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뛰어넘는 사람 - AMORE STORIES
#스낵컬처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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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뛰어넘는 사람

 

인터뷰

조광훈 데일리 그라인드

 

 

새 발을 딛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 스낵컬처는 벽을 뛰어넘는 사람, 조광훈 데일리 그라인드 편집장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데일리 그라인드 조광훈 편집장이 넓적한 나무 데크에 두 발을 올린 건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스케이트보드를 타온 햇수를 헤아리면 강산이 두 번은 족히 바뀌었다. 시작은 통이 큰 바지를 입은 껄렁한 형들을 따라하던 취미였다. 거리를 시원하게 누빌 수록 단순한 취미는 일상을 지탱하는 에너지원으로, 그의 안녕을 도모하는 도구로 변했다. 앞으로 그는 보드 위에서 또 어떤 벽을 넘을까. 좀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선명해진 시선으로 발을 구르는 그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 본다.

 

요즘 유난히 비가 많이 왔는데, 다행히 오늘은 아니네요. 짐이 많으셨죠? 

괜찮아요. 보드랑 카메라 가방이거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케이트보드 웹진 ʻ데일리 그라인드Daily Grind’ 편집장 조광훈입니다. 동대문에는 보드 타러 자주 오고 인터뷰도 종종 했지만, 매번 새롭네요. 

 

근처에 있는 훈련원공원 말씀하시는 거죠? 컬트공원이라고도 부른다고요. 

90년대 후반쯤 발견된 스팟인데요. 스케이터들이 직접 기물을 가져다 두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곳이죠.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그중에서도 서울은 이렇게 상징적인 보드 스팟을 찾기 어려워요. 보드가 소음이 크고 통행에 방해 된다며 폐쇄되거나 기물들을 일방적으로 치워버리기 일쑤거든요. 최근에는 컬트공원에도 소형 기물들만 남게 되었어요. 그곳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아쉬운 소식이죠.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었네요. 컬트공원을 비롯한 다양한 스팟에서 촬영한 스케이트보드 클립을 꾸준히 업로드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얼마 전에 ʻ신시대SHinSeEdAe’라는 비디오 프로젝트를 마쳤어요. 어린 친구들을 비롯해서 새로이 주목받길 바라는 스케이터를 촬영했는데요. 주인공 격인 친구가 브랜드 ʻ뉴에라New Era’의 옷을 입고 있는데, 그걸 보자마자 프로젝트 이름으로 삼고 싶더라고요. 마침 그 친구가 ʻ신’씨 성을 가진 스케이터에게 보드를 배웠거든요. 새로운 친구들을 주목한다는 내용과도 잘 맞고요. 결과물은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70-80퍼센트 정도는 만족해요. 

 

이외에도 ‘데일리 그라인드 몽타주Daily Grind Montage’, ‘데일리 리포트Daily Report’라는 클립도 있던데 어떤 차이가 있어요? 

몽타주는 완성도 높은 한 편의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예요. 편집이나 음향도 꽤 공들여 작업하죠. 리포트는 몽타주에서 제외된 B컷이나 하루 기록들을 담는데, 편집도 화려한 기술 대신 컷만 연결해서 붙이고 음악도 즉흥적으로 골라요. 자연스러운 기록이다 보니 훨씬 날것의 느낌도 강하고요. 

 

확실히 리포트에서 역동성이 좀더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하루 일과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일단 8시쯤 일어나면 강아지 밥을 먼저 줘요. 갈색이 약간 섞인 강아지라 이름은 초코예요(웃음).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콘텐츠로 제작할 만한 것들을 탐색하는데요. 해외 사이트나 유튜브를 참고하는데, 요즘에는 독자들이 가벼운 글이나 이미지로 소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 흐름을 따르려고 해요. 큰 이슈가 있다면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기삿거리가 마땅치 않다면 블로그를 업로드하는 거죠. 오후에는 온·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고 콘텐츠 섬네일이나 일러스트, 영상 작업을 해요.  

