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로100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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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막스 김용석 대표를 만나다

반짝이는 ‘핫플’보다 변치 않는 노포를 꿈꾸다

신용산역 뒷골목,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직장인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있다. 신용산에서 생맥주와 먹태가 제일 맛있다는 ‘금나막스’. 2014년 개업해 10년 넘게 신용산 직장인들의 퇴근길 한잔을 책임지고 있는 김용석 대표를 만났다.

 

‘금나막스’ 2호점 앞에서 김용석 대표

 

 

20대의 방황, 30대의 발판이 되다


금나막스를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중국이 유망하다고 해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대학도 중어중문학과로 진학했죠. 졸업을 앞두고 ‘중국 유학을 가느냐, 한국에서 사업을 하느냐’ 기로에 섰어요. 집안 사정 때문에 중국 유학은 포기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죠. 빨리 사업 자본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하던 때였어요. 유흥업소 웨이터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에 15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사회초년생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던 때였어요. 한 달에 5~6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하니 놀랐죠. 그렇게 친구 따라 웨이터로 취직해서 2년 정도 일을 했어요. 낮밤이 바뀌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얼른 자본금을 마련해야겠다는 목표만 보고 버텼죠.

자본금을 마련한 뒤에는 술집을 차렸어요. 초반에는 돈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점점 사업이 어려워지고 동업자들과 갈등이 생기면서 6년 만에 사업을 정리하게 됐어요. 다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이 거의 없더라고요. 제 나이는 어느덧 30대가 되어있었고요. 20대를 방황하며 날려버린 것 같아서 많이 허탈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경험 속에서 깨달은 것도 많았고, 지금 금나막스를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웬만한 일은 헤쳐나갈 수 있는 맷집도 생겼고요.

 

금나막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30대가 되어서도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사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이것도 안 되면 사업은 아예 접자’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 아는 것도 많지 않았고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뭘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술’이더라고요. 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중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게 호프집이었고요.

 

왜 신용산이었는지요?

지인이 이쪽에 살아서 자주 놀러 왔는데, 당시엔 지금처럼 번화한 동네가 아니었어요. 아모레퍼시픽도 막 신사옥 첫삽을 뜨고 있을 때였고요. 식당이나 술집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유독 ‘피씨앤그릴’이라는 프랜차이즈 호프집에 줄을 서는 거예요. 그걸 보고 좀 놀랐죠. 주변을 둘러봤더니 가볍게 2차로 갈 수 있는 술집이 많지 않더라고요. 여기에 2차로 갈 수 있는 호프집을 차리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게 이름이 독특합니다. ‘금나막스’는 어떤 뜻인가요?

나막스는 ‘붉은 메기’라는 생선을 말린 음식이에요. 사실은, 나막스가 예전에 유흥업소에서 팔던 고급 안주예요. 저도 웨이터로 일할 때 알게 되었는데요. 원가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접하기 힘든 생선이라 굉장히 고가에 팔았어요. ‘이 맛있는 안주를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합리적인 가격에 팔면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니까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제 성을 따서 ‘김나막스((金나막스)’라고 지었는데 한문을 ‘금’으로 읽으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금나막스’가 됐죠. 나막스를 많이 알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먹태를 더 많이 찾으십니다(웃음).

 

 

금나막스 본점 골목

 

 

먹태와 나막스로 신용산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금나막스의 주 메뉴는 먹태와 나막스입니다.
이유가 있나요?

처음부터 ‘2차로 오는’ 호프집을 공략했기 때문에 메뉴를 최대한 가볍게 구성했어요. 제가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도 했고요. 손이 많이 안 가는 간단한 안주를 싸게 팔기로 했죠. 이미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와서 메인 안주를 시키긴 부담스럽고 간단한 안주 하나 있으면 딱 좋겠다, 싶을 때 있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2~3천 원짜리 간단한 안줏거리도 메뉴에 많이 넣었어요. 사이드 메뉴는 이윤이 많이 남지 않기 때문에 없는 집들이 많거든요. 손님들이 정말 원하는 부분을 충족하려고 노력했죠.

 

개업 후 반응은 어땠나요?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잔잔~했죠. 당시 이 골목에는 철공소뿐이었고 분위기도 굉장히 어두웠어요. 어두운 골목 제일 안쪽에 있다 보니 가게가 있는 줄도 모르셨을 거예요. 한 분 한 분 단골이 늘고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매출이 점점 올랐어요. 개업 후 3년 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준공되고부터는 매출이 더 많이 올랐고요.

 

 

금나막스 본점 개업 당시

 

 

바로 옆에 2호점과 3호점도 있는데요,
그만큼 장사가 잘 된다는 뜻이겠죠?

