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롭고 희망차게 시작했던 2020년이 코로나19로 매우 혼란스러운데요. 사우 여러분 모두 건강 잘 챙기시면서도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들을 안전하게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의 칼럼 주제는 우리가 매일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분야, 바로 K뷰티입니다. 사실 지난 2년동안 사내 칼럼니스트로 글을 쓰면서 상대적으로 타인들보다 관심있어 하던 영역이라 부담이 덜 했지만 이 뷰티의 경우에는 사내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계시고 여러분을 대상으로 이 K뷰티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담담하게 K뷰티가 창발해 온 과정과 지난 70여 년간의 역사 그리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서야 할 오늘날의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변화하는 커머스와 채널 환경, 모바일로의 사회 전환, 뷰티 산업의 특징, 글로벌과 인구구조의 변화로 나타나는 과제들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이야기를 다루기에 앞서 배경을 먼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BTS, 메모리반도체, 손흥민, 기생충 그리고 쿠션
출처 : BTS 공식 홈페이지
'국뽕이 차오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들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한국의 그것은 그 분야의 중심이나 기원(Origin)이 아닌 변방의 포진션을 갖고 있다가 어느 순간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때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최근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방탄소년단(BTS)가 새 앨범 곡 'ON'을 공개한 것이라든가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 43%를 삼성전자가 27%를 하이닉스가 점유하고 있어 사실상 독점체제를 구축한 것, 지난 해 12월 토트넘의 손흥민이 번리와의 경기에서 70m를 질주하며 원더골을 성공시키며 축구 종가에서 충격을 일으킨 것,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 등을 수상한 것들이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K뷰티 역시 그런 소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회사가 '태평양 화학공업사' 주1) 로 출발한 아모레퍼시픽이었으며 전세계 뷰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단연 쿠션이었을 것입니다.
화장품의 본고장은 여러 의미로 각기 다른 지역이 생각될 수 있겠지만 현대적 화장품의 시초는 유럽일 것입니다. 1차 산업혁명인 증기기관의 혁명에 의해 1900년대에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축적된 자본과 도시노동자들이 생겨났고 이런 산업활동을 통해 자본가들과 일정 수준의 중산층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왕족, 귀족같은 상위 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던 향상된 구매력 덕분인지 시장을 넓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파리에서는 당시 노동자들의 일당 급여를 훨씬 넘어서는 가격의 색조화장품들도 팔려나가며 현대적 화장품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국 역시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일본의 여러 화장품 회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화장품의 판매를 시작하기도 했었죠.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적 화장품'의 본고장은 유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든 비행기든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에서 대량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서구에서 출발한 게 많으니까요.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도 여러 화장품 회사들이 등장하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85달러의 국가였고 제조나 유통의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던 신생국가였을 뿐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뉴스를 통해 멀리 있는 어떤 나라가 갓 독립을 하였지만 내전이 끊이지 않고 혼란스러운 모습이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나타난 여러 화장품 업체들 중 '태평양 화학공업사'도 있었습니다. 주1) 당시에는 미군이 남한에 들어오면서 서구식 스타일이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전쟁을 겪으면서 축소되는 수요이지만 미에 대한 관심은 올라갔기에 남성들의 포마드에 대한 수요는 지속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제조하던 제품들은 바셀린이나 파라핀과 같은 광물성오일의 원료를 사용한 게 대부분이라 수입제품만한 품질을 낼 수 없었습니다. 수입제품들은 더 높은 기술력으로 식물성 오일을 쓰고 있는 등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때 1951년 국내 최초로 식물성 포마드를 개발한 회사가 당시 태평양이었고 제품명은 ‘ABC포마드’였습니다. 고급향료와 피마자유를 활용한 것이었죠.
주1) 1945년 이전부터 이미 사업을 하고 있었으나 공식적인 창립일 기준은 1945년 9월 5일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데요. 재화라는 게 평상시에는 시장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수요와 돈을 벌고자 하는 공급으로 인해 배분이 되어가는 원리인데 이런 전염병이나 전쟁같은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니 정부는 이를 통제하려 들 것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화장품의 원료 역시 이런 특수한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는데 군수물자나 생활필수품에 분류되지 않아서 더 어려움이 컸습니다. 판매량에 따라 정부로부터 배당량이 정해지고 통관 자체도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에 공급 자체가 워낙 희소했고 이로 인해 수입 이후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양질의 원료를 선별하고 가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화장품의 본고장인 유럽, 미국이나 먼저 산업을 시작한 일본처럼 연구소가 갖쳐줬어야 하는데 그러한 인프라를 갖춘 화장품 업체는 당시 국내에는 없었습니다. 1954년 태평양이 국내 뷰티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설립하며 R&D의 첫발을 디딘게 그사례입니다.
이후 1961년 수출주도 성장의 경제개발을 추구하는 정부가 등장하며 '특정 외래품 판매 금지법'이라는 게 생겨났습니다. 이 법안의 개요는 '국내산업을 저해하거나 사치성이 있는 특정외래품의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국내산업의 보호와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국내의 전자업계, 자동차업계, 소매, 유통 전반에 관해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르는 개방조치들이 실행되기 전까지 강력한 정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지금은 언제든 갈수 있는 해외여행이 (물론 요즘은 코로나19로 어렵지만) 1989년 여행자유화 이전까지는 국가에서 허가해준 사람만이 해외로 유학이나 출장을 갈 수 있었으니 외화를 유출시킬 모든 문을 닫아버린 셈이었죠. 1986년 마침내 올림픽을 앞두고 화장품 시장 전면개방 조치를 통해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었습니다. 이후 수입화장품이 1990년대 초반에 백화점 시장에 진출해서 한국의 화장품 업체들에게 수많은 부침과 구조조정이 있었습니다.
