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기후변화와 차 - AMOR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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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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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기후변화와 차



강호정(姜鎬玎) 교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주요 경력
  • 2007 -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
    2013 - 2014 미국 Princeton University 방문교수
    2001 - 2007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조교수, 부교수
    1999 - 2001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후 연구원

  • 학력
  • 1986 - 1990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이학사
    1993 - 1995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95 - 1999 영국 University of Wales, Bangor, Ph.D.

  • 대표 저서
  • 2020 다양성을 엮다, 이음출판사
    2012 와인에 담긴 과학, 사이언스북스




기후변화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극한 기상현상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 이를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작년 여름만 해도 북유럽 국가와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을 보였고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은 100년 만의 대홍수로 큰 피해를 겪었다. 미국 서부에도 매년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온이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강수량과 기후 패턴이 변화해 어느 곳에선 홍수가 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선 가뭄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이런 기후 변동은 기상재해 형태로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농업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온도가 상승하면 곡물이 더 잘 자랄 수도 있지만, 가뭄이 심해지거나 날이 더워져 병충해로 작황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기후변화가 차(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다.


<제주 오설록 서광차밭>



사실 차는 주식으로 쓰이는 곡물처럼 칼로리 섭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맛이 중요한 작물이다 보니 벼나 밀은 생산량이 중요한데 반해, 품질 변화가 더 큰 관심사다. 가뭄이 극심한 해에는 보통 찻잎의 카테킨이나 메틸잔틴(Methylxanthine) 같은 이차 대사물질 양이 많아져 차 맛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거꾸로 장마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차의 품질은 떨어진다고 보고된 바 있다. 즉, 주요한 차 산지에 강수량이 증가한다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의 품질은 점자 나빠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집중호우로 인해 토사가 유출되고 차밭의 토양이 물에 잠기면 차나무 뿌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중국의 대표적 차 산지인 윈난성(Yunnan, 雲南) 지방의 기후변화 영향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이 지역은 산업혁명 이후 연평균 온도가 1.5도 증가하고 장마는 20일 이상 늦게 시작하는 것이 관측됐다. 장마 기간이 줄어들고 건기가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윈난성의 차 생산량이 증가하고 품질도 좋아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기후변화가 차나무 성장을 억제하고 새싹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현상도 함께 관찰됐다. 즉 현재까지 기후변화로는 차 생산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기후변화 추세가 계속된다면 윈난성 지방의 차 생산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차 산지인 인도 아삼(Assam) 지방도 여름에 35도 이상 되는 날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같은 고온이 지속되면 차나무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즉 지금 같은 이상기후가 지속된다면 언젠가 아삼차 생산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폭등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 오설록 서광차밭>



다만 일반적인 작물은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기 마련이지만, 차나무에서는 독특한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초록 애매미충(green leaf-hopper)’에 대한 이야기다. 이 벌레는 차나무를 갉아먹지만, 갉아먹힌 차나무가 방어물질을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차의 풍미를 좋게 만들어준다. 초록 애매미충 때문에 때문에 피해를 본 차밭은 생산량이 줄어들지만, 단가가 높은 고급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활용한 작법은 대만에서 시작돼 확산 중인데, 현재 기후변화 추세라면 오히려 고급 녹차의 생산이 더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차나무를 잘 키우기 위한 노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산림농업’은 차나무를 다른 종류의 나무나 관목들과 섞어 키우는 작법이다. 이를 통해 그늘을 늘려 온도를 낮게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식물의 뿌리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땅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 또 차나무를 심을 때 보통은 ‘삽목’ 방식을 이용해왔는데, 최근에는 삽목 대신 씨를 뿌려 키워 환경에 대한 저항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활용하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다방면의 기술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좋은 품질의 녹차를 계속 생산하기 위한 대응 전략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본 칼럼은 매일경제 ‘강호정의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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