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품격, ‘세계 최초’의 역사로부터 쓰여지다 - AMORE STORIES
#보도자료
2015.06.23
0 LIKE
124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b%aa%85%ed%92%88%ec%9d%98-%ed%92%88%ea%b2%a9-%ec%84%b8%ea%b3%84-%ec%b5%9c%ec%b4%88%ec%9d%98-%ec%97%ad%ec%82%ac%eb%a1%9c%eb%b6%80%ed%84%b0-%ec%93%b0%ec%97%ac%ec%a7%80%eb%8b%a4

명품의 품격, ‘세계 최초’의 역사로부터 쓰여지다

설화수, 까르띠에, 버버리. 전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명품이 되었을까. 그들이 명품이 된 배경을 찬찬히 따라가 보면 업계에 한 획을 그은 ‘세계 최초’라는 역사와 전통으로 귀결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명

명품의 품격은 다른 브랜드와는 철저하게 차별화되는 브랜드의 철학이 녹아든 특별한 탄생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정통성을 기반으로 이어온 브랜드의 가치와 업계를 주도하는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화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해보인다. 더불어, 이러한 노력들이 비단 옷이나 화장품을 넘어 명품의 이름을 누리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생겨나게 한 원동력이며, 그와 함께 브랜드의 가치가 더욱 커지게 만든 하나의 축일 것이다. 우리가 이제 너무 당연히 여길지 모르는 명품브랜드, 그 최초의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 세계 최초의 한방 뷰티 브랜드, 설화수
설화수는 아시아의 철학과 지혜를 담아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홀리스틱 뷰티(Holistic Beauty)’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로 우뚝 선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 브랜드’이다. 세계 뷰티의 메인 스트림에서 ‘최초의 한방 화장품 설화수’가 굳건히 자리매김한 것은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아시아의 대표 약용식물 중 가장 으뜸으로 인정 받는 한국의 인삼을 처음으로 미의 원료로 주목했던 설화수는 1966년 세계 최초로 ABC인삼크림을 세상에 선보이며 브랜드의 첫 시작을 열었다. 50년 가까이 인삼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인삼에 숨겨진 귀한 효능 성분들을 피부 속으로 전달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 이렇듯 아시아의 지혜가 담긴 약용식물을 사용한다는 제품의 컨셉, 그리고 설화수만의 독보적인 과학기술을 더해 피부에 가장 최고의 효과를 주는 화장품으로 당시 고객들의 니즈를 만족시켜 시장 진입에 성공했던 것이다. 진정성 있는 브랜드 철학과 이를 뒷받침되는 제품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당시 한방화장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뷰티 시장에서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브랜드다.

설화수의 런칭 이후, 수많은 기업에서 한방 브랜드의 출시가 이어졌지만 설화수는 비단 ‘최초’의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고 제품에 있어서도 최초와 기록의 역사를 끊임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설화수의 기록은 뷰티 제품으로 최초로 단일 제품 판매 누적 매출 1조원을 기록한 윤조에센스로 대변된다.

1997년, 스킨케어 첫 단계에 바르는 부스팅 에센스 개념을 처음 도입한 윤조에센스의 탄생으로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여성들의 미의 루틴은 바뀌게 되었다.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피부의 근본 균형부터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설화수의 철학은 윤조에센스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고, 출시 이후 1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시아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설화수의 대표 스테디셀러 아이템이 되었다. 이는 설화수 브랜드가 가진 50년 한방 연구의 역사와 전통이 ‘세계 최초 한방 부스팅 에센스’로 대표되는 결실로, 명품 브랜드를 뒷받침하는 브랜드의 얼굴임을 반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 개발, 까르띠에
165년 전통의 프랑스 보석∙시계 브랜드 까르띠에는 1904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로 꼽히는 산토스 뒤몽(Santos-Dumont)을 선보이면서 시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설립자의 큰 아들인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그는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산토스 뒤몽을 개발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에게는 당시 비행 모험가로 유명했던 알베르토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Dumont)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직접 제작한 열기구를 타고 에펠탑 주위를 아슬아슬 비행하기도 했던 그는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에게 비행에 적합한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한순간도 전방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비행 상황을 고려해 시계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 제품이 러그가 손목 방향으로 부드럽게 굽어 있는 등 현대 손목시계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던 것. 당시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이 워낙 유명세를 떨치던 인물이다 보니 그의 시계도 더불어 유명해졌고 이는 까르띠에가 본격적으로 시계 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루이 조제프 까르띠에는 친구의 이름을 따서 이 시계를 산토스 뒤몽이라 명명하며, 지금까지도 전세계 고객들에게 사랑 받는 시계가 되었다.

* 세계 최초의 개버딘 레인코트,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영국을 대표하는 159년 전통의 글로벌 브랜드 버버리는 레인코트를 새롭게 디자인한 트렌치코트를 세계 최초로 선보여 지금까지도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이자 명품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설립자인 토마스 버버리가 1856년 헴프셔 지방의 윈체스터 거리에 포목상을 오픈했을 당시, 영국인들은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레인코트를 자주 입었다. 그러나 당시의 레인코트는 고무로 만들어져 있어 굉장히 무거웠다. 이에 편안한 레인코트를 만들고 싶었던 토마스 버버리는 방수가 되는 가벼운 원단을 찾았고 그는 무수한 실패 끝에 1888년 드디어 ‘개버딘’이라는 새로운 직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891년, 토마스 버버리는 런던 해이마켓에 첫 매장을 열면서 ‘세계 최초의 버버리 개버딘 레인코트’를 선보였다. 특히 ‘개버딘 레인코트’는 영국국왕 에드워드 7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외출할 때마다 토마스 버버리의 개버딘 코트를 찾으며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를 통해 단숨에 명품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물론, 오늘날 ‘버버리’라는 패션 용어가 만들어지며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 설화수 외 자료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작성된 내용입니다. 

  • 좋아해

    0
  • 추천해

    0
  • 칭찬해

    0
  • 응원해

    0
  • 후속기사 강추

    0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