 

저는 사실 하루 종일 보드를 타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영상부터 정보성 기사 제작, 오프라인 행사와 일상 블로그 운영까지…. 

틈날 때 보드도 타야 하고, 화요일이랑 목요일엔 농구도 가야 해요.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남는 시간에는 온통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농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팬데믹이 한창일 때, 넷플릭스에서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를 봤어요. 그걸 보니까 농구에 푹 빠졌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스케이트보드 이전에는 매일 농구를 했었거든요. 스케이트보드를 줄곧 타온 지금은 기술적으로 더 이상 성장할 게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취미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다시 해보니 옛날만큼 재미있나요? 

그럼요! 상대방을 제쳤을 때도 좋고, 골이 들어갔을 때 공이 경쾌하게 그물을 통과하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그물 없는 골대에서는 재미가 없을 정도로요(웃음). 스케이트보드처럼 농구도 리듬감이 중요한 종목이라 멋있게 하고 싶어서 꾸준히 연습해요. 어릴 때는 돈이 없어서 못 산 공이나 신발 같은 것도 다시 알아보고 하나씩 모으고 있는데요. 그때 꿈꾸던 모습으로 지금의 제가 농구를 한다는 게 감회가 새로워요. 

 

어릴 때 좋아했지만 못했던 걸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재미죠. 

그때는 분식집 가면 잔치국수 하나밖에 못 먹었는데 이제는 비빔국수도 시킬 수 있잖아요. 아마 그런 마음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구에서 운영하는 시민 체육 센터에서 하는 건데, 성인부라서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다양해요. 만나서 열심히 뛰다가 시간 되면 깔끔하게 헤어져요. 뒤풀이 같은 것도 없고요. 이전보다 여자분들도 굉장히 많아졌는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가 개봉한 이후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걸 보고 흥미를 느낀 분들이 꾸준히 하고 실력도 금방 늘어서 신기했어요.

 

 

 

 

그러고 보니 편집장님도 누군가 스케이트보드 타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다고 했죠? 

처음 탄 게 1997년도,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요. 한창 멋 부릴 시기라서 통이 무지 넓은 힙합 바지를 입고 다녔어요.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가다가 보드 타는 형들을 처음 보게 됐죠. 체인을 주렁주렁 달고 힙합 스타일의 큰 옷을 입었는데, 약간 껄렁한 것까지 멋있더라고요. 

 

보드를 되게 잘 탔나 봐요. 

실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요(웃음). 뭘 어떻게 하든 다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저랑 가장 친한 친구도 보드를 갖고 있어서 잘 탔는데, 그 친구한테 보드 좀 빌려달라고 했어요. ʻ틱택Tic-Tac’과 ʻ턴Turn’부터 시도해 보면서 엄청 넘어졌는데도 재밌었어요. 뭔가 조금씩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고, 이걸 하는 저 자신이 좀 멋진 것 같고요. 

 

멋있어 보이는 걸 할 줄 아는 나의 모습이 맘에 들었던 건가요? 

맞아요(웃음). 그때는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게 없으니까 친구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는 게 전부였어요. 이후에 초고속 인터넷이 학교에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을 땐 스케이트보드를 검색해서 GIF로 된 짧게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고 외웠죠. 제가 가진 첫 보드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체육사에서 사준 2-3만원짜리 보드인데요. 그걸 닳도록 타면서 데크와 함께 점프하는 기술인 ʻ알리Ollie’를 연습하는데 1년 동안 성공을 못했어요. 알고 보니까 그때 제 보드가 붕어처럼 끝이 뭉툭하게 생겼었는데, 튕기는 부분에 고무 브레이크가 달려 있어서 기술을 할 수 없는 거였어요. 아예 튕겨지지가 않는 거죠. 

 

아…. 1년 동안 연습했는데! 

