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선이네’ 김상호 대표를 만나다 - AMORE STORIES
#한강대로100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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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선이네' 김상호 대표를 만나다

떡볶이로 써 내려간 20년 역사, 용산의 상징이 되다

2004년 포장마차로 시작해 매운 떡볶이 하나로 용산의 상징이 된 ‘현선이네’. 아모레퍼시픽을 현선이네의 개국 공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김상호 공동 대표를 만났다.

‘현선이네’ 용산 본점 앞에서 김상호 공동 대표

 

 

용산역 앞 작은 포장마차, ‘현선이네’ 유니버스의 시작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교육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전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5남매 중 넷째인데, 셋째 누나인 현선이 누나에게 같이 장사를 해보자고 했어요. 누나가 음식 솜씨가 좋았거든요. 누나는 음식을 맡고, 저는 운영을 담당하면서 사업을 해보기로 했어요. 2004년, 용산역 앞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포장마차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 역성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여태까지 뒷바라지해 주셨는데 내 고집만 부리기엔 죄송했어요. 누나에겐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저는 당분간 사업에서 빠지기로 했어요. 그리고 임용고시에 합격해 체육교사가 됐죠. 8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할 때 현선이 누나가 포장마차를 꾸리고 둘째 누나가 그걸 도왔죠. 저도 운영을 조금씩 도왔는데, 계속 미련이 남더라고요. 교사 일도 좋았지만 제 성향에는 사업이 더 잘 맞는 것 같았어요. 누나들도 다시 돌아오라고 손을 내밀어 줬고요. 그래서 이번엔 마음을 굳게 먹고 교사직을 그만두고 장사에 뛰어들기로 했죠. 그때부터 둘째 누나와 셋째 누나, 그리고 저까지 3인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포장마차 시절 장사는 잘 됐나요?

사실 처음 포장마차 메뉴는 떡볶이가 아니라 매운 어묵과 닭꼬치였어요. 그런데 장사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메뉴를 매운 떡볶이로 바꿨어요. 떡볶이가 훨씬 시장성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역시나 훨씬 반응이 좋았어요. 그즈음 용산역에 이마트와 CGV가 생기며 용산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장사가 더 잘 되기 시작했어요. 우리 포장마차 주변으로도 몇 개의 포장마차가 더 있었는데 그곳이 용산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사람이 많이 몰렸어요. 그중에 제일 장사가 잘되니까 더 유명해졌죠. 장사란 버텨야 하는 기간이 필요하구나, 깨닫게 되었죠.

 

2004년 포장마치 시절 ‘현선이네’

 

왜 현선이네는 유독 더 잘 됐을까요?

당시에도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맛도 맛이지만, 길거리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최대한 위생적으로 하려 노력했고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게 응대했죠. 지금까지도 철칙으로 생각하는 게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게’ 이 세 가지예요. 이 세 개만 지키면 장사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끊임없이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어요. 당시 대부분의 포장마차에서 튀김을 시장에서 받아서 썼어요. 저희는 직접 튀김을 만들어서 튀겼죠. 바로바로 튀겨드리니까 손님들이 좋아하셨어요. 다른 메뉴들도 가능한 한 바로 조리해서 내어드리려고 했고요. 그런 작은 노력들을 알아봐 주신 것 같아요.

‘매운’ 떡볶이를 공략한 이유가 있다면?

누나들이 워낙 매운 음식을 좋아했어요. 무슨 음식을 해도 무조건 맵게 만들었죠. 우리 입에 맛있는 걸 만들었는데 그걸 좋아해 주시는 손님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 신길동 매운 짬뽕과 매운 돈가스를 비롯해서 맵기로 유명한 몇몇 음식점들이 있었어요. 매운 음식 좋아하는 분들은 ‘도장 깨기’ 하듯 찾아다니셨는데 그중 현선이네도 리스트에 있어서 많이 찾아오셨어요.