개업 후 1년이 지나고부터는 가게가 항상 만석이었어요. 보통 1차로 저녁을 드시고 오시기 때문에,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가 피크타임이거든요. 그 서너 시간에 손님들이 몰리죠. 식사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예측되는데, 술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마냥 손님들을 기다리시게 할 수도 없고, 그냥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가까운 곳으로 지점을 두 개 더 늘렸어요.

 

 

금나막스 2호점과 3호점 ‘용산상회’

 

 

금나막스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요?

먹태와 치킨입니다.
먹태의 경우, 기성품을 쓰지 않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껍질과 살을 분리해요. 먹태가 수분을 흡수하면 바삭함이 없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바삭함을 유지하기 위해 밀폐해서 보관하고요. 그러면 먹태가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지죠. 손님들 중에는 ‘입에서 먹태가 녹아서 없어진다’고 표현하신 분도 있어요.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맛있지 않았는데 손님들의 피드백을 하나하나 반영하면서 맛이 많이 발전했죠. 먹태와 함께 나가는 간장소스도 직접 개발했어요. 먹태머리와 야채를 넣고 끓인 채수, 각종 과일과 간장을 함께 끓이면 덜 짜면서도 아주 맛있는 간장이 되죠. 이 간장이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줄여줘서 먹태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먹태를 보관하는 일만큼이나 간장을 끓이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치킨은 초저녁에 식사 겸해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메뉴예요. 하루에 딱 열 마리만 팔죠. 냉동하지 않은 신선한 닭을 매장에서 직접 튀겨요. 하루에 열 마리만 튀기니까 기름이 깨끗해서 정말 맛있습니다.

 

 

금나막스의 베스트셀러 먹태와 치킨

 

 

의외로 나막스가 아니네요?

나막스는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특유의 향이나 뼈의 딱딱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 반면, 뼈를 씹는 재미와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어요. 나막스에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극강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죠. 별미를 느끼고 싶은 분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요.

 

 

금나막스의 별미 나막스 튀김

 

 

먹태와 더불어 용산에서 생맥주가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요.
생맥주가 맛있는 비결이 있나요?

생맥주는 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생맥주도 생물이거든요. 개봉한지 오래되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빨리 소진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맥주가 잘 팔리는 집일수록 맛있을 확률이 높죠. 계속 순환이 되니까요. 또 기계 청소를 매일 하는 것도 중요해요. 청소를 자주 하지 않으면 기계 안에 이물질이 생기면서 맛이 변할 수 있거든요. 청소를 할 때 맥주를 다 비워내야 하는데, 남은 맥주를 버리기 아까워서 그대로 두는 경우도 많죠. 다행히 저희는 맥주가 빨리 소진되고, 매일 기계 청소를 하기 때문에 신선한 생맥주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함께 밥을 먹으며 ‘식구’가 되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오후 12시 정도에 일어나요. 개인 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 전에 가게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먹태 뜯는 일부터 시작해요. 1시간 동안 먹태를 뜯고 5시에 직원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해요.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영업이 시작되죠. 새벽 1시까지 장사를 하고 퇴근합니다.

 

개인 시간은 하루 3~4시간 정도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일하는 시간이 긴 것 같지만 지점 세 개와 직원들을 챙기다 보면 시간이 늘 부족해요. 약속은 주말에 잡고, 평일은 오롯이 일을 하는 데 써야 하죠. 직장인들이 보시기에는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일과 속에서 나름대로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인데, 손님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가장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였죠. 밤 9~10시가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인데 딱 그 시간부터 집합 제한이었으니까요. 매출의 70% 이상이 줄어들 정도로 직격탄을 맞았어요. 세 개 지점을 모두 운영할 수 없어서 한시적으로 본점만 운영했어요. 빚을 내고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직원들도 격일로 일했어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었어요. 그렇게 2년을 이 악물고 버텼어요. 함께하는 직원들이 버텨줘서 저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였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 시기에 저는 가게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월급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미친 듯이 등산을 다녔어요.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시기이기도 했고, 등산은 김밥 한 줄이면 갈 수 있잖아요. 최소한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었죠. 그 2년 동안 웬만한 산은 다 간 것 같아요. 산에 다녀오면 불안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나아졌죠. 지금도 마음이 시끄럽고 생각이 많아질 때는 산에 가요.

 

 

힘든 시기에 산을 찾은 김용석 대표

 

 

코로나19 시기가 끝나고 매출이 제자리를 찾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나요?