잘 몰랐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새로운 보드로 시도하는데 진짜 조금 뜬 거예요. 같이 있던 친구들이랑 다 같이 환호성 지르고 놀라고…. 그때부터 다른 기술도 하나씩 배우면서 학교 끝나고 저녁 먹을 때까지 탔어요.  

 

주변에 함께 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랬는데 고등학교 진학 하면서부터 많이들 그만뒀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교복 대신 사복을 입었어요. 복고 스타일이 유행하던 때라 너도나도 사복을 바짝 줄여 입고 다니는데, 보드 타는 저랑 친구들만 통 넓은 힙합 스타일이었거든요. 동네 주차장에서 보드를 타려는데, 저 멀리 면바지에 체인 달고 머리를 빡빡 밀은 형이 보드를 타는 거예요. 한 살 차이라도 선배는 무서우니까 가까이 가진 못하고 지켜보는데, 그 형이 우리를 먼저 부르더라고요. 

 

왜요…? 

쭈뼛거리면서 가니까 우리를 안다면서 같이 보드 타자고 하더라고요. 스타일만 봐도 무얼 하고 노는지 알 수 있던 거죠. 그 형이 조세호예요. 

 

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웃음)…. 

그 형이 동네에서 제일 잘 타서 우리한테 기술도 많이 알려줬어요. 완전 추억이죠(웃음). 

 

이쯤 되면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 궁금해져요. 

보드를 사주시긴 했지만 “그냥 해볼 테면 해 봐라!”라는 마음이셨을 텐데요. 공부도 안 하고 조금씩 다쳐서 들어오니까 슬슬 말리기 시작하셨어요. 한번은 정말 죄송했던 일이 떠오르는데, 보드를 소화전에 숨겨놓고 주말에 학교에서 자습한다고 거짓말하고서 평촌에 간 적이 있어요. 제가 강서구에 살았으니까 거의 두 시간이 걸리는 동네였죠. 그날도 재미있게 타는데 하필 넘어지면서 팔꿈치가 탈골된 거예요.

 

 

 

 

(인상을 찌푸린다.) 아이고, 꼭 무언가를 몰래 하려고 하면 일이 터지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아버지가 한참 뒤에 오셨어요. 혼날 줄 알고 잔뜩 움츠려 있는데 별말씀을 안 하시는 거예요. 그때 아버지께 복잡한 감정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오히려 혼났을 때보다 마음이 안 좋았어요. 물론 그 이후에도 타는 횟수는 줄이지 않았지만요. 스케이트보드는 작은 실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발목이나 손목, 무릎 부상, 팔꿈치나 어깨 탈골처럼요. 

 

부상이 큰데도 그만두지 않으셨네요. 다치고 나면 다시 보드에 오르는 게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탈 때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러니까 조심스레 올라서 쉬운 기술부터 시작해 보는데요. 성공의 감각을 작게 꾸준히 쌓다 보면 어느새 원래 타던 것처럼 날아다니게 돼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냥… 보드가 좋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욕심도 있었고 보드와 일상을 함께하는 나한테 만족감이 컸어요. 친구들이랑 신촌이나 압구정으로 놀러 갈 때도 보드를 들고 다녔다니까요. 타지도 않고 불편했을 텐데(웃음). 

 

장난스럽게 말씀하시지만 오래되고 단단한 애정이 느껴져요. 대학생 때도 꾸준히 타신 거죠? 

대학생 때는 올림픽공원 근처로 이사 가서 거기서 타는 친구들이랑 친해졌는데, 그즈음 실력이 확 늘었어요. 음악이나 패션, 역사, 트렌드처럼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친구들이라 관련 매체나 잡지를 함께 보면서 많이 배웠고요. 데일리 그라인드를 함께 시작했던 원석이 형도 만나게 됐죠. 형이 머물던 뉴욕으로 스케이트보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 시절에는 스케이트보드 스팟으로 바르셀로나와 뉴욕이 떠올랐는데, 특히 바르셀로나는 길거리에서 보드를 타기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보드를 타기에 좋은 거리의 조건이 뭐예요?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벤치나 오르막길, 기물이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매끄럽게 손질해 두었고요. 길거리에서 보드 타는 걸 낯설게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요. 사실 스케이터들이 지나가는 길에 놓인 벤치나 계단, 경사로를 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기술이 만들어진 거예요. 일상생활에서 만나던 기물과 조형물을 본떠 스케이트 파크에 만들어 둔거니까 스트리트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거죠. 