 

장사에서 사업으로, 포장마차에서 브랜드가 되기까지


‘현선이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사업을 오래 지속하려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상호도 짓고, 포장마차가 아닌 정식 매장도 열고요. 먼저 상호를 짓기로 했어요. 포장마차 시절에는 손님들이 불러주시는 게 이름이었어요. ‘용산떡볶이’를 줄여서 ‘용떡’이라고 부르기도 하셨고, 셋째 누나 이름을 따서 ‘현선이네’라고 부르기도 하셨어요. ‘용떡’도 좋았지만, 이름에서 오는 친근한 느낌이 좋더라고요. 제가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고군분투하며 사업을 꾸려온 누나의 공헌을 인정해 주고 싶기도 했고요. 두 이름 중 고민하다가 ‘현선이네’로 결정하게 됐어요.

포장마차에서 정식 매장으로 옮긴 계기가 있다면?

포장마차는 불법이잖아요. 단속이 나오면 물건을 다 뺏기고 벌금 내는 게 일상이었어요. 매일매일 불안했죠. 손님들도 애써 찾아주셨는데 헛걸음하시는 날이 많았고요. 불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영속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꼭 매장을 열고 싶었어요. ‘현선이네’라는 상호를 짓고 당시 서울문화사 앞에 조그만 가게를 계약했어요. 굉장히 구석진 곳이었는데, 20대 때라서 입지나 상권 같은 건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계약했죠. 포장마차가 잘 됐으니 무조건 잘 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포장마차에서 옮긴 ‘현선이네’ 첫 매장

 

매장으로 옮기고, 반응은 어떘나요?

말 그대로 ‘폭망’이었어요. 첫 달은 하루에 15만 원 정도밖에 못 팔았어요. 포장마차 때와 똑같은 레시피로 하는데도 장사가 안 됐어요. 버티는 수밖에 없었죠. 포장마차에서 그랬듯,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면 결국엔 손님들이 찾아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버티다 보니 손님들이 조금씩 늘었고, 이 가게가 알고 보니 현선이네 포장마차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는 더 많이 찾아주셨어요. 떡볶이 1인분에 2500원 하던 시절에, 그 좁은 매장에서 일 300만 원 판매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정말 ‘빵 터진’ 계기가 있는데, TV 프로그램에서 매운 떡볶이 맛집으로 방송된 거예요. 당시 2009년만 해도 지상파 TV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했거든요. 방송에 나오고 나서 가게 앞에 또아리를 틀 정도로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인터넷에 제 휴대폰 번호가 공개돼서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전화벨이 울렸고요. 그때부턴 용산뿐 아니라 서울 내에서도 인지도가 생긴 것 같아요. 그 후 지금 이 자리로 한 번 더 이사했는데, 그대로 손님들이 찾아오시더라고요. 현선이네가 인지도가 꽤 많이 올라갔구나, 브랜딩이 잘 됐구나 느꼈죠. 


 

현재 현선이네 용산 본점

 

사업 확장은 어떻게 하셨나요?

장사가 잘되면서 가맹점을 내달라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지금 가게만 잘 운영할 것인지, 외형을 확장할 것인지 고민이 시작됐죠. 어느 정도 사이즈를 키워야 경쟁력이 생기고 사업을 더 길게 지속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가맹점은 가맹점주의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권한을 어느 정도 나눠야 하거든요. 그러면 가게마다 색깔이 달라지고, 맛이나 서비스의 퀄리티도 떨어질 수 있죠. 돈을 더 벌기 위해 우리가 오랫동안 일궈온 브랜드를 리스크에 빠뜨리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숙고 끝에, 우리가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직영점으로만 확장하기로 했어요. 조금씩 늘릴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늘어서, 3년 만에 16개까지 지점이 늘어났죠.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요. 매장 수가 늘어나는 속도에 인재가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역량 있는 관리자가 부족했죠. 매장마다 음식 퀄리티와 서비스 품질이 다르다 보니, 이것이 고스란히 고객의 불편으로 이어졌어요. 고민 끝에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장 수를 줄이기로 했어요. 현재 7개의 직영점이 있는데, 가족들과 10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직원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가족은 최후의 보루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셨나요?

누나들은 음식을, 저는 운영을 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어요. 누나들은 소스와 레시피 개발을 하고, 저는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어요. 서로 최대한 겹치지 않게 역할을 분담했죠.

가족과 일하면서 갈등은 없었나요? 어떻게 푸셨나요?