만년 무역적자 품목에서 주요 품목으로
한국은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입니다. GDP 대비 37.5%가 수출의 비중이며 가장 최신 데이터인 2018년 기준으로는 세계 6위의 수출대국입니다. 이런 수출대국이지만 화장품 분야는 달랐습니다. 식약처 기준에 따르면 만성적인 무역적자 품목인 화장품이 최초로 흑자로 돌아선 건 2012년이 처음이었습니다. 관세청 기준으로는 2014년이 최초로 화장품 품목 무역흑자를 기록한 해였고 4억 8천 6백만 US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화장품 변방의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든 이유는 여러가지 제품과 판매방식 등의 기여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기여를 만든 것은 쿠션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의 탄생이었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덧바를 수 있으면서 기존의 메이크업을 잘 보완해줄 수 있는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제품은 아모레퍼시픽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전세계에서 어찌보면 뷰티산업의 변방이라고 볼 수도 있었던 한국에서 판을 바꾼 사례가 생겨난 것이었죠. 쿠션의 탄생과 그과정 그리고 이후 기여한 매출은 생산실적 기준으로 2015년에 2천억 원에 육박합니다.
AP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스토리이지만 쿠션은 주차도장 스탬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품이고 액상의 파운데이션을 편의성이 좋게 팩트 모양의 용기에 담았던 것입니다. 이 쿠션의 핵심기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얇고 고르게 밀착되는 균일성이고 퍼프로 스펀지에 내용물을 바르는 순간부터 고르게 나오는게 기술입니다. 이 1세대 쿠션 제품 탄생을 위해 재질과 경도, 두께, 포어(Pore) 사이즈 등 스펀지가 가진 다양한 요소를 3,600번 이상 실험을 한끝에 완성했던 것입니다.
쿠션과 개념설계 주2)
아이오페 에어쿠션 ®
쿠션의 탄생은 단지 매출액의 상승 또는 기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화장품의 본고장인 서구에서 전세계로 흘러 들어갔던 것이 패턴이었습니다. 그 카테고리는 우리가 일컫는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이라는 기초 화장품과 자외선 차단제인 선블럭, 파운데이션, 베이스 등 색조화장품의 카테고리들이었습니다. 쿠션은 화장품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전세계 뷰티 브랜드에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쿠션의 성공 스토리는 한개의 회사의 성과를 넘어서 클레오파트라이래 전세계 뷰티 역사상 최초로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의 화장품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남들보다 더 잘해서’를 넘어 싱귤러리티(독창성)를 갖고 새로운 사례였는데요. 한국의 여러 제조업체들이 세계 1등이라는 성과를 냈던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스마트폰, 메모리반도체, 조선업, 화학, 정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1등을 해왔으나 서구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라는 자산에 기반한 핵심기술, <축적의 길>이라는 책에서 이야기되는 개념설계주 2) 에서 한국이 1등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쿠션은 뷰티와 패션이라는 사치재로 분류될 수도 있는 산업에서 한국이 개념설계를 갖고 이뤄낸 산업적 쾌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K뷰티는 유로모니터기준 미국, 중국, 일본, 브라질,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에 이은 9번째의 시장으로 거듭났으며 총 수출액 62억 달러로 2000년대비 2018년에 60배 성장하였습니다. 전체 무역수지의 6.5%에 해당되는 규모가 되었고 관련종사자는 직접종사자 36만 명에 이르는 높은 고용유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주2) 개념설계는 쉽게 생각하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기업 상당수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을 보여줘 오늘날 정상의 지위에 올랐다. 스마트폰을 개발한 애플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개념설계는 수익과 직결된다. 애플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영업이익 79%를 차지하는 건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선구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축적의 길>, 이정동, 지식노마드
또 다른 혁신
K뷰티의 수출성장은 2015년 55.2%를 정점으로 둔화되기 시작하여 2016년 43.6%, 2017년 18.3%, 2018년 26.7%를 찍고 2019년에는 3.6%의 성장으로 둔화되고 있습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기준) 쿠션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해낸 혁신 사례들로 이뤄냈던 K뷰티의 고도성장은 이제 또 다른 혁신과 개념설계를 만들어서 성장동력에 불을 붙일 시간이 되었습니다.
K뷰티에 관해서 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생활 속에서 우리의 업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떤 과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리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올 한해 매월 칼럼을 쓰게 될 텐데 자료 수집과 레퍼런스 확인을 위한 것은 한국에서 뷰티를 가장 잘 아시는 사우 여러분께 조언을 구하고 간단한 인터뷰로 자문도 구하고자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쿠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이야기나 채널의 변화, 밀레니얼 관점에서의 뷰티, e커머스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따른 뷰티업계 대응, 중국시장에서의 경쟁과 트렌드의 변화 등 우리의 산업 앞에 놓여진 어렵지만 넘어야 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해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