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불편 - AMORE STORIES
#스낵컬처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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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불편

 

오은 시인 신연선 프리랜서 작가 김상훈 YES24 기획자

 

 

 

가방은 무겁지만 물건 틈새를 비집고 텀블러를 담는다. 친환경 핸드페이퍼와 에코 물티슈를 다섯 번쯤 사용하면 여섯 번째부터는 걸어 놓은 수건으로 젖은 손을 옮긴다. 불편하다. 먹고 버리면 되는 일회용 잔이, 닦고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인 핸드 타월이 훨씬 편하다. 그렇지만 나만 좋자고 전철에서 누워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신난다고 회사에서 종일 엉덩이춤을 출 수 없는 것처럼, 자연에게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도 되는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나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불편을 얼마나 친절하게 실천하고 있는가.

 

 

 

 

 

잊지 않아야 잃지 않으니까

오은 시인

 

 

나는 잘 잊지 않는 대신, 잘 잃어버린다. 잃어버린 것을 잊지 못한다는 건 꽤 슬픈 일이지만, 있었던 것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여름철 장마가 지나고 나면 손에서 빠져나간 우산이 어림잡아 서너 개쯤 된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울상을 짓다가도 어딘가에서 제 소용을 다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잃어버리기 선수인 내가 10년 넘게 쓰고 있는 물건이 있다. 바로 텀블러다. 비가 그치면 찾지 않는 우산과는 달리, 텀블러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 늘 소지하기에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하기에는, 그간 너무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다. 신발도, 외투도, 손목에 차는 염주도 어딘가에서 잃어버렸으니 착용 여부는 중요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번은 텀블러를 넣고 다니는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텀블러만큼은 손에 쥐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물을 좋아한다. 물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니 좋아함의 영역보다는 필요함의 영역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 이유도 언제 어디서든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물이 없으면 괜히 더 목이 타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그즈음 선물 받은 텀블러는 은색이었다. “네 이름이 은이잖아.” 친구의 심상한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리기도 했다. 이 텀블러를 잃어버리면 나를, 나의 일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텀블러는 외출 시 내 단짝이 되었다. 가시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별다른 일정이 없을 때는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쓴다. 그사이 직장인들이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받아 나간다. 냅킨과 컵 홀더, 빨대까지 함께 밖으로 나간다. 테이크아웃이 일상에 뿌리내리면서 어딘가에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을 자주 떠올린다. 종이 더미, 플라스틱 무더기, 고철 덩어리…. 인간이 편의를 앞세워 만든 물건들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구를 뒤덮고 있다. 기후가 변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안전한 곳은 없다.

고작 텀블러를 사용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데, 나아가 지구를 지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하다. 하지만 매일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하나쯤 더 만들 수 있는 쓰레기를 하나라도 덜 만들려는 마음이다. 지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경각심이다. 외출할 때마다 나는 ‘언젠가 목마를 나’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언제나 목마를 지구’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텀블러일지 모르지만, 작은 움직임이 모이고 모이면 ‘고작’이 ‘기적’이 되지 않을까.

재작년부터는 텀블러를 두 개 들고 다닌다. 은색 텀블러는 물을 넣어 다니는 용도고, 주황색 텀블러는 음료를 받는 용도다. 주황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 텀블러를 잃어버리면 취향까지 사라져 버릴까 불안하다. 실은 더 큰 불안이 있다. 팬데믹 이후, 나는 정말로 지구가 걱정된다. 자연自然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스스로 그러함.”이란 뜻이다. 지구가 스스로 그러할 수 있으려면, 마음 편히 존재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이 땅 위에서 ‘공존’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잊지 않아야 잃지 않을 수 있다.

 

 

오은
가끔 바닥에 텀블러를떨어뜨리곤 한다.여기저기 난 생채기를보면 속상하지만,어쩌면 이것이삶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기도한다.
떨어져도 다시줍기, 넘어져도 다시일어나기, 지구를떠올리며 또다시다짐한다.

