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을 넘어 자신의 시대를 살아라. 1편 - AMORE STORIES
#여성의 날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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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넘어 자신의 시대를 살아라. 1편



작가 소개 이지은

30년 째 프랑스에 거주하며 장식미술과 오브제 아트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장식미술학자. 저서로는 <귀족의 시대>, <부르주아의 시대 >,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가 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 (International Women’s Day)은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섬유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고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시작됐다. 일 년 뒤 미국 전 지역에서 여성들이 세계 모든 나라가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1910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여성 노동자 국제 컨퍼런스에서 여성의 날을 국제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17개국에서 온 100여 명의 여성들이 만장일치로 그 제안에 동참했고 1911년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등에서 이 날을 처음 기념했다. 그리고 유엔은 70년 후인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어머니날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모성이나 사랑을 주제로 한 기념일은 많아도 여성의 참정권이나 균등한 교육 기회를 위한 기념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 유일하다. 그야말로 의미 있는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언뜻 여성만을 위한 기념일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2 022년 세계 여성의 날 조직위원회(IWD2022)가 발표한 캠페인 주제 ‘Break The Bias(편견을 깨라)’만 해도 그렇다. 커뮤니티와 직장, 학교,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에 관련한 편견에 맞서자는 게 올해 캠페인의 핵심이다. 캠페인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으로 엑스(X)자를 표시하는 셀카를 찍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는, 평화적이고 휴머니티 가득한 캠페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당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침해받고 의심받는 인권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념이라고나 할까.
특히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기업 아모레퍼시픽에게 세계 여성의 날은 그 어떤 기념일보다 소중하고 의미 있다.



시대를 앞선 프랑스 1세대 여성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이곳 파리는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의 도시이긴 하지만 좀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편견이 남아 있다. 파리에서 생활한 지 30년이 가까워지다 보니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과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한 프랑스 여자가 떠오른다. 인권 캠페인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실상은 늘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휴머니티를 작업과 삶으로 펼쳤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다.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가구는 전 세계 디자인 그루들의 컬렉션 아이템으로 등극한 지 오래이며, 이탈리아 가구 제작업체인 카시나(Cassina) 에디션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10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파리 루이 비통 재단에서 열렸던 샤를로트 페리앙의 특별전 은 “건축 디자이너의 전시는 유명 화가의 전시에 비해 인기가 없다”는 미술계의 통념을 단번에 무너트리며 대성공을 기록했다. 전설적인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샤를로트 페리앙. 그의 어떤 부분이 편견을 깨부수는 혁신적인 면모였는지 묻는다면 전설이 시작된 출발점인 192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Visitors at « Charlotte Perriand Inventing a New World(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 Octobre 2019 – 24 Février 2020. Artist credit: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Felix Cornu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Visitors at « Charlotte Perriand Inventing a New World(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 Octobre 2019 – 24 Février 2020. Artist credit: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Felix Cornu




성별로 규정하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
‘옴므 누보(homme nouveau)’


1927년 샤를로트 페리앙은 장식미술학교 졸업장을 손에 쥔 24살의 신출내기였다. 파리 장식미술학교는(Ecole de l’Union centrale des arts décoratif)는 1897년 설립 당시부터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학생을 받아들였으며, 여성을 디자인과 공예 전문인으로 키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특히 여성신문을 펴내며 남녀 차별 없는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장했던 모푸 남작부인(comtesse de Maupau)이 이사진으로 활동하면서 1920-30년대 여성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적극 양성했다. 번듯한 집안의 규수라면 피아노와 수예를 배우고 결혼해 남편을 섬기며 아이를 키우는 게 상식이었던 시대. 페리앙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가 세운 건축 에이전시에 당당하게 발을 디뎠다. 당시 40살이었던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과감하고 아방가르드한 설계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스타 건축가였다. 그런 그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 졸업생, 그것도 당시 건축계에서는 극히 드문 여자를 받아들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예나 지금이나 경력 하나 없는 졸업생에게 유명 건축 에이전시의 문은 좁고도 좁은데 말이다.


(좌)샤를로트 페리앙과 그녀의 초기 대표작'지붕 아래의 바'(우)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답은 같은 해 샤를로트 페리앙이 졸업작품 격으로 발표한 ‘지붕 아래의 바(bar sous le toit)’라는 작업에 있었다. ‘지붕 아래의 바’는 페리앙이 자신의 아파트 구석에 꾸몄던 미니 바에서 비롯한 작업으로 반형 형태의 알루미늄 바와 강철 크롬으로 만든 바 의자, 역시 알루미늄 다리에 유리를 놓은 테이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 아래의 바’를 눈여겨본 것은 르 코르뷔지에뿐만이 아니었다. 아르데코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손꼽히는 말레 스테벵스(Robert Mallet Stevens) 역시 ‘지붕 아래의 바’에서 가능성을 보고, 유명 컬렉터였던 노아이유 가문의 이에르 빌라(Villa d’Hyères)에 놓을 용도로 샤를르토 페리앙의 테이블을 추천했다. 여담이지만 말레 스테벵스가 디자인한 노아이유 가문의 이에르 빌라는 아직까지도 1920년대 가장 혁신적인 건축물로 손꼽힌다.

르 코르뷔지에와 말레 스테벵스가 ‘지붕 아래의 바’에서 목도한 것은 비단 알루미늄이나 강철 크롬 같은 당시의 신소재로 만든 가구뿐만이 아니라 지붕 아래에 바를 꾸미고 일상을 즐기며, 케케묵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기술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신세대, 옴므 누보(homme nouveau)의 출현이었다. 1927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지붕 아래의 바’를 소개하며 페리앙은 ‘옴므 누보’를 이렇게 서술한다.
“옴므 누보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다. 그는 비행기와 자동차를 이용하고,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며, 휴식을 위해 집을 꾸민다. 그는 공간과 빛, 창의력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개인이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 Charlotte Perriand - La Maison au bord de l’eau(물가 위의 집), 1934 » Reproduction 2019 with the participation of Sice Previt, View of the installation,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 Octobre 2019 - 24 Février 2020.
Artist credit: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샤를로트 페리앙은 자신을 성별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자이기 이전에 정겹게 타인을 맞아들이는 축제와 파티를 좋아하고 동시에 조용한 산의 아침 햇살을 찬미할 줄 아는 한 명의 개인일 뿐이었다. 시대와 화합할 줄 알며, 동시에 시대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당당한 개인으로서의 자각은 그녀의 독자적인 디자인 행보의 근간이기도 하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렸던 1927년부터 1999년 타계하기까지 무려 72년 동안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활동했던 샤를로트 페리앙의 디자인 철학은 늘 ‘옴므 누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1920년대와 30년대 잡지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였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걸어갔던 길은 그 누구도 걷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길이었다. 1927년부터 세상을 떠난 1999년까지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 용감하게 개척자의 길을 걸었던, 그리하여 디자인사에 샤를로트 페리앙이라는 이름을 새긴 여성.


“할 수 있을까?” 망설이고 있다면, 편견에 갇혀 용기가 꺾인다면,
한번쯤 샤를로트 페리앙과 그녀의 ‘옴므 누보’를 생각해보자.
시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호흡했던 그녀의 삶이 용기를 불어넣는 지렛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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