제자리를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코로나 시기에 주변에서 2, 3호점을 닫고 월세라도 줄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들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저에겐 ‘이것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때 가서 매장이 하나밖에 없으면 회복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죠. 힘들어도 2, 3호점을 폐점하지 않고 버틴 덕에 회복 속도가 빨랐던 것 같아요.

 

사업이 어려울 때도 포기할 수 없었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이요. 직원들 중에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있고, 대부분 집안의 가장이거든요. 직원들을 생각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직원들 덕분에 10년 동안 저도 이 일을 계속해올 수 있었으니까요. 밥을 같이 먹으면 식구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밥을 항상 같이 먹어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요. 저에겐 식구, 가족이나 다름없죠. 가족은 나에게 꼭 뭘 주지 않아도,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잖아요. 저에게 직원들이 그런 존재예요.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금나막스’ 직원들과 함께

 

 

아는 사람만 안다는 ‘장사의 맛’


1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돈’이라고 말하면 속물 같겠지만, 일단은 돈이죠. 그리고 손님들이에요. 손님들이 와서 막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괜히 흐뭇해져요. 꼭 내 집에 온 손님들 같아요. ‘내가 이 공간을 잘 지키고 있으니 손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 하는 흐뭇함도 들고, ‘나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긍심도 생겨요. 장사하는 분들은 ‘장사가 힘들지만 중독성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정말 그래요. 기분이 다운되고 힘든 날에도 ‘사장님 너무 맛있어요!’ 이 한마디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생기거든요. 그게 저에겐 장사의 맛이자 원동력이에요.

 

금나막스는 유독 단골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단골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금나막스는 단골 비율이 70~80% 일 정도로 단골이 많아요. 나름의 영업 전략인데요, 자주 오시는 분들에게 꼭 인사를 하고, 작은 거라도 서비스를 드려요. 드리는 게 별 건 아니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나를 신경 써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만큼 자주 오시라는 얘기입니다. 뭐든지 드리겠다! (웃음)
또, 이런 것도 있어요. 손님이 ‘내가 자주 오는 단골집이야’하면서 친구를 데리고 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손님을 막 치켜세워드리는 거죠. 우리 단골 손님이라고 알은 체도 하고, 서비스 안주도 더 넣어드리고요. 그러면 정말 좋아하시죠.

 

 

장사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손님들

 

 

자영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으라는 거예요. 남들이 좋아하는 거, 남이 보기에 멋있는 거 말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아는 거요. 유튜브 보면 ‘요즘 이 아이템이 유행이다’, ‘이 장사하면 월 천만 원 번다’ 하는 영상들 많잖아요. 그런 것을 따라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손님들이 따라오게 하면 언젠가는 되더라고요. 그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 수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그 시간도 덜 힘들게 버틸 수 있죠

 

 

금나막스 X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직원들 중에도 단골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는 기혼 여성 모임이 있어요. 다들 술을 워낙 좋아하시는 ‘주당’인데, 가정이 있으니 자주 모이지 못하잖아요. 한 달 중 이날만을 기다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금나막스에서 1차부터 마지막차까지 네다섯 시간을 쭉 달리시는데, 즐겁게 드시면서 스트레스 풀고 가시는 걸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사장님에게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의미인가요?

‘꿈같은 이웃 사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개업 초기엔 아모레퍼시픽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며 희망을 가졌거든요. ‘장사가 더 잘될 거다!’(웃음) 지금은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이라기보다는 이웃사촌이 된 것 같아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꿈같은 존재가 이토록 친근해지다니 너무 신기하죠.

 

금나막스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으신지요?

뭔가를 확장하거나 늘릴 계획은 없습니다. 브랜드의 세계화나 프랜차이즈 같은 원대한 목표도 없어요. 저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트렌드에 민감하지도 않고요. 누구나 BTS가 될 순 없잖아요. 지금 이 모습, 현재에 만족해요. 다만, 금나막스를 오랫동안 운영해서 나중에 ‘노포’로 불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그러려면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게를 유지해야겠죠. 예전에 일본 소도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어르신들이 작고 오래된 맥주집에 보행기를 끌고 와서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어르신들의 보행기가 쪼르르 서있는 모습이 굉장히 정겨웠어요. 손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편히 들러서 맥주 한잔할 수 있는 가게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제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행복’인 것 같아요. 20대 방황의 시기를 통과해서 욕심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고 지금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내 일로써 가치 있는 돈을 벌고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금나막스’ 본점에서 인터뷰 중인 김용석 대표

 

 

epilogue
지금까지 그래왔듯, 금나막스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용산의 노포로 남길 바란다는 김용석 대표. 그로 하여금 반짝이고 화려한 것들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변치 않는 것’임을 배운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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