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명가’ 곽승미 대표를 만나다 - AMORE STORIES
#한강대로100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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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명가’ 곽승미 대표를 만나다

용산에서 가장 먼저 계절이 찾아오는 곳

바람이 제법 더워졌다. 신용산에서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올해로 개업 8주년이 된 제철음식점 ‘목포명가’. 한창 여름맞이 준비에 바쁜 ‘목포명가’의 곽승미 대표를 아모레스토리가 만났다.

 

‘목포명가’ 용산점 앞에서 곽승미 대표

 

 

경력단절 여성을 울린 한마디, “할 수 있겠어요?”


목포명가를 열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작은 무역회사에서 세무 회계를 담당했어요. 한 직장을 10년 가까이 다니다가 결혼하고 임신을 하게 됐는데, 출산과 육아를 하는 몇 개월 동안 저를 대체해 줄 인력이 없었어요.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지만, 회사 여건상 자유롭게 쓸 수 없었죠. 아쉽지만 퇴사를 결정했어요. 첫아이를 낳고 2년 후에 둘째 아이를 낳았어요.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시기가 되니,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벌이로는 아이 둘 키우는 게 많이 벅차더라고요. 원래 계속 직장을 다녔던 사람이라 그런지,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것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고요.

 

재취업을 할 생각은 없었나요?

재취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두세 달 동안은 면접만 보러 다녔어요.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할 수 있겠어요?”였어요. ‘아직 아이가 어린데 할 수 있겠냐’, ‘일을 오래 쉬었는데 할 수 있겠냐’는 의미였죠.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업무도 빨리 다시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대부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나마 연락이 온 회사들은 터무니없는 연봉을 제시했고요. 경력이 10년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경력을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신입 연봉을 제시하는 거예요. 잠시 쉬었다는 이유로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하더라고요. 그런 곳은 제가 가지 않겠다고 했죠. 그러고 나니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시선이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죠. 사실 ’경력단절’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분야는 일거리가 많아서 당연히 재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죠. 막상 내 상황이 되니 절망적이었어요.

 

장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실의에 빠져 3개월 정도를 보내던 중에 지인이 용산에 너무 좋은 가게가 나왔다고 귀띔을 해주셨어요. 제가 여기저기 일을 알아보고 있으니까 알려주신 거죠.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나온 자리였는데, 처음엔 ‘내가 어떻게 장사를 해’ 하는 생각이었죠. 그래도 어떤 자리인지 보러는 가봤어요. 당시에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거의 다 지어지고 내부 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멀리서 사옥을 보는데 정말 크고 화려해서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상주 인원이 거의 만 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신용산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이 주변 상권은 소위 ‘함바집’으로 불리는 현장 식당만 있을 때였어요. 아모레퍼시픽을 보고 장사를 하기로 결정한 거나 다름없어요. 아마 그날 아모레 건물을 보지 못했다면 안 했겠죠. 시기도 좋았고, 운이 좋았어요.

 

왜 '목포명가'를 하기로 결정하셨는지요?

처음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하려고 했어요. 장사 경력이 없으니 프랜차이즈 카페라면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희 이모가 강남에서 ‘목포명가’를 운영하시는데, 당시에는 지점이 없을 때였어요. 장사를 오래 하셨으니까 이모에게 조언을 구했죠. 이모가 프랜차이즈는 편하긴 하지만 이익이 많이 남지 않을 거라며, 그러지 말고 목포명가 지점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때 전 요리 솜씨가 전혀 없었어요. 나중에 배우면서 실력을 키운 케이스예요. 제가 식당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이모가 음식 레시피부터 주방 제품, 거래처, 직원 구인까지 다 도와주시겠다고 하더라고요. 개업하고 한 달 정도는 상주하시면서 운영을 도와주셨고요.

 

가족들이나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남편이 오히려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줬어요. 재취업도 안 되고 뭐라도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나 봐요. 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우리 살고 있는 집 날리는 거라고 생각하자, 당신 탓하지 않을게.’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은근히 의지가 됐어요.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 진짜 한다!’ 한 거죠(웃음). 마음속으론 망할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난생처음 하는 거니까 잘 안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아직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경력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아쉽진 않으셨어요?

장사를 하면서 제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작은 가게를 해도 회계 운영은 꼭 해야 하니까요. 세무사에게 맡긴다고 해도, 제가 회계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거든요. ‘내 경력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결코 그냥 사라지진 않는구나’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했죠.

 

개업 후 반응은 어땠나요?