20년 동안 가족끼리 운영하며, 여러 갈등도 많았죠. 극단적으로 싸울 때도 있었고요. 그 고비들을 잘 넘기고 오래갈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공평하게 지분 구조를 나누고, 최대한 자기 영역을 지키며 겹치지 않는 선에서 일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또 갈등 상황이 있었을 때 누나들이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누군가 화내고 등 돌렸다면 한순간 끝날 수도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고 있어요.

’가족은 최후의 보루이자 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쌓여서 폭발할 때가 가장 위험해요. 적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것만 조심하면 가족은 최후의 보루예요. 결국 마지막에 나를 지켜주는 건 가족이에요. 서로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평소에 선을 지킨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어요.

 

‘현선이네’ 김서연, 김현선, 김상호 대표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현선이네가 꾸준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차별화되는 요소 하나에 집중하되 계속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현선이네의 경우, 그 차별화 요소가 ‘매운 떡볶이’였죠. 고객은 하나의 메뉴라도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집, 더 나은 집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메뉴 여러 개를 파는 집을 굳이 찾아가진 않죠. 그래서 잘하는 걸 더 잘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재료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고 고객들의 입맛도 잘 관찰해야 해요. 음식 재료도 생물이라 다 다르거든요. 예를 들며 저희는 밀에도 등급이 있는데, 저희는 등급이 높은 밀만 써요. 그래서 고객들이 현선이네 떡은 질감이 다르다고 말씀하세요. 가능하면 더 좋은 재료를 찾으려고 해요. 좋은 재료를 좋은 조리법으로 만들면 맛있을 수밖에 없죠. 고객들의 변하는 입맛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면, 고객들이 옛날보다 매운 걸 잘 못 드세요. 저는 현장에 있으니까, 확실히 그 변화를 느꼈죠. 그래서 매운 떡볶이 메뉴는 그대로 가져가되, 맵기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바꿨어요. 요즘엔 순한 떡볶이를 찾는 손님도 많아요.

처음 온 손님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현선이네는 메뉴 종류가 많지 않아요. 모든 떡볶이부터 튀김, 김밥, 순대까지 모든 메뉴를 맛보실 수 있는 세트 메뉴를 추천해 드려요. 혼자 오신다면 베이비세트를, 2~3명이 오시면 현선이 세트가 딱 좋죠. 튀김은 처음엔 떡볶이 국물 범벅으로 드셔도 좋고, 나중엔 따로도 드셔보세요. 바삭한 식감과 튀김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김상호 대표가 추천하는 세트 메뉴

 

밀키트로도 출시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언제 만나볼 수 있나요?

‘현선이네가 오프라인에서 가진 강점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 고민에 대한 답이 밀키트였죠. 밀키트는 여러 업체에서 제안이 정말 많이 왔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저희가 직접 품질 관리를 하고 싶었거든요. 평소 좋아하는 맛집의 밀키트를 먹고 실망한 경험 많으실 거예요. 외부 업체에 위탁하면 음식의 맛을 보장할 수 없어요.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결국 고객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브랜드 이미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작년부터 밀키트 제작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어요. 지금은 완성도를 높이는 막바지 작업 중이에요. 고객들이 매장에서 드시는 맛과 최대한 같은 맛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 준비중인 떡볶이 밀키트

 

대외 활동을 하시면 마케팅에 도움이 될 텐데 안 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한 10전 년에는 방송을 많이 했어요. 현선이네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섭외가 들어오더라고요. 세 달에 한 번씩은 방송에 나갔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방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선이네가 원하는 건 매스 마켓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우리에겐 로컬 고객들이 더 중요했죠. 더 이상 방송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때 또 방송 제안이 들어왔는데 ‘백종원의 3대 천왕’이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엔 백종원 씨가 지금처럼 유명할 때도 아니었고, 저도 방송을 안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라 거절했어요. 그 방송이 그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아, 왜 하필 그 순간에 그런 결심을 했을까?’(웃음) 잠깐 후회하면서도 ‘그렇다면 이 길이 맞는가 보다’ 하고 약간의 합리화를 하며, 그때부터는 방송을 비롯한 대외활동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지켜온 철학, 맛있고 친절하고 깨끗하게


매출이 꾸준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름대로 등락도 있었는데, 크게 매출이 줄어든 적은 없었어요. 메뉴를 많이 늘리지 않고 퀄리티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듯,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했죠. 현선이네 오면 늘 기대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말이죠. 또, 현선이네가 ‘용산’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라는 것도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용산까지 왔는데 굳이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을 가시진 않는 거죠. 그런 요소들이 매출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것 같아요.