 

화려한 기술이 일상생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신기하네요. 그런데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뉴욕으로 간 이유가 뭐예요? 

바르셀로나는 매끄러운 화강암이나 대리석이 떠오른다면 뉴욕은 거친 콘크리트나 벽돌 같았어요. 서울에서의 저는 바르셀로나의 뉘앙스처럼 깔끔하고 정돈된 스타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지 궁금해졌죠. 밥 먹고 보드 타고 친구들과 놀면서 3개월 머물렀을 뿐인데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어요. 기술이 단순하더라도 창의적인 면모를 좀더 중심에 두고요. 

 

보드를 거론할 때 음악과 패션, 스타일 같은 취향의 영역이 빠질 수 없잖아요. 왜 그럴까요? 

음… 그러게 말이에요. 제 생각에는 스케이트보드와 음악, 패션이 각각의 장르가 아닌 것 같아요. 그중에서 무엇을 골라 누린다기보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함으로써 그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패션이 비슷해지고 그들의 취미도 닮아가는 게 아닐까요? 영역이 겹쳐지며 만든 교집합 속에서 서브컬쳐를 깊게 탐구하는 거죠. 저만 해도 힙합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고,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서 시작하게 됐으니까요.

 

 

 

 

서울과 뉴욕은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분위기도 확연히 다를 것 같은데 어때요?  

저는 어디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든 가방에 옷을 하나씩 꼭 챙겨 다녔어요. 땀이 많이 나니까 대중교통 이용하기 전에 갈아입으려고요. 한국에서는 그런 걸 암묵적인 매너라고 생각하잖아요. 뉴욕에서는 같이 타던 친구가 보드 타다가 미끄러지면서 티셔츠의 반이 찢어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더라고요. 땀으로 얼마나 젖었든, 옷이 어떻게 엉망이 됐든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재미있게 즐겼어요.

 

분위기를 부러 만들기 보다 자연스레 드러나는 게 인상 깊게 남았겠어요. 

맞아요. 그런데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답답한 마음도 컸어요. 음식도 잘 안 맞았고요.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있잖아요. 그럼 일어나서 밥 먹고 밤까지 보드 타고 놀다가 집에서 예능 보면서 일종의 향수병을 달래곤 했죠. 

 

새로운 시도에 거침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환경도 중요한가 봐요. 

사실 저는 도전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요. 식당 가서 새로운 메뉴도 절대 안 먹어요. 일할 때도 굉장히 꼼꼼하게 체크하고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걸 좋아해서 즉흥적으로 판을 크게 만들지도 않아요. 그냥 딱 스케이트보드에서만은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거예요. 그것도 곰곰이 따져보면 지금 이상의 기술을 구사하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스케이트보드를 오랫동안 해온 것도 재미뿐 아니라 일상 속 안정적인 루틴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처럼 업으로 삼을 거라고도 예상하셨어요? 

전혀 안 했어요. 그땐 스케이트보드로 돈을 번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그만큼 잘 탔거나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하기도 어렵고요. 틈틈이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보드를 타는 건 취미였고, 데일리 그라인드는 부업 같은 의미였죠. 스케이터들의 소통 창구가 필요해서 커뮤니티로 시작했던 데일리 그라인드가 공식 홈페이지를 가진 웹진으로 성장했을 때도 회사를 다녔어요. 평일에는 야근도 많아서 주말에만 타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일상의 원동력이었어요. 보드가 아닌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필요한 것 사서 쓰고 같이 타는 친구들 밥 사주는 게 좋았고요. 스케이트보드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지키고 싶었군요. 그런데 이제는 데일리 그라인드를 도맡아 운영하고 있잖아요. 

