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삽니다 (한 끼 단상 리추얼) - AMORE STORIES
#임직원칼럼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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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삽니다 (한 끼 단상 리추얼)

Columnist | 아모레퍼시픽그룹 임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나를 위한 시간, 리추얼 트렌드 칼럼 제2화. 잘 먹고, 잘 삽니다




칼럼니스트 | 에스쁘아 MC팀 박세희 님



“점심 뭐 드셨어요?”

오후에 우연히 마주친 동료가 묻습니다. 오늘 점심요? 되묻고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정신없이 릴레이 회의를 하고,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보고를 마치고 털썩 자리에 앉으면 오늘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죠. 어제 저녁이나 지난 주말 뭘 먹었는지는 더더욱 가물가물하고요. 평소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은 직접 요리도 하는데 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끼가 없을까? 그래서 내가 먹은 한 끼에 이름을 붙여보는 ‘한 끼 일기’ 리추얼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리추얼 미션은 간단했습니다. 푸드 에세이를 한 챕터 읽고 내가 먹은 한 끼에 제목을 붙여 하루에 한 번 인증하면 됩니다. 첫날, 어떤 한 끼에 대해 올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점심도 저녁도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아침에 먹은 사과즙과 삶은 달걀 사진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사진을 보며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끄적이다 보니 짧은 글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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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사무실에 도착해 늘 하는 루틴이 있다. 먼저 손 소독제로 손을 닦은 후 외투를 걸어두고 노트북을 세팅한다. 다시 화장실에서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는다. 가방에 들어 있는 지퍼백을 꺼내 사과즙은 책상 위에 두고 삶은 달걀은 그대로 지퍼백에 넣은 채 책상 위에서 도르르 굴린다. 와자작-. 나를 둘러싼 공간에 달걀 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사부작사부작 작은 움직임으로 껍질을 까고 나서 뽀얗게 드러난 달걀의 반쪽을 한입 베어 문다. 우물우물할 때마다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오늘은 껍질이 깔끔하게 까졌네-, 생각하며 책상 서랍 속 가위를 꺼내 사과즙 포장지 귀퉁이를 잘라내고 달콤한 즙을 한 모금 들이켠다. 그렇게 사무실에서의 내 짧은 아침식사는 끝이 난다.


아주 단조롭고 개인적인 일상이지만 글로 적고 보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이렇게만 적으면 될까? 문득 이 아침식사가 특별한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그 이야기를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메뉴는 매일 아침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직접 준비해주시는 것이다. 이제는 다들 알아서 할 때도 됐는데, 엄마는 여전히 눈뜨자마자 달걀을 삶고 곁들일 만한 과채즙을 살뜰히 챙기신다. 사과즙, 양배추즙, 석류즙, 배도라지즙을 지나 이제는 사과즙의 차례가 돌아왔다.

고요한 사무실, 아침 5분은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그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따뜻한 사랑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마지막 문장을 적고 나니 새삼 이 아침식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습관처럼 먹었지만 매일 이 메뉴를 준비한 엄마의 마음이 어떠한 것일지 생각해보게 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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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는 저녁으로 감자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그 한 끼에 이름을 붙이려다 보니 도무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감자탕 하면 뭐가 생각나? 밥을 먹다가 가족들에게 물으니 의외로 신선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감자탕집에 있던 놀이방이 기억나!”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자주 가던 감자탕집에는 대부분 놀이방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볼풀장과 오락기 몇 대가 설치되어 있었죠. 어른들이 얼큰한 감자탕으로 속을 풀 때 사촌동생들과 함께 신나게 게임을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면 바쁘게 밖으로 달려나가 눅눅한 콘에 민숭민숭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듬뿍 얹어 먹곤 했습니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감자탕집’을 검색해보니 연관 검색어에 이런 키워드가 뜨더군요. ‘감자탕집 놀이방’ ‘감자탕집 게임기’ ‘감자탕집 아이스크림’… 역시 추억을 먹고 사는 건 모두가 똑같은가 봅니다. 별 생각 없이 배달 시킨 감자탕인데, 한 끼에 제목을 붙이려다 보니 잊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둘 떠올라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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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일기’ 단체 메신저 게시판에는 매일 리추얼 멤버들의 일기가 올라왔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한 끼 식사를 구경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아, 이분은 ‘빵순이’답게 오늘도 빵을 드셨구나. 와, 이분은 집에서 두유 요거트를 직접 만들어 드시네? 삼치살미나리덮밥이라니, 나도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비록 랜선 인연이지만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 공유하다 보니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가까운 이웃을 두고 말할 때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안다”고 하는 것처럼, 먹는 얘기에는 아주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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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일기를 적으면서 읽은 책은 배달의민족 뉴스레터에 실린 에세이를 모은 푸드 에세이 북 <요즘 사는 맛>입니다. 이 책에는 한 끼 일기 리추얼 멤버들처럼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여러 작가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를 소개합니다.

“요즘은 요리책을 보면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보고 있다. 기회가 되면 또 두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또 그만큼 초대받고 싶다. 진짜 음식과 진짜 시간과 진짜 공간 속에서 계속 실감하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있다고. 우리가 대화하고 있다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 <요즘 사는 맛>, 요조의 ‘초대 연습’ 중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우리 삶의 지극히 일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을 누구와 함께 먹는지 되새겨보면 우리 삶을 이루는 아주 큰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잘 먹고 또 잘 살아가는 일상의 소중함과 특별함. 우리가 매일 먹고사는 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드셨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오늘 내가 먹은 음식과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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