번아웃이나 스트레스를 겪은 적은 없나요?

워낙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에요.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죠.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좋은 답이 무엇일지 찾아가는 편이에요. 미래는 해결해야 할 일이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마음의 건강보다는 몸의 건강을 더 챙기고 있어요. 건강이 안 좋아지면 제가 벌여 놓은 일을 책임질 수 없게 되니까요. 술과 담배를 단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새로 요식업에 뛰어드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꼭 분식이 아니라 어떤 업종이든 자기 시장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선이네는 떡볶이집이지만, 모든 떡볶이집을 경쟁자로 보진 않아요. ‘엽떡’이나 ‘죠스떡볶이’ 같은 프랜차이즈가 우리의 경쟁자는 아니죠. 장사 경력이 어느 정도 되면서 손님들이 직접 매장으로 찾아오는 오프라인 위주의 떡볶이집들이 우리의 경쟁 시장이에요. 우린 그 시장에서 최고가 되면 되는 거고요. 그렇게 정의한 시장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타깃 고객을 좁혀주는 역할도 하죠. 자기 시장을 만들고, 어떤 고객에게 팔 건지를 생각해서 기획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사업에서 가장 강조하는 철학은?

계속 얘기했던 것처럼, ‘맛있고 친절하고 깨끗한’ 거요. 직원들에게도 세 가지는 끊임없이 강조해요. 우리는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를 같이 팔고 있다고요. 떡볶이 가격이 만 원이라면, 친절함과 깨끗함과 맛이 만 원의 값으로 매겨진 거죠. 맛만 중요하다면 마트에서 사먹어도 되잖아요. 직원들의 월급에는 그것들을 제공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늘 강조해요. 그래서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피드백이 좋은 것 같아요.

 

현선이네 X 아모레퍼시픽


창업 후 가장 큰 위기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아모레퍼시픽은 저희에겐 개국공신 같은 존재예요. 현선이네 초창기부터 많이 찾아주셨거든요.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이 사옥 공사로 잠시 이전했을 때가 현선이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어요. 저희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계셨으니까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따라가기로 했어요. 을지로에 직영점을 냈죠. 일주일 동안 이전한 빌딩 앞에서 떡볶이랑 튀김을 포장해서 나눠드렸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면서 놀라시면서도 반겨주시더라고요. 아모레 직원분들이 그곳에서 기반을 잡아주셔서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아직까지 그 지역에서 성업 중이에요.

 

여전히 성업 중인 청계천직영점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창기 때부터 현선이네를 좋아해 주셔서 늘 감사해요. 마음속으론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좋아해 주신 만큼 보답하려고 노력했는데 표현이 잘 됐을지 모르겠어요. 대외 활동은 잘 안 하는 편인데 아모레 인터뷰는 꼭 하겠다고 한 이유도 그 감사함 때문이에요.

앞으로의 사업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으신가요?

이제 현선이네가 20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또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생각해요. 국내에서 잘 해왔으니 더 넓은 시장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곧 말레이시아로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해외에 진출해서 바로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길 기대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리매김하면 그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나에게 ‘떡볶이’란?

떡볶이는 ‘나의 표현’이에요. 젊은 나이에 ‘떡볶이’를 선택해서 20년 동안 떡볶이를 매개로 계속 나를 표현해온 것 같아요. 제 젊은 20년 동안의 기록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계속 떡볶이로 저를 표현해 보려고 해요.

 

인터뷰 중인 현선이네 김상호 공동 대표

 

epilogue
현선이네가 100년 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김상호 대표. 세대를 넘고 국경을 넘어 그가 ‘떡볶이’를 매개로 써 내려갈 새로운 기록을 기대해본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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