저희가 6월 한창 더울 때 개업했는데, 오픈하자마자 물회가 날개 돋친 듯이 나가더라고요. 주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거든요. 더운 날 일하고 먹기에 딱 좋은 메뉴였던 거죠.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 운 좋게 개업하면서부터 잘 된 것 같아요.

 

 

목포명가 용산점 전경

 

 

제철의 맛, 가장 먼저 계절을 만날 수 있는 곳


목포명가 본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본점에서 기본 레시피는 가져왔지만, 메뉴 구성도 레시피도 조금씩 달라요. 음식 맛도 조금씩 다르죠. 본점의 경우 정통 전라도 스타일을 고수한다면, 용산점은 조금 더 깔끔한 맛을 추구해요. 이 부근에는 젊은 분들이 많아서 맛이 너무 강하면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지점마다 식당의 규모나 타깃 층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되는 것 같아요.

 

목포명가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메뉴는 무엇인가요?

목포명가는 제철음식집이에요.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죠. 봄철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탕과 물회, 갑오징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대방어를 맛볼 수 있어요.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으라면 대방어예요. 직접 담은 묵은지와 완도산 곱창 돌김이 대방어와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특히 묵은지는 수차례 시도해서 완성한 레시피로, 칼칼하면서 새콤한 맛이 대방어에 풍미를 더해주죠. 요즘 같은 5월에는 민어탕과 물회, 갑오징어 숙회를 추천해요.

 

 

겨울철 대표 메뉴 대방어와 5월 대표 메뉴 물회와 갑오징어 숙회

 

 

제철음식집만의 매력이 있다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계절마다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1년 내내 같은 메뉴면 살짝 지겨울 수 있잖아요.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손님들이 ‘이번에 가면 메뉴가 바뀌었겠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오세요. 그래서 저희는 철마다 손님들이 조금씩 달라요. 가을 되면 전어 좋아하는 손님 오시고 겨울 되면 방어 좋아하는 손님이 오시죠. 계절이 바뀌면 ‘이제 그 손님이 오실 때가 됐는데’ 하면서 기다려지기도 해요. 제철을 맞은 신선한 재료로, 그 계절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게 목포명가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레시피 개발은 어떻게 하시는지?

‘먹방’을 의무적으로 찾아 보는 편이에요. 보다가 손님들이 좋아하실 만한, 우리 가게와 잘 맞을 것 같은 메뉴가 나오면 레시피를 찾아 보죠. 손님들 입맛에 맞게 비율을 바꿔보면서 레시피를 수정해요. 원래는 ‘목포명가만의 음식을 해야지’ 하는 고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트렌드가 계속 바뀌잖아요. 신용산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고객들도 계속 유입되고요. 근본은 잃지 않되 새로운 음식을 계속 개발하려고 해요.

 

 

힘든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단연, 코로나 시기였죠. 매출이 가장 높은 연말에도 2인 이상 모이지 못했고, 문도 일찍 닫아야 했으니까요. 힘든 일은 몰려서 온다더니, 장사가 안 되면서 힘든 일들이 꼬리를 물면서 생기기 시작했어요. 직원과의 갈등도 생기고, 마음이 힘들어서 앓아눕기도 하고요. 솔직히 그땐 그만 둘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충동적으로 가게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거두었죠. 단골손님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벌어 놓은 돈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죠. 1년이면 끝나겠지, 2년이면 끝나겠지 하며 버텼는데 3년을 가더라고요. 직원들 월급날이면 스트레스 받고, 대금 지불할 게 있으면 또 스트레스 받고. 그걸 3년 가까이 하니까 나중엔 번아웃이 왔어요.

아모레퍼시픽 직원분들에게 아직도 감사한 게, 저녁에 오셔서 회는 못 드셔도 밥을 많이 드셨어요. 그 매출로 간신히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었죠. 그래서 지금도 저녁에 식사 메뉴를 팔아요. 저희 같은 횟집은 보통 저녁에는 식사 메뉴를 안 하거든요. 식사보다 회를 파는 게 가게 입장에서는 훨씬 이익이니까요. 물론 회 드시는 손님만 받으면 돈은 훨씬 더 많이 벌겠지만 그때 너무 감사한 기억에, 연말을 제외하고는 저녁에도 식사를 팔고 있어요.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당시에 무기력함이 너무 심했어요. 가게에서도 넋을 놓고 있고, 집안일도 미뤄두고, 가족들에게도 매일 짜증을 냈죠. 지금 돌아 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때 가장 힘이 되어준 게 남편이에요. 매일같이 힘들다고 말해도 싫은 기색 없이 ‘그래, 당신 힘들지, 당연히 힘든 거야’라고 얘기해줬어요. 거창한 위로를 해주는 게 아닌데도 엄청난 위로가 되더라고요. ‘맞아, 지금 내가 힘든 게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책하지 않고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바꾸려 노력했어요. 남편 말처럼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시기에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평소엔 제가 하소연을 하면 냉정하게 해결책부터 찾는 사람인데, 제가 정말 힘들 때는 많이 들어주고 위로해 주더라고요. 가족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었죠.