 

 

 

 

은밀한 문장수집가의 환경 이야기

신연선 프리랜서 작가

 

 

궁금해할 사람이 많지 않을 정보 두 가지를 적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하나는 내가 ‘물 낭비와 물 오염 중 어느 것이 더 나쁠까?’, ‘전기 코드를 꽂아 두는 것과 꽂았다 빼기를 반복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전기를 소비할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던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폐품 수집(이라는 것이 어린 시절에 있었다. 학교에서는 특정 요일에 학생들에게 폐품을 가져오게 해 그것을 폐지로 재활용한 공책과 바꿔주었다. 먼 옛날.)에 열을 올리던, 공연히 켜져 있는 전기등을 몹시 손해라고 여기며 방마다 다니며 불을 끄던 그런 어린이. 그러니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는 것을, 강아지의 배변 패드로 쓰레기통이 금세 차오르는 것을, 신발이나 옷 등을 새로 구매하는 것을 영 불편해하고 그런데도 안절부절못하며 두 시간 사용할 공기청정기는 한 시간만, 미안하지만 강아지의 배변 패드는 2-3회 사용까지, 새 신발이나 새 옷은 가급적 소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패하고 또 반성하는 것이다.

한편, 그 어린이는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는 성인이 된다. 나는 나 자신의 하찮은 기억력을 알기에 열심히 문장을 수집하는, 그러나 이 사실을 은밀하게 숨겨온 문장수집가가 되었다. 문장은 내 보물이었다. 읽는 사람이 쓴 사람과 어떠한 장애물 없이 찌릿(!)하고 만나게 되는 순간들. 그것이 오해에 불과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고만 싶은 그 전기적Electrical 순간에 중독된 나는 단 한 대목이라도 전기적 순간을 만나면 그 어떤 책이라도 열광하기를 마지않으며 수첩을(정확히는 스마트폰 메모리를) 채워나가는 생활을 십수 년째 지속하는 중이다. 그러니 수첩-메모리에 환경과 관련한 문장들, 나의 미흡한 실천과 고민에 관한 문장들이 쌓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외출할 때 챙기는 손수건, 텀블러, 다회용 빨대, 장바구니 등이 무겁고 번거롭게 느껴질 때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를 그득그득 채우는 일상이 불편이 아니라 궁극의 자기 돌봄이라는 것을 알아 간다.(1)”라는 문장을 기억하면 귀찮음은 깨끗이 사라지고 나 자신을 성심을 다해 돌보는 이 행위가 파동을 만들며 나 바깥으로 퍼지는 상상에 뿌듯해진다. 살아 있는 돼지를 안고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의 사진이 걸린 정육 식당에 다녀온 것이 못내 부대낄 때 “비건 한 명 * 365일 = 365 / 일주일에 한 번씩 채식 * 7명 * 52주 = 364(2)”라는 구체적인 계산을 발견하면 어제의 나를 탓할 에너지로 오늘의 실천을 응원할 수 있게 된다. 나 하나의 실천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더 큰 사회의 구조를 탓하면서 화살을 돌리고 싶은 졸렬한 마음이 떠오를 때 “지금 버지니아 해변이나 라호이아에서 유쾌하게 부서지는 파도는 몇 년 전 남극의 빙산 기슭을 찰싹이거나 지중해의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다가 보이지 않는 깊은 물길을 따라 오늘 내 눈앞에 당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깊이 숨어 흐르는 해류 덕분에 모든 바다는 진정으로 한 몸이 된다.(3)”는 문장에 머무르고 있자면 순환하는 지구 안에서 우리 모두는 책임이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생한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매일의 낱낱한 실패를 나만은 분명히 알기에 쉽게 자책하고, 자책에 머물다 무너진다. 이런 사람에게 여기 소개한 문장들은 살아가는 힘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는 문장들. 어려운 실천이라는 걸 안다고, 그래도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살포시 등을 떠밀어주는 문장들. 그래서 오늘도 수첩-메모리를 채우고 반성하고 나아간다. “평균은 그저 되는대로 살 때 이뤄지는 가치가 아니라, 내가 남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발견에서 좌절하지 않고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힘겹게 도달할 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평균은 평균 이하의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는 가치이다.(4)”와 같은 말에 기대서.


