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립스틱이라고 합니다. 저를 포함한 저의 가족과 친구들이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저희들의 얘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저는 1950년대 중반 태평양의 '립스틱 ABC' 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니 미군을 통해 밀수된 서양 화장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더라고요. 저의 탄생과 밀수 화장품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립스틱이라는 저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외국 영화 속 여배우들이 저보다 먼저 태어난 빨간 립스틱 언니를 바르고 나와 주목받기 시작하며 사람들이 전반적인 화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 대한민국의 1960년대 당시는 경제적인 상황때문에 화장 자체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어요. 그래서 존재만 알렸고 널리 이용되지는 못했답니다.
1970년대
이제 먹고 살만하면 저 좀 사용해주세요~
1970년대 미보라 '입술에서 입술로' 광고 포스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신문, 잡지, 텔레비전, 영화 등 매스 미디어 덕분에 한국 여성들은 자연스레 메이크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그 덕분에 저도 이때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답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화장의 보편화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화장 문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회사가 바로 저를 탄생시켜준 태평양이죠. 미보라의 '입술에서 입술로' 광고 캠페인은 저희의 중요성을 한국 여성들에게 일깨워 준 일등공신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때는 전반적인 메이크업 트렌드가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성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1960년대 유행하던 저희 레드 립 언니에서 자주빛 컬러 친구로 바뀌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원래 제 컬러는 이거라구요!!! 아시겠어요!!!
1980년대 나그랑 광고 포스터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희 립스틱을 포함한 컬러 메이크업 시장 전체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어요. 당시 사람들에게 문화 혁명과도 같았던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브라운관 속 배우, 모델, 가수 등이 여성들의 색조 화장 본능을 일깨운 것 같아요. 개성을 추구하고 화장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메이크업 시장은 더욱 활성화 됐습니다. 여기에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전후로 화장품 수입과 해외 여행 자유화가 더해졌어요. 외국의 다양한 컬러 메이크업 제품이 국내로 유입됐고 저는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그 덕에 사람들의 메이크업이 더욱 다양하고 과감해졌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는 저희들의 컬러가 다변화하기 시작했는데, 태평양의 메이크업 브랜드 나그랑이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파스텔 핑크 컬러를 출시하며 립 컬러의 다양화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배우 황신혜가 핑크 립스틱을 바르는 나그랑의 핑크 립스틱 CF가 TV로 나오면서 핑크 컬러가 대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당시 황신혜가 립스틱 완판녀의 시작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1990년대
제 친구들을 소개할게요
1990년대 마몽드 모델 이영애의 TV 광고
1990년대부터는 예쁜 여배우 언니들이 사용한 립 컬러를 바탕으로 립 메이크업 트렌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김혜수, 이승연 언니와 같은 스타들의 주도와 제 사촌 동생 마몽드의 밍크 브라운이 큰 히트를 하며, 브라운 계열의 컬러가 이 시기를 장악했답니다. 걸크러쉬라는 말은 없었지만 톡톡 튀고 당찬 '요즘 여성'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걸로 기억이 나요. 특히 뷰티의 대표 아이콘 김혜수 언니의 드라마 속 레드 와인 립 컬러는 젊은 여성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have item)으로 등극하고, 본인 입술보다 더 크고 짙은 아웃 커브 립 라인의 표현도 함께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청순한 네추럴 룩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메이크업 스타일링 자체가 네추럴로 변하면서 립스틱 위에 덧바르는 용도로 사용했던 저의 조카 립글로스가 단독으로 사용되어 많이 놀랐습니다. 기존의 저희 립스틱보다 투명하고 낮은 컬러감이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잘 어울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면, 1999년 '밀레니엄', '테크노', '사이버' 등의 퓨쳐리즘(futurism)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하이글로시와 펄과 글리터가 다양하게 혼합된 텍스쳐의 립글로스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립 제품 판매량의 절대 강자였던 저희 립스틱을 립글로스가 역전하여 립 카테고리의 양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대
저의 새로운 딸기 우유 드레스가 예쁘지 않아요?