일과 취미를 완전히 구분하고 싶었지만, 3년쯤 근무하니까 회사에서 온종일 보내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둔 시기에 웹진을 함께 꾸려오던 형이 그만두면서 데일리 그라인드에 집중하게 된 건데요. 사실 막막하지 않을 리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들었어요. 우리만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볼 아이디어도 샘솟았고요.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근데 제가 회사에서 하던 일이 전기 설계나 배선 업무였기 때문에, 문서 작업이나 파워포인트를 다뤄본 적이 없었어요. 혼자 도맡게 되니 글도 써야 하고 포토숍도 좀더 전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했고, 새로 배울 것투성이인거예요. 유튜브를 보거나 주변 친구들한테서 하나씩 깨우쳐 갔죠.

 

 

 

 

데일리 그라인드에서 스물일곱 살의 편집장님을 담은 인터뷰를 봤어요. “Skate Board 는 어느새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계속 Skating 을 하기 위해 일하는 느낌으로 여태껏 살아오게 됐다.” 인상적인 문장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스물일곱 살…. 그때는 집 방문과 장롱, 책상에 스케이트보드 스티커가 마구 붙여져 있던 때네요. 지금과 그때는 다른 마음 같아요.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서 데일리 그라인드라는 브랜드의 결과물로 나와 가족, 직원들의 일상이 지켜지는 거잖아요. 잘해내고 싶어요. 그래서 워커홀릭처럼 일에 몰두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편집장님에게 변함없는 보드의 매력을 꼽으라면 무얼까요? 

첫째는 무조건 재미고요. 나이가 들면서는 좋아하는 게 같다는 이유로 만나게 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요. 어울리고 교류하고, 더 나아가서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시간에서 배우는 게 분명 있거든요. 계단을 뛰어야 할 때, 주변에서 응원을 해준다고 해서 저한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아요. 오히려 단 한 명이라도 함께 뛰어주는 친구한테 의지하게 되죠. 기술을 연습할 때도, 무언가를 무서워서 못 하고 있는 상황인데 같이 하는 친구가 시도하잖아요. 그러면….  

 

해볼 만한데(웃음)? 

네(웃음) . 그건 어른이 되어도 똑같은 것 같아요. 얼마 전, 반스Vans에서 스케이트보드 행사를 열었는데 무척 어렵고 크고 무서운 기물이 많았어요. 한국 친구들은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외국 친구들이 오더니 편하게 시도해 보고 슬쩍 뛰어보더라고요. 그걸 보던 한국 친구들도 하나둘 점프를 시도하다가 마지막에는 행사에 온 모두가 신나게 탔어요. 함께하는 사람과의 시너지가 분명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스케이터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나 매너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스케이트보드 마케팅에서 쉽게 보이는 걸 떠올리면 보드를 던지고 행인들과 시비 붙는 장면이 많거든요.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자유로움이 보드의 매력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하게 지킬 선이 존재해요. 길거리에 보이는 기물들을 타는 건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맞지만, 그걸 소유하고 이용하는 분들을 무시하는 건 문화가 아니에요. 그런 행위는 절대 안 될뿐더러 문제를 일으켜서 소중한 스팟을 잃게 되면, 한 사람의 실수 때문에 스케이터 전체가 피해를 보게 돼요. 

 

스케이트보드의 영역에 대해서도 짚어보고 싶은데요.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예술 같기도 하지만 창의성과 기술, 목표에 대한 도전을 떠올리면 스포츠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보드라는 문화 안에 완전히 다른 영역 두 개가 존재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하는 친구들이 일명 ʻ엘리트 코스’를 밟은 경우가 많아요. 거리로 나와 문화를 몸으로 직접 습득하기보다 훈련처럼 기술을 배우고 연마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스케이트보드의 매력 요소가 엘리트적인 배움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거리의 기물에 올라서고 넘어지는 자유로움, 누군가는 상상만 하고 현실로 옮기지 못하는 행위에 매력이 있다고 봐요. 규격화된 장소에서 남들과 경쟁하고 쟁취하는 데만 몰두하지 않길 바라요. 