1. 고금숙·이주은·양래교,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 위즈덤하우스, 2022, p4.
2. 박규리 외, 《비거닝》, 동녘, 2021, p114.
3. 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에코리브르, 2018, p229.
4. 박현주,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 라이킷, 2020, p150.

 

 

신연선
프리랜서 작가. 출판사 홍보 기획자,온라인 서점 MD로 일했다. 2014년부터 프리랜서로 칼럼,인터뷰 기사, 콘텐츠시나리오 등을 쓰고있다.
2017년부터 팟캐스트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대본을 쓰고 있다.

 

 

 

 

줍줍하는 비건 산행 어떠세요?

김상훈 YES24 기획자

 

 

“아이고, 좋은 일 하시네. 어디에서 나오셨어요?” 요즘 친구들과 산행할 때마다 듣는 말이다. 한 손에는 집게를, 한 손에는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우며 산을 오르는 청년들. 무슨 이유로, 누가 시켜서 저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만하다. 낯선 사람들 간의 스몰 토크가 생각보다 잦은 산의 특성상, 우리의 존재를 묻는 말에 답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술을 즐기는 두 친구 우공, 미리와 함께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술을 마실까?’ 고민하다 찾은 것은 산행이었다. 때마침 셋 모두 캠핑과 등산 같은 아웃도어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장비를 갖추기 시작할 때였다. 셋이 처음 함께 오른 곳은 2021년 가을의 인왕산. 내려와서 마시는 맥주는 어느 때보다 시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웃도어 활동이지만 나는 생각보다 금방 시시해졌다. 캠핑은 고기를, 오직 더 많은 고기를 굽는 게 목적으로 보였고, 높은 곳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술로 마무리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등산에서 더 찾고 싶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플로깅이었다. 산책이나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것. 만약 플로깅을 하며 산행을 한다면 어떨까? 우공과 미리에게 아이디어를 알리자 반겨주며 함께하자고 했다.

모든 의미 있는 것의 시작은 이름 짓기. 여러 비장한 후보를 제치고 선택된 것은 귀엽고 직관적인 ‘줍줍산책’이었다. 그래, 쓰레기를 ‘줍줍하며’ 산행하고, 내려와서는 술을 마시며 책 이야기도 나누자. 그렇게 시작된 줍줍산책의 첫 무대는 수락산이었다. 초보 등산객에게 쉽지 않은 코스인 데다가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아 종종 서툴렀지만, 많은 쓰레기를 봉투에 담았고 그 크기만큼의 보람이 있었다. 마주치는 등산객들의 관심과 리스펙트도 덤으로 얻었다.

SNS에 줍줍산책 활동을 알리자, 또 다른 친구들이 기다렸다는 듯 모여들었다. 미리의 친구인 산하가 합류하여 마니산에서 두 번째 줍줍을 진행했고, 나의 직장 동료인 비몬이 합류하여 불암산에서 세 번째, 그리고 와우산과 홍대에서 네 번째 줍줍을 진행했다. 특히 비몬이 함께하면서 줍줍산책 날은 모두 함께 비건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 밖에도 미리 소식을 알려주면 함께할 것을 약속한 친구들이 여럿이고, 그중에는 대면한 적 없는 온라인 친구도 있다.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같은 커다란 명산에서 수많은 줍줍산책 멤버들이 한날한시에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여 조용히 자기만의 줍줍 산행을 하고 흩어지는 일. 어쩌다 마주치면 질문보다는 묵례와 미소를 건네는 순간. 일종의 퍼포먼스 혹은 행위 예술 같은 이 상상이 언젠가 현실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편하게 DM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instagram.com/k.shoon

 

 

김상훈
팟캐스터 & 북 큐레이터. 스틸북스에서 북 큐레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예스24에서 일한다.
팟캐스트<아키의 책바구니>를만든다.

 

 

 

 

‘스낵컬처’는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읽을거리를 소개합니다.
아모레퍼시픽과 어라운드가 함께 큐레이션한 콘텐츠를 통해 재미와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일러스트 오하이오

에디터 이주연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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