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즐기자? - AMORE STORIES
#Exciting Changes 칼럼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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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즐기자?


 변화는 불편하다. 변화는 두렵다.

 간혹 변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변화를 불편해하고 두려워한다. 변화는 왜 불편하고 변화는 왜 두려울까?

 우리는 익숙함을 선호하고 변화는 이 성향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익숙함을 선호하는 지로 옮겨 간다.

 왜 익숙함을 선호하는가?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큰 노력없이,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서이다.  
 아침에 집에서 일어나면 부엌 어디에 원두커피가 있는지를 알고, 기계를 대략 몇 초를 눌러야 원하는 대로 원두가 갈리는지 안다. 또 물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언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해야 원하는 시간에 집을 나설 수 있는지도 안다. 큰 노력 없이 맛난 커피를 즐기며 학교에 도착하는 기쁨이 적지 않다.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는 느낌이고 이후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함을 당겨서 보상해주는 보너스 같다.

 지난번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조식이 포함되어 식당에 갔는데 커피가 없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발효차를 몇 잔 마시긴 했지만 커피만 못했다.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시간을 넉넉히 두고 나왔는데, 너무 빨리 나왔다. 아침에 못 마신 커피를 찾아 헤매다가 정작 약속에 늦고 말았다. 익숙하지 못한 곳에 가면 불편하고 일을 그르치기 쉽다.

 삶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사슬이다.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다. 조정을 거듭하여 최적의 방법을 확인하고 이를 일상화한다. 편안함이 뒤따른다. 변화는 이러한 일상을 일그러뜨리고 삶은 다시 불편해진다. 그런데 변화를 즐기라니… 이상한 주문이다.
 문제는 삶의 굴곡이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익숙하게만 진행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변화는 안팎에서 닥친다.

 먼저 안에서 내가 스스로 익숙함을 거부한다.
 맛이 보장된 식당도 연이어 가기 싫다. 새로운 곳을 찾다 실패한다. 다양한 맛을 위한 작은 희생이다. 비슷한 예는 많다.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낯선 곳을 여행한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혼돈과 낯섦을 일부러 찾는다.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지 평생 거기서 살라 하면 싫은 곳을 고생하고 돈을 들여가며 찾아간다. 색다르기 때문에 좋다.
 이러한 변화를 즐기기 위한 조건이 있다. 먼저, 변화를 촉발한 주체가 나 이어야 한다. 곧 내가 원하는 변화이어야 한다. 둘째, 변화의 범위와 정도를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를 넘어서면 변화가 싫다. 예산을 지나치게 넘어서거나, 계획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맛집 탐방, 여행은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두 조건 배후에 있는 공통점은 나의 통제력, 제어력이다. 내가 원할 때 불러일으키는 변화,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 가능한 변화, 모두가 내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힘이 센가? 내가 세상에 대해 발휘하는 제어력이 어느 정도인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밖에서 오는 변화는 좀 다르다. 밖에서 왔기에 내가 개시한 변화가 아니고 내가 바라던 변화가 아니다. 통제하에 있지 않아 이러한 변화는 대체로 불편하고 두렵다. 때론 밖의 변화가 내가 원했던 변화이다. 이를 두고 운이 좋다고 한다. 운 좋기가 쉽지 않다. 운이야말로 내 통제하에 있지 않다. 밖에서의 변화가 싫을 경우 우리는 저항한다. 저항을 통해서 변화를 내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변한 상황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힘은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도 물어야 한다. 나는 힘이 센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 힘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나온다면 슬픈 일이다. 저항이 부질없기 때문이다. 내가 박지성이나 손흥민과 같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고자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부질없는 일이다. 내게는 그런 능력, 그런 힘이 없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이루겠다 매달리면 본인과 주위 모두 힘들다. 이럴 때야말로 우리 합리성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친한 친구가 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세웠을 때 우리는 솔직히 충고해줄 의무가 있다.
 패배주의 색채가 짙다. 약하다고 포기하란 말인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데 어찌할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항이라 늘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저항 자체가 의미 있을 수 있다. 변화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상황이 다른 무엇보다 가치가 있을 때 저항 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 쉽사리 가능한 것을 이루겠다는 것보다 불가능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도가 더 가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도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지금 지키고자 하는 바가 그만큼 가치가 있는가?
 변화에 대한 생각은 이렇듯 힘과 가치에 대한 생각과 같이 가야 한다. 변화를 직면하고 있음에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가 내게 있는가? 그리고 특정 변화를 거부할 힘과 능력이 내게 있는가?  

 짐작하겠지만 이렇게 숭고한 가치는 많지 않다. 또한 변화를 거부할 힘을 가지기 역시 쉽지 않다.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이것이 민낯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원치 않아도 변화는 우리를 휩쓸고 간다. 불가피한 변화에 저항하면 괴롭다.
 어차피 받아들일 바에는 변화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 변화를 즐겨보면 어떨까? 내게 닥친 변화를 평생을 머물며 살고 싶지는 않아도 색다르기 때문에 가보는 이국땅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부러 마음을 내보아 가보면 어떨까?

 글의 끝에서 이 비유가 다시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좋은 방향에로의 변화는 보통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나쁜 방향에로의 변화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두려워해야 할 변화는 대체로 나쁜 쪽에로의 변화이다.

 그래도 변화를 즐기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맞이할 변화라면 자발적으로 가보자는 제안이다. 괴롭게 느껴지는 변화라 하더라도, 내가 마음을 내어 보자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나는 그 변화를 막아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변화를 즐기라는 말 이면에 경고도 있지만 격려도 숨어 있다. 좋은 것도 곧 바뀌어 없어진다는 경고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지혜가 숨어 있다. 그런데 나쁜 것도 곧 바뀐다는, 이 상황도 곧 좋아진다는 격려도 숨어 있다. 돌고 도는 세상이다. 변화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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