 

해외는 우리와 조금 다른가요? 

일본의 예를 들어볼게요. 국가대표인 ʻ유토 호리고메 Yuto Horigome’라는 친구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금메달도 따지만 패션이나 음악 등 스케이트보드의 다양한 면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렇게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들이 거리로 나오면… 진짜 멋있어요. 예술과 스포츠로 나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길 바란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냐면, 스케이터들과 ʻ스케이트보드 문화 산업을 저해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중 가장 큰 것은 우리나라에는 놀 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PC 방 같은 것들이요. 보드를 훌륭하게 타고 어려운 기술을 해내는 것만 주목받기보다 문화가 가진 다양한 매력들을 알게 된다면, 굳이 잘 타지 않아도 좋아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문화를 지켜보고 고민을 거듭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ʻ꼰대’ 같을지도 모르지만요(웃음).

 

 

 

 

이제는 보드와 함께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훨씬 길잖아요. 세월이 실감날 때가 있나요? 

외장하드에 아주 오래전 보드를 타는 제 영상과 사진부터, 제가 찍어준 친구들의 모습도 전부 갖고 있어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것까지요. 가끔 둘러보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과 마음이 들었는지 떠올라요.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아카이브를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그걸 가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면 지나간 세월도 실감 나고 그 세월을 기록한 것에 만족감이 들어요. 애틋하고 흥미롭고, 데일리 그라인드를 지켜보는 요즘 친구들에게도 재미있을 테고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편집장님에게 보드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야말로 진부한 답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제 삶이죠. 이게 없다면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지도 몰라요. 스케이트보드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보드를 타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들과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 돼요.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혹시 스케이터로서의 마지막 모습도 상상해 보셨어요? 

사실 마흔 살에는 은퇴하자고 생각했었는데요. 점점 가까워져서 쉰 살로 늘렸어요(웃음).  

 

(웃음) 조금씩 늘어나네요. 꾸준히 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텐데요. 

이제는 관절도 삐거덕거리고 보드 한번 타러 가면 몸 푸는 것만 20-30분 해줘야 해요. 본격적인 기술도 굉장히 주의하면서 하는 편이고, 갔다 와서는 폼롤러랑 아이싱도 꼼꼼히 해주고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엄청 힘들어요. 근데 또 모르죠. 쉰 살이 가까워지면 좀더 늘릴지도. 

 

좋은데요? 스케이터는 언제나 벽을 뛰어넘잖아요. 

편집장님에게 앞으로 넘고 싶은 벽이 있는지 궁금해요. 보드가 아닌 다른 세상도 궁금해요. 글을 잘 쓰고 싶고 책을 많이 읽고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아, 농구도 멋있게 하고 싶고요!

 

 

 

 

이야기를 마치고 컬트공원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강아지와 산책을, 누군가는 운동 기구에 올라서서 스트레칭을, 또 다른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낙엽비를 맞았다. 그리고 한편에 스케이터들이 있었다. 보드 바퀴가 공원 바닥을 신나게 내달릴수록 탄성과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과감하게 시도하다 찧은 엉덩방아도, 얼마 남지 않은 기물도,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도 그들의 즐거움을 막지 못했다. 그 순간 컬트공원에 초대 받지 못한 불청객은 없었다. 각자의 즐거움에 충실한 우리들만 있을 뿐.

 

 

 

 

‘스낵컬처’는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읽을거리를 소개합니다.
아모레퍼시픽과 어라운드가 함께 큐레이션한 콘텐츠를 통해 재미와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에디터 이명주

사진 강현욱

진행 어라운드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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