 

직원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장사를 하며 가장 힘든 게 직원 관리예요. 대부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라 자신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 가게는 이렇게 한다고 알려드려도 본인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죠. 그걸 설득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중간에 못하겠다고 나가는 분도 있었고요. 갈등을 줄이기 위해 화법을 많이 바꿨어요.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지시하던 말투를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하며 부드럽게 바꿔보니 조금씩 조율이 되더라고요. 어떨 때는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애교도 부리고요. ‘내가 사장인데’ 하는 마인드를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는 직원들과 척하면 척, 합이 맞죠.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장사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정말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 코로나가 회복되어가고 있을 때였는데,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뜸했던 단골손님이 오셔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 가게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데 폐업 안 하고 이 자리에서 음식 계속 해주셔서 고맙다고요. 코로나 때 정리한 가게들 많았잖아요. 그 말 듣는데 조금 울컥하더라고요. 그동안 고생한 걸 누군가 알아주는 것 같아서, 그분의 진심이 느껴져서요. 힘들어도 버티길 잘했다, 장사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죠.

 

 

워킹맘 사장님이 ‘워라밸’을 찾는 방법


가게를 운영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장님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생이에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등교시키고 집안일 좀 하다가 10시쯤 출근해요. 재료를 손질하고 가게에서 아침을 먹어요. 제가 먹어봐야 맛을 확인할 수 있어서 웬만하면 아침은 가게에서 먹으려고 해요. 점심 장사를 하고 손님들이 빠지면 1시가 좀 넘거든요. 다시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하교시키고 학원을 보내요. 그러고 나면 저녁 6시예요. 다시 식당에 와서 저녁 장사를 하죠. 밤 9시 반에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면 10시가 넘어요.

 

정신 없이 하루가 흘러가네요.
개업하셨을 때는 아이들이 더 어렸을 텐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어린이집과 친정엄마 덕을 많이 봤어요. 요즘은 어린이집이 잘돼있어서 저녁 7~8시까지도 아이들을 봐주거든요. 친정엄마가 도와주셔서 그것보다는 일찍 집에 데리고 올 수 있었지만요. 초반에 가게가 자리를 잡던 시기에는 오후 브레이크 타임도 없었고 밤 11시 넘어서야 퇴근을 해서 아이들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었어요. 아이들을 많이 못 보는 게 가장 힘들었죠. 아이들이 어디 가서 “우리 엄마는 밤에 와서 엄마를 못 봐요” 할 때 특히 마음이 안 좋았어요.

 

일과 가정, ‘워라밸’을 어떻게 챙기시는지요?

평일에 늦게 끝나니 주말은 오롯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명절이나 공휴일도 웬만하면 쉬는 편이에요. 명절 같은 대목에는 쉬는 게 조금 아깝긴 하죠. 명절 보내고 출근하면 주변 사장님들이 ‘장사 잘됐는데 왜 쉬었냐’고 되레 아쉬워하세요. 그래도 저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택하는 편이에요. 평일엔 등학교시킬 때 잠깐 보는 거지 실질적으로 같이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거든요. 그래서 주말과 쉬는 날은 되도록 아이들과 보내려고 해요. 자영업자들은 이렇게 나름대로의 ‘워라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이(間)가 좋은 관계여야 사이좋을 수 있다


이렇게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애들 학원비라도 벌어 보려고 시작했는데, 갈수록 ‘내 것’이 생기는 기분이 들어요. 이 일은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좋은 재료인지 아닌지 구별해낼 수 있는 눈’처럼 경력이 없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요. ‘이건 나 밖에 모르는 것,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이 생길수록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내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일하기 싫다는 생각은 안 하세요?

글쎄요. 일하기 싫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육아를 할 때도 아이만 보고 있으려니 좀 답답하더라고요. 물론 아이가 너무 귀엽고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행복도 있었지만, 아이가 내 세상의 전부가 되니까 점점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끔은 일이 제 삶을 지탱해 준다는 느낌도 들어요. 일하고 아이 키우면 스트레스를 느낄 겨를이 없거든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니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하는 걸 모를 정도로요.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장사가 어려울 때도 포기할 수 없었던 신념은 무엇인가요?