2000년대 립 메이크업 트렌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기능, 형태, 텍스쳐의 저희 가족과 친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팁 브러쉬에서 튜브 형태의 립글로스로, 입술 위에 얹히는게 아니라 물들이는 틴트의 출현은 기존에 저희에게만 익숙해져있던 여성들에게 많은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명 '딸기 우유' 컬러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청순함과 섹시함 두 가지 메이크업 룩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메가 트렌드였던 이효리 언니의 스모키 메이크업에는 핀업걸(pin up girl) 느낌을 완성해주는 컬러로, 김하늘 언니의 네추럴 메이크업에는 러블리한 청순함을 표현할 수 있어 빅히트를 쳤어요. 더불어 2000년대 후반부터는 '000 립스틱'으로 불리며 '스타 립스틱 마케팅'이 시작되었답니다.
2010년대
다양하고 많아진 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저의 TV 출연
2010년대 드라마 속 립 메이크업 (송혜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전지현 '푸른 바다의 전설')
2010년대에는 저희를 만든 브랜드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트렌드가 다변화됨에 따라 립 카테고리가 더욱 세분화되어 립 크레용, 립 마커, 립 락커등의 새로운 친구들이 등장했습니다. 간편, 고발색, 롱래스팅, 립 앤 블러셔등 기존에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 컬러, 기능, 미용법 등을 앞세워 마켓 세그멘테이션에 성공하며 브랜드들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불현듯 라이징 이슈가 된 친구들도 있는데요. 이는 바로 셀럽의 등장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립스틱 완판녀'는 이 시기부터 등장했는데요. 드라마 속 PPL로 저희 립스틱이 나왔고 많은 브랜드가 마케팅 효과를 누리며 매출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저를 만들어 주신 아모레퍼시픽의 사례로는 전지현의 '수프림 핑크(헤라 제품)'와 송혜교의 '베이지 쉬폰(라네즈 제품)'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살라 컬러
이후 2015년에는 팬톤 올해의 컬러인 마르살라(marsala)가 등장합니다. 마르살라는 그야 말로 역대급 파장을 몰고 오는데요. 말린 장미 MLBB(My lips but better) 컬러와 그라데이션 표현으로 대변되는 립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후반부에는 풀립(Full lip)이라고 불리는 아이디얼(Ideal)한 립 표현과 코럴 MLBB, 오렌지 MLBB처럼 확장된 MLBB컬러가 자리잡았고, 지금까지도 메가 트렌드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내 여성들이 가장 무난하게 데일리로 사용하기 좋은 핑크와 오렌지의 중간인 코럴 계열 컬러들이 이때부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어요.
2020년
MLBB + 빈티지 뉴트로 = 번트(Burnt)
번트 컬러
2020년을 맞은 지금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아모레퍼시픽 여러분은 어떤 립 메이크업 트렌드를 알고 있고 있나요? 매트 혹은 글로시 텍스쳐? 틴트? MLBB? 단언하기도 힘들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는 저 역시도 어렵습니다만, 올해 이것만은 꼭 기억하셨으면 해요. 바로 번트(Burnt) 컬러인데요. MLBB가 빛 바랜 말린 장미컬러처럼 튀지 않고 내 입술 같은 컬러에서 시작됐다면, 번트 컬러는 MLBB+뉴트로+지속가능성의 결합으로 강렬하지만 서정적인 빈티지를 담은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MLBB를 '굽고 말리고 태운 듯한 레드 브라운 계열'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끝으로 정리해보면, 지난 80여 년간 립 컬러 트렌드는 레드(50~60's) - 마젠타(70's) – 핑크/파스텔 핑크(80's) – 브라운/레드 와인/투명(90's) – 밀키 핑크(00's) – 마르살라/MLBB(10's) – 번트(20's) 정도로 요약할 수 있어요.
또한 혁신적인 제품 개발로 시장이 세분화되고, 마케팅 믹스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요. 혹시 여러분은 유행 컬러들 중 중복 연상되는 단어들이 보이시나요? 바로 1990년대와 지금 2020년대입니다. 패션·뷰티는 전반적으로 트렌드 주기가 30년 정도라고 하는데, 과연 2030년대에는 2000년대와 같이 저의 딸기 우유 드레스 컬러가 다시 돌아 올지 여러분도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스토리 이제 마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