간입니다. 1945년 5월 9일,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인데요. 넵스키 대로의 큰 퍼레이드에 이어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행렬이 겨울 궁전 광장 앞까지 이어졌습니다.
  • (좌)전승기념일 군사퍼레이드 / (우)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장미꽃 더미 – 넵스키 대로

 하지만 이날은 승리와 동시에, 전쟁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러시아인의 슬픈 추모일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체 사망자 약 6,000만 명 중 45%에 해당하는 2,660만 명이 러시아인이었습니다.

 International 모임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Marina는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만이 희생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전쟁 당시 현재 빼쩨르(소련 시절 도시 이름 '레닌그라드')는 도시 전체가 독일군에게 900일이나 포위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굶주림으로 시민들의 숨통을 끊고, 폭격으로 지도상의 흔적을 없애라'는 엄청난 명령과 함께 근 3년 동안 10만 7,158발의 공중 폭격과 14만 8,478발의 포탄을 가했습니다. 이는 매일 300발의 포탄이 도시로 떨어졌던 셈입니다.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도시를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긴 포위 기간 동안 시민 150만 명 중 70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묘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고, 견디다 못해 1942년 2월 한달에만 600명 이상이 인육 섭취로 체포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 통 속에서도 빼쩨르 시민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독일의 포위망을 뚫고 전달한 악보로 죽어가던 연주자들을 되살리며 목숨을 걸고 초연한 음악, 이곡이 바로 세계적인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 그라드>입니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이기도 하지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 죽음과 공포까지 뛰어넘는 이러한 태도야 말로 러시아와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단면입니다.

 그때 희생당한 이들은 빼쩨르 시민들의 아버지, 어머니 등 가족이었고 친구였습니다. 2019년 5월 9일, 오늘의 젊은 이들은 전쟁으로 희생당한 자신들의 할아버지 사진과 빨간 장미꽃을 들고 넵스키 대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쓰러져 갔던 가족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은 슬프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전쟁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지나간 시간만이 아닌 이들에게 살아있는 기억이자 모두의 역사입니다.
  • (좌)전승기념일, 희생당한 가족들 사진을 들고 행렬하는 러시아 시민들 - 넵스키 대로 / (우)전승기념일 - 궁전 광장 앞



People : 러시아 사람과 기질

러시안 스마일

 러시아인의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웃음기 하나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털모자를 쓴 채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러시안 스마일(Russian Smil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실제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많이 웃지 않습니다. 매장이나 식당에서도 웃음기 없이 인사를 하고, 낯선 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Small talk 문화도 사실 많지 않습니다. 이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러시아 속담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웃음은 바보의 증거'라는 말인데요. 역사적으로 외부 침략을 자주 받아 낯선 이들을 경계해야 했고, 한때는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던 러시아의 배경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생존을 위해 투쟁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볼 때 너무 많이 웃으면 아첨을 하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인이 불친절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이들은 웃음기 없이도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길을 헤매고 있으면 여러 명이(무뚝뚝한 얼굴로) 다가와 쿨하게 도움을 주고 떠납니다.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외국인이 서투른 러시아어를 도전하거나 조금 낯이 익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시베리아 겨울처럼 차가웠던 그들의 표정에도 미소가 번지며, 비용을 깎아주려고 한다거나 추운 날씨에 실내복만 입고 나와 길을 같이 찾아주기도 합니다. 즉, 러시아 사람들은 이유가 있을 때 친구와 가족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활짝 웃는 사람들입니다.
  • (좌)러시안 스마일에 대한 설명그림 / (우)러시아인 Anna와


거침없고 직설적인 자기 표현

 러시안 스마일에서 본 것처럼,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성향이 있습니다. 간혹 자기들끼리 길에서 시비가 붙은 경우도 있고, 특히 운전할 때 거친 모습을 목격하기도 하는데요. 매장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이러한 면모를 확실히 느낀 또다른 순간이 있습니다. 러시아인들과 저녁 식사 중 대화 화제가 갑자기 우크라이나 사태로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Marina의 동료이자 이 모임 멤버 중 우크라이나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평소 러시아인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불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 우크라이나 직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 러시아인이 아픈 모습을 보는게 좋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식사 자리에 있던 러시아 친구들이 계속 사용했던 영어 대신 러시아로 격분하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격앙되었습니다. 사실 러시아 친구들이 먼저 시작한 화제였습니다만 평온했던 이들이 갑자기 거칠고 직설적으로 변하는 기질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 이러한 역사 이슈는 처음 만나는 러시아인과는 대화하기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 러시아인 직장인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빼쩨르 사람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나라, 러시아 중에서도 빼쩨르 시민들은 어떻게 다를까요? 러시아인들 말에 따르면, 모스코비치(모스크바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지향적으로 커리어 개발에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반면, 빼쩨르 사람들은 더 여유롭고 느슨한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빼쩨르 지역 고용주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스크바는 러시아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선입견이 없지만, 빼쩨르는 토박이도 많고 지리적 위치상 서유럽과도 근접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중요하게 물어본다고 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인인에게도 '(여기서 태어난) 러시아인이 맞느냐'라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러시아는 주변 CIS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물론 타타르인 등 170여 개가 넘는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여기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한 한인 교민분들에 따르면, 사실 이곳 빼제르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Beauty : 러시아인의 뷰티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라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러시아인들은 투쟁과 같았던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미(美)를 추구해왔습니다. 이 주제는 제가 앞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만큼 방대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첫인상 위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인들은 남다른 심미학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시당하던 목조 건축의 기술을 활용해 눈이 와도 쌓이지 않는 양파 모양의 돔 형태를 선보여 기술을 한층 끌어올렸고, 루브르 박물관(40만 점)보다 7배가 넘는 작품을 보유한 에르미타주 박물관(300만 점)에서는 서양 미술사뿐 만 아니라 이집트부터 시작하는 문명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약탈이 아닌 순수 수집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층 더 인정 받고 있지요.

 이탈리아에서 기원해 프랑스에서 꽃피운 발레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발레의 대표 작품입니다. 실제 오늘날 빼쩨르의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Vaganova Ballet Academy)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 학교로 손꼽힙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로 대표되는 대문호와 푸쉬킨, 투르게네프와 같은 위대한 시인은 모두 러시아인이며,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 등 위대한 음악가와 스타니슬랍스키라는 세계적인 연출가도 이곳 러시아 출신입니다.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회화 작품 <아홉번째 파도(The Ninth Wave)>의 선원들처럼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예술에서 희망을 찾는 휴머니즘, 현실적 낭만주의는 러시아인들의 높은 심미안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합니다.
  • (좌)러시아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피의 구세주 성당 / (우)아이바좁스키의 회화 작품 <아홉번째 파도> - 러시아 박물관

 이렇게 예술에 대한 높은 수준과 자존심을 가진 러시아인들에게 뷰티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여기에서 만난 여성 중 10%는 화장품에 관심이 많음은 물론 '한국 화장품 덕후'였고, 60%는 기본적인 구색을 갖추고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30% 정도는 뷰티나 화장품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 깊이 조사하겠지만, '화장품 고관여자'와 아닌 사람들의 차이가 우리나라보다 큰 것 같습니다. 예컨대 립스틱까지 다 바르고 사우나와 수영장을 가는 여성(특히 할머니 연령대도 많습니다.)들도 있는가 하면, 관심이 없는 이들은 물로만 대충 세수하고 스킨케어 제품도 바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경제와 소득 수준 및 라이프 스타일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러시아인 상당수는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아 상대적으로 중저가 가격대의 화장품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현지 화장품 매장 체인인 빠드루쉬까(Подружка)와 슈퍼마켓을 방문했을 때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 L사의 제품이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것 보다 상당히 저가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러시아인 Anna는 이 L사 제품이 저렴한 이유는 Made in Russia이기 때문이고, 차라리 Made in Korea인 퀄리티 좋은 한국 제품을 선호한다고 귀뜸했습니다.
  • 러시아인 Anna와 Polina가 직접 찍어서 보내준 본인이 최근 쓰고 만족했던 스킨케어 제품들

 러시아인들은 건조하고 추운 기후 때문인지 안티에이징은 물론 고보습 제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조한 여름 특성상 눈가에 아이크림을 많이 발라도 잔주름이 해결이 되지 않아, 저가의 레티놀 제품을 사서 발랐다가 피부 이상을 겪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얼굴 전체에 펄을 뿌린 과감한 메이크업을 한 여성을 볼 수 있고, 네일은 컬러를 칠하지 않은 여성보다 칠한 여성이 훨씬 많을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 빼쩨르 Stokmann 백화점 내 Asian Cosmetic 코너와 Erborian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 고객의 모습

 러시아인으로부터 들은 흥미로웠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주관적일 수 있지만, 러시아인들이 수입품과 향수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과거에는 체제 특성상 소수의 러시아 사람들만이 수입품과 향수를 향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진 후, 일반 대중들도 그런 제품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고,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브랜드 향수를 선호하며 심지어 가짜 제품들이 넵스키 대로에 버젓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요. 이쯤 되면 뷰티를 추구하는 마음은 사람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좌) 코트라 제공 19년 4월 기준 주요 품목별 대러 수출 통계 / (우)인스타그램에서 러시아어로 '한국 화장품' 검색한 결과 화면

 그렇다면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요? 일단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이란 나라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친구 Casha는 저를 처음 본 순간 한국 사람임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오일리(Oily) 하지 않고 광이 나는 메이크업이 딱 'Кореянка (까레얀까-러시아어로 한국여자) 스타일'이라고요. 인스타그램에도 'Корейская косметика(한국 화장품)'라는 러시아어 태그로 194만 개의 컨텐츠가 조회(광고 포함)되고, 시내는 물론 빼쩨르의 북서쪽 거주 지역(Ulitsa Savushkina 근처)인 Mecury 몰에도 한국 화장품 전용 상점이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의 대러 수출액 또한 이를 증명합니다. 2019년 4월 기준 코트라에 의하면, 한국 화장품의 러시아 수출액은 67,838천 달러(참고: 15년 누적 158,678천 달러)로 고성장 품목 중 하나입니다. 작년의 63.3% 성장률에 이어 올해 4월까지도 54.3%로, 전체 품목 성장률 6%를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이지요. 얼마 전 열린 현지 지상사 간담회에서 한 영사관님은 '이제 화장품은 대러 5대 수출 품목 중 하나'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이 행사에서 만난 고려인 3세인 컨설팅社 대표 드미트리 김은 그 이유에 대해 '한국 화장품사들의 공격적인 진출 전략'을 언급하며 '지금은 중저가와 독특한 제품 중심이지만 럭셔리 시장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 러시아 친구들은 한국 화장품 에 대해 '가격 대비 높은 퀄리티의 고가성비'를 가장 먼저 이야기합니다. 특히 현지 한국 화장품 매장과 H&B 스토어 내 한국 화장품 코너에서 팔리는 시트마스크와 독특한 패키지(호박 모양의 크림 등)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동시에 더 다양한 제품을 접해보고 싶다는 강한 니즈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Story, People, Beauty - 이 세가지 키워드가 짧은 기간 동안 제가 발견한 빼쩨르의 첫인상입니다.

 '이성으로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러시아 시인 추체프의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광활한 대륙만큼이나 다채롭고 풍부한 러시아인 내면 속에서 아시안 뷰티를 발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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