재료요. 저희처럼 생물을 쓰는 가게는 재료의 신선함이 맛을 좌우해요. 저희는 재료를 당일에 받아쓰고 선어보다는 활어를 선호해요. 매일 주문하고 그날 안 들어오는 재료는 팔지 않죠. 재료가 좋지 않으면 손님들이 제일 먼저 알아차리세요. 그래서 장사가 안 되는 가게일수록 재료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이 ‘이 집 장사 안 되니까 재고 쓰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거든요. 저는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장사가 안 될 때 재료에 더 많이 신경 썼어요. 생물을 쓰는 건 쉽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재료만 잘 써도 차별화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신선한 재료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요.

 

장사를 하며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있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예요. 직원들과도, 손님들과도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해요. ‘가족 같은 직원’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반면, 저는 ‘직원은 직원’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하려고 해요.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바라는 게 많아지거든요. 돈을 드리는 만큼만 요구해야 하는데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적당한 사이를 유지하려고 하죠. 손님도 마찬가지예요. 돈을 받는 대가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잖아요. 최선을 다해 음식을 내어드리고, 친절하게 접객하지만 불합리하게 과한 요구를 하시면 그건 어렵다고 딱 잘라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힘든 손님도 많은가요?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소리지르고 삿대질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면 저도 말이 좋게 나가지 않는데, 그러고 나면 많이 속상하죠. 다행히 그런 분들은 많지 않아요. 신용산에서 장사하면서 좋은 점은 힘든 손님들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보통은 신사적이고 상식적이시죠. 소위 ‘진상 손님’은 어쩌다 한 번이에요.

 

 

별일 없는 하루, 무탈함이 행복이다


기억나는 아모레퍼시픽 손님이 있다면?

서경배 회장님이 임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러 오신 적이 있어요. 회장님이라면 막연히 근엄하실 줄 알았거든요. 근데 회장님은 굉장히 소탈하시고 에너지가 넘치시더라고요.

또 한 명은, 결혼이 너무 하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없다고 오실 때마다 누구 좀 소개해달라고 하던 아모레 직원분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할 여자라면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그날은 제가 다 기분이 좋고 너무 신이 나더라고요. 서비스도 막 드렸죠. 그런 맛에 장사하는 것 같아요. 와보시고 맛있어서 부모님 데려오시는 분들, 퇴사하고도 목포명가 생각나서 용산까지 찾아오셨다는 분들, 나가면서 너무 맛있었다고 ‘엄지척’ 해주시는 분들 모두 기억에 남아요.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 몇 년 사이, 이 부근에 핫플레이스가 많이 생겼잖아요. 젊은 직원분들도 점심으로 트렌디한 음식을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저희가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이기도 하고, 점심 식사 메뉴가 따로 있는 걸 모르셔서 점심에는 많이 찾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이 기회를 빌려서, 점심 메뉴로도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요. 회덮밥과 낙지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저희 대표 점심 메뉴고요, 미나리 보리새우전도 젊은 입맛에 맞춰서 새로 메뉴에 넣었어요. 점심에도 많이 찾아주세요.

 

 

목포명가 대표 점심 메뉴 회덮밥과 낙지비빔밥, 멍게비빔밥

 

 

또, 자영업자들 힘들다고 하지만 저희만 힘들겠어요. 경기가 안 좋을 때 힘든 건 대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 같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모레가 잘되면 매출 올랐다고 회식도 많이 하시고, 성과금 나와서 기분 좋아서 외식하는 일이 많아지잖아요. 그러면 저희도 잘 되는 거죠.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는 얘기 꼭 전하고 싶었어요.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이대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 이 자리에서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일하고 싶어요. 저는 힘이 되는 한, 일을 계속 하고 싶거든요. 같은 자리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단골손님들이 오면 너무 반갑기도 하고요. 여태까지 해온 경험도 있고, 앞으로 더 일하면 그만큼 경험이 더 많이 쌓일 테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장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무탈함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가족들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별일 없이 잘 크는 게 저의 행복이죠. 목포명가도 큰 굴곡 없이 꾸준히 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잘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맛있게 드셔주시고, ‘잘 먹었어요’라는 말을 듣는 걸로 충분해요. 지금 이대로, 늘 지금 같으면 좋겠어요.

 

 

‘목포명가’ 용산점에서 인터뷰 중인 곽승미 대표

 

 

epilogue
사회가 말하는 ‘경력단절’에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경력을 완성해 나가고 있는 곽승미 대표. 곧 제철 맛집 목포명가가 열어 줄 여름의 맛